'고독한 군중'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데이비드 리스먼이 강조했듯 모든 인간과 사회가 그가 제시한 유형들로 정확하게 분류될 수 없음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편의상 그가 제시한 유형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했다.*
한국 사회는 내적 지향형 인간을 선호하면서도 타인 지향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는 내적 지향형 인간이 되길 강요받았고 실제 그런 유형의 인간으로 사는 데 큰 불편함이 없는 사회를 살아왔다. 그 밑에서 자란 우리 세대도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첫 학교 교육도 내적 지향형 인간을 육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회성은 지적능력, 학업능력의 발달을 위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교우관계에 있어 (부적응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 않는 한 교사와 부모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동배 집단은 내적 지향형 인간으로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기준이자 비교 대상으로 활용되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는 제도적 지시 사항이 없었음에도, 학부모 대부분은 같이 입학하게 될 아이들이 이미 한글을 깨쳤다는 사실에 자극받아야 했고 자녀들은 반강제적으로 공부해야만 했던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이 사회는 빠르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이념의 대립이 첨예했던 갈등의 시대를 지나 화합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어 친구들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조별교육 등을 실시함으로써 동배 집단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다소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는 내적 지향형 인간을 더 선호하였고 끊임없이 학습능력을 평가하여 서열화함으로써 경쟁체제는 지속되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기존의 내적 지향형 인간들이 갖춰야 했던 자질들에다 타인과 적대적인 협력을 하며 원만하게 지내는데 필요한 자질들(예: 타인과 그의 기대와 기호에 스스로 민감함)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동배 집단은 이제 권위에 의해 내면화시킨 목표 성취를 위한 비인격적 비교 대상일 뿐 아니라, 그 과정의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에서 의식하게 하고 어느 정도 동조하게 만드는 인격적 주체로 기능한다.
타인 지향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율적으로 내부적 동기와 기준을 형성하고, 그에 근거해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을 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 지닌 관심사와 능력들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데 있어 갖는 중요성보다 타인의 가치 판단에 의해 서열화된다. 그리고 서열화된 능력에 따라 우리 존재도 서열화된다. 그렇게 서열화된 존재가 자존감을 갖는 것은 지난 하기에 자율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다.
불완전한 자존감에서 오는 결핍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채워가게 된다. 대개 우월감은 서열화 과정에서의 승자가 누릴 수 있는 보상처럼 취급하고 열등감만이 극복해야 하는 걸림돌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월감도 마찬가지로 타인을 기준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결핍이 채워져 자존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교 대상에 따라 언제든 열등감으로 바뀔 수 있는 결핍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이 사회에서 주체적 실존은 갈수록 힘들어져만 간다.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경쟁의 굴레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능력을 계속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서열을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아는 규정되고 만들어진다. 능력과 성과만이 삶을 대변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존재는 종종 비인간화된다.
흘러가는 대로 군중 속에서 살다 보면 삶이 휩쓸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우리는 그 급류 한가운데에서 그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용기 있게 거스를 줄 알아야 하며, 끊임없는 사유와 통찰을 통해 기른 내면적 힘(자존감)으로 버티고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 자아를 만들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인간다운 삶에 필수불가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