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온몸과 마음을 불태워 세상에 알린 노동자 전태일. 그가 당시 미래의 우리 사회 모습을 꿈꾸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적어도 작금의 사회와는 달랐을 거다. 이 사회는 노동자로서 갖는 권리들을 정당하게 행사하기에 앞서 살려달라는 절규부터 나오게 하는, 노동자에게(특히 비정규직) 여전히 잔인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삶을 이어나가기 힘들 정도로 짓밟힌 그 지점에서 살려달라고 절망적으로 한 외침은 힘을 가진 자들의 화려한 언론과의 합주 소리에 묻혀왔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송전탑 위, 건물 옥상, 길바닥으로 나가 목숨을 걸고 소리쳐야 했다. 그 지난하고 외로운 투쟁에서 잃은 목숨도 허다하다. 그렇게 노동자 전태일이 목숨을 바쳐 바꾸고자 했던 우리 사회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을 인간다운 삶에서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얼마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효율과 비용을 위해 안전과 생명을 경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메트로는 저번 강남역 사고 이후에 안전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어 지키겠다며 언론플레이를 했지만 이번 사례로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음이 드러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었고, 안전을 위해 수리 시 해당 선로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켜달라고 요구할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는 위치로 내몰려있었다.
업계가 휘청거리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든다. ‘조정’은 기대도 못하고 총알받이 마냥 가장 먼저 손쉽게 벼랑 밑으로 떠밀리는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한 때 우리나라 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했던 조선, 해운업이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골리앗들이 마구 비틀대며 흔들리는 모습에 그 비틀거리는 발밑에서 밟힐까 이리저리 뛰어야만 하는 다윗들의 고통과 두려움이 또 한 번 가려지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먼저 책임져야만 하는 이들은 살 궁리를 다 마련해놓은 채 회피하고 그러한 책임 회피를 눈감아주는 이 사회에서 다윗은 쓰러지는 골리앗의 무거운 책임을 맨몸으로 짊어지게 된다. 그 무게에 짓눌려 매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점점 노동이 삶보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과 노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렇기에 사회적 안전망 내에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그 노동의 가치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서의 삶이 보장되어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하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일하면서 죽고, 일 때문에도 죽고 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이 사회는 어찌 이리 평온한가. 사람이 죽었는데 끄떡도 안 하고 변하는 게 없다. 이제는 노동자들의 절규뿐 아니라 죽음마저 외면하는 것일까.
며칠간 길을 지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수많은 누군가의 노동현장들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이 두려웠고, 어디서부터 들여 봐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거 같아 암담했다. 분명 이 곳은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사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40년 전 전태일 노동자나 그 후의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투쟁하며 만들고자 한 세상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산 세상과 마찬가지로 사람답게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이곳에서 그들에 이어 나 역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러한 세상을 위해 그들만큼의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외되는 그 누군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투쟁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