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

사과꽃을 따야하는 이유

by 시월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야 맥도날드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 탓에 햄버거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 몇날 며칠을 조르고 조르면 생일에 한 번쯤 데리고 가는 식이었다. 대신, 나는 사과를 아주 많이 먹었다. 나의 부모님은 사과농장을 운영했는데, 팔지 못하는 못생긴 사과는 모두 내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패인 사과를, 점심에는 색이 바란 사과를, 저녁에는 설익은 사과를 먹었다. 사과를 먹기만 하는 데에 지겨워질 때쯤 엄마는 나에게 사과꽃 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나는 서울에 올라가기 전까지 부모님을 도와 사과꽃을 땄다.


사과꽃은 예뻤다. 흰색과 분홍색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화사해졌다. 사과꽃을 처음 잘라낼 때,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이 예쁜 걸 왜 잘라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엄마는 조금 고민하다가 답했다. 사과꽃을 따지 않으면 크고 예쁜 사과를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동시에, 나에게도 나중이 되면 꼭 필요한 것을 위해 사과꽃처럼 예쁜 것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거라고도 했다. 어린 나는 더 좋은 것을 위해 지금 좋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과꽃을 많이 따면 크고 예쁜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사과 꽃을 더, 더 많이 땄다. 손이 저릴 때까지 가위질을 하며 분홍색의 사과꽃을 잘라냈다. 내가 가위질을 할 때마다 꽃들은 툭, 하고 떨어져 눈처럼 소복하게 쌓였다.


20살, 나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사과꽃은 누가 따나, 하는 부모님의 섭섭한 말들을 뒤로 한 채였다. 서울은 매끈하고 완벽한 도시였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도시에 올라온 첫날 밤, 나는 인생 처음으로 붉은색의 매끈한 사과를 먹었다. 더 이상은 패인 사과 따위는 먹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패인 곳 하나 없이 매끈한 이 도시에서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개강총회 때 내가 시골에서 왔다는 걸 신기해했던 선배는 더워질 때마다 백숙을 찾는 내 모습에 헤어지자 말했다. MT에서 아무렇지 않게 송충이를 잡는 내 모습에 동기들은 역시 시골에서 와서 그렇다며 수군거렸다. 몇 년이 지나 취업 준비를 할 때에는 한 스터디원이 농사나 지을 것이지 왜 서울에서 취업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날도 마트에서 사과를 사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 흠집하나 없는 사과를 바라보다 크고 예쁜 사과를 위해 꽃을 따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미끄러졌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흠 없는 모습을 위해 선배는, 동기는, 스터디원은 나를 잘라냈던 걸까. 좋은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하고, 함께 송충이를 무서워하는 친구를 찾고,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나의 발밑에서부터는 사과꽃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밟힌 듯 색이 바란 사과꽃은 나의 무릎으로, 나의 허리로, 나의 가슴으로, 나의 턱밑으로, 나의 이마로 차올랐다. 눈을 깜박이지도 못할 만큼 순식간에.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