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기억에 영원히 머무는 법

by 시월

미희가 눈을 뜬 건 한 병실 침대 위에서였다. 티끌 하나 없는 하얀색 벽과 하얀색 이불, 그리고 하얀색 하늘이 미희의 시선 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하얀 그 곳에서 오직 미희의 짧은 머리카락만이 검었다. 미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감으며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지를 생각했다. 자신을 향해 뛰어오던 무리들, 자신의 귀에 울리던 시끄러운 소리들, 파편화된 장면들이 미희의 기억을 드문드문 채웠다. 하나의 기억으로 맞춰보려 했지만 잘게 부서진 기억들은 좀처럼 맞지 않았다. 결국 미희는 기억의 조립을 포기하고 창밖의 하얀색 하늘을 바라봤다.


오 분 정도 창밖을 보고 있었을까, 흰 창틀 위로 초록색 나뭇잎이 툭 떨어졌다. 이제 미희의 곁을 채우고 있는 색은 세 개가 되었다. 초록색 이파리를 보며 미희는 기억을 떠올리려 하는 듯 눈을 감고 눈가를 찌푸렸다. 미간이 구겨졌다 펴졌다를 세 번 정도 반복했을 때쯤 미희는 눈을 떴다. 미희는 놀란 듯 일어나 창문 밖으로 몸을 기울였다. 미희의 시선에 바다가 보였다. 푸른 파도와 빛에 비쳐져 하얗게 빛나는 모래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 눈에 띠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해변을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병실 창문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 했다. 남자의 시선이 흔들리다 멈췄다. 그리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미희를 보고 있었다. 미희도 남자를 봤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미희의 귀에 들렸다.


“우리, 나중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기로 했던 거 기억해?”


당연하지, 미희의 눈앞에 다시 바다가 펼쳐졌다. 이번에는 그와 미희뿐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수평선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미희는 붉어진 얼굴이 부끄러운 듯 그 대신 앞을 봤고, 그는 그런 미희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철썩, 파도가 넘실댈 때마다 미희와 그의 맨발이 파도에 잠겼다. ‘시원하다’고 생각할 때쯤, 미희는 그녀의 손이 따듯해짐을 느꼈다. 그가 미희의 손을 잡은 탓이었다. 그때, 그가 미희에게 말했던 것 같다. 우리 나중에 꼭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자고. 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미희는 행복했다. 이 기억만큼은 미희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어 병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지금도, 미희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 기억 속의 그가 병실 밖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은 떠난 뒤였다. 오로지 희게 반짝이는 모래알들과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뿐이었다. 그에게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미희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주사바늘을 떼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뛰었다.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만들어준 그에게로, 그 기억에게로.


[2024년 8월 15일, 목요일 뉴스]

경기도 안양시의 한 요양병원, 80대 노인 최 씨가 창문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최 씨는 평소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안양경찰서는 최 씨가 어떻게 창문에서 떨어지게 되었는지 조사에 나섰습니다. (...)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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