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끊는다

끝의 또 다른 이름 - 말띠 이야기

by 다이룸맘

첫째랑 둘이 걸어가며 괜히 어깨를 툭 치고,

밀치고, 투닥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막둥이 이야기가 나왔다.


“아, 막둥이 영어학원 끊었어.

이제 영어 좀 시키려고~”


그랬더니 첫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영어 다니고 있었어?”


"아~ 아니 ㅋㅋ 등록했다고~"


나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단한 걸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떤다.


“엄마 엄마 엄마!

우리나라 말은 참 어려운 것 같지 않아??

끊었다는 말이 완전 반대잖아.

그만둔 것 같기도 하고,

새로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우와~~”


순간 나도 멈췄다.


그러네.


담배를 끊었다.

인연을 끊었다.

관계를 끊었다.


이건 끝 같다.


그런데 또

기차표를 끊었다.

수강권을 끊었다.

학원을 끊었다.


이건 시작 같다.


같은 말인데

어떤 건 끝이고

어떤 건 시작이다.


앞뒤 이야기를 들어야만

비로소 그 뜻을 알 수 있으니

그래서 더 묘하다.


문득 어원이 궁금해져 찾아보니,

‘끊다’라는 말은

예전 표를 발급할 때

종이를 잘라 주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 세월을 지나,

그렇게

‘끊다’라는 단어는

‘시작’을 품게 되었을 테다.


괜히 진지해진다.


마흔 언저리에 와

내 삶을 돌아보니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다른 무언가는 끊어야 했다.


시간을 끊고,

마음을 끊고,

다른 선택들을 잠시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들이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끊는다는 건

시작일 때도, 끝일 때도

늘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건지도.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를 끊어냈던 시간을 딛고

나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인생 테이프를 끊었고,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끊는 게 아프더니,

이젠 덤덤하다.


이제,

내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무게는

오히려 나를 위한 시작을

망설이게 한다.


나 또한


내 엄마가 끊어내며 살아온 시간 위에서

그 끊음을 내 것인 것처럼

그 희생을 당연하게 누리며

반쪽짜리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시절

내 엄마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아팠으리라.


그렇게 ‘끊음’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생을 논하며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드디어 나름 깊은 경지에 다다르나 했는데…


“엄마~~~~~”

유난히 길다.


꿍꿍이 가득한 수상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나 영어 학원 말인데…

끊고…다른 영어학원 끊어주면 오땡????”


나는 이를 앙다물고

웃으며 말한다.


“응~ 안 돼~~~~~

그날이 목숨줄 끊기는 날이야ㅋㅋ”


역시 이 녀석,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다…


딸은 엄마와의 말장난에 신이 나 깔깔 웃는데


나는 그 순간 홀로 다녀온 동상이몽급 경지가

괜스레 멋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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