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손님 ②

귀양이냐, 휴양이냐-말띠이야기

by 다이룸맘

이른 아침부터 추방당한 녀석이 마음에 걸렸다.

눈에 밟혀 안절부절못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 속 아이의 첫마디는

또 한 번 나를 당황하게 했다.


“코끼리마트요.

오래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사고 있어요.”


얜… 도대체… 뭐지.


혼난 지 5분 만에 살아갈 궁리를 하는 녀석에게

나는 또 한 번 경의를 표했다.


자, 이제 문제는

추방당한 아이를 어디로 옮길 것이냐였다.

고집불통을 똑 닮은 아빠와 딸 사이에서

나만 새우등 터지는 삶.


나의 지원자, 친정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조건은 분명했다.

혼자 왕복으로 자기 일정을 감당할 것.

태워다 주지 말 것.

돈 주지 말 것.

그리고 좋은 말과 사랑은 듬뿍.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이제부터 배짱 두둑한 새벽손님에게 주어진 미션.

1시간 거리 외할머니 댁까지

지하철로 혼자 가보기.


일정을 소화할 묵직한 학원 가방을 들고,

주머니엔 오래 먹을 식량인,

든든한 크런키 한 통을 두둑이 챙긴 채

아이는 길을 나섰다.


한 번도 혼자 타본 적 없는,

평소에도 잘 접하지 못한 지하철 앞에서

이 벽이 아이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지,

혹시라도 위험하진 않을지…

일을 하면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열 통이 넘게 걸려오는 전화에

나는 단속을 했다.


“엄마는 일하는 중이고,

너는 알아서 해결해야 해.

해외여행 왔다고 생각해.

모르면 물어.

남자 말고, 엄마 또래 아줌마한테.”


담담한 전화 뒤,

조마조마한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출발한 지 어언 두 시간.


두 시간 만에 아이는

헤매고 헤맨 끝에

고촌역에 도착했다고 했다.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그 뿌듯한 얼굴이란.


지하철로 마중 나오신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가

시간 맞춰 삶아 놓은 닭다리를

야무지게 뜯으며

너무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할머니가 물으셨단다.


“강아지, 여기 왜 왔어?”


“엄마 거 핸드폰 새벽에 훔쳐보다가

아빠한테 걸렸어요.

그래서 쫓겨났어요.

아마 당분간은 못 갈 것 같아요.”


… 이게 그렇게 담담히 말할 일이냐.


“할머니 집으로 귀양 왔네.

뭘 잘못해서 귀양 왔는지

잘 생각하고 반성해야 해.”


자꾸 반복되는 대화 속,

‘귀양’이라는 단어가

제 딴엔 영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할머니!!!

귀양이라는 말 안 쓰시면 안 돼요???

제발요~~ 그만!!!!

통사정을 하더란다.


"응~ 오늘까지만 할게~~ 내일은 안 할게!!^^"


딸아. 우리 엄마야 ㅋㅋㅋㅋ

내가 그러니 우리 엄마한테 널 보낸 거 아니겠니 ㅎㅎ


할머니, 할아버지의 철통 보안 속에서

저녁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도 어제저녁과 같은 메뉴에

아이는 사심 가득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고 했다.


“할아버지~~~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제육볶음 어때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귀양인지, 휴양인지.


네가 오롯이 사랑받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 그곳이라

참으로 다행이다만,


제발.

왜 거기까지 가게 됐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안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없는 이 저녁,

엄마는 두 다리 쭉 뻗고 잔다.

이게 바로 평화다.


제발 느끼는 바가 있는 모험이었기를.


잘 자라, 똥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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