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들고 싶은 시간을 마주했다- 딸 이야기
“와,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채를 잘 썰어?
나도 엄마처럼 채 썰고 싶어.
결혼 후 10년.
나는 유난히 칼질을 잘해보고 싶어 애썼다.
아마도 내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왁자지껄 살아오느라
사소한 것들에는 마음을 쓰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하루를 넘기고,
아이들을 챙기고,
또 하루를 버티는 데 급급했다.
그럼에도 음식을 만들 때면
당근을 얇게 써는 법을 떠올렸고,
양파가 흐트러지지 않게 힘을 조절해 보았다.
괜히 요리 영상을 찾아보고,
괜히 손목 각도를 바꿔가며 연습도 했다.
이제는 엄마의 솜씨 어디쯤엔 닿았다고
조심스레 자신이 붙을 무렵
그날은 특별한 약속이 있던 날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 밥이 먹고 싶은 마음에
불쑥 찾았을 뿐이었다.
딸의 갑작스러운 방문 소식에
엄마는 집에 있던 야채들을 꺼내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잡채 한 그릇을
푸짐하게 내주셨다.
행여 못 먹고 갈까 봐,
급히 만든 음식의 맛이 덜할까 봐
조마조마했을 엄마의 마음이
굳이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마음 다해 만들어 낸 잡채 한 그릇.
그 안에는 엄마의 인생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당근과 양파 채가 들쭉날쭉했다.
두껍고, 고르지 못했다.
문득 낯설었다.
엄마도 그걸 느끼셨는지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야야… 나이가 먹으니 손이 내 맘대로 안 움직여.
욕심내면 자꾸 다쳐서.
요즘은 조심조심 썬다.
너무 크지?”
그 웃음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손은
언제나 정확했다.
자로 잰 듯 가지런한 채,
군더더기 없이 정갈한 칼질.
그 손이
세월 앞에서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어느새 엄마의 머리엔
흰머리가 가득했다.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나의 시간을 살아내는 동안
엄마의 하루하루가
조용히 쌓여 남긴
세월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덜 자랐는데.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데.
엄마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
예전에 엄마가
너무 힘들고 지쳐 있던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의 시간이 빨리 가면 좋겠다.
네 미래가 정말 기대되는데,
매일을 버티며 애쓰는 네 모습이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그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힌 듯 멈칫했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엄마는 늙잖아.”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느리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빠르다.
똑같이 주어진
공평하지 않은 시간.
이제는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리는,
늙어가는 엄마의 무료한 하루가
아깝다.
그래서 괜히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엄마에게만큼은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흘렀으면 하고.
오늘도 나는
참새 같은 내 아이들을 위해
채를 썬다.
그리고
이 조급한 마음은
말없이 접어 둔 채
또 하루를 살아낸다.
나는 아직
내 삶을 건사하느라 바쁘고,
엄마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나이를 먹는다.
그 사실이
가끔은
참
많이
아프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