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와 살림의 세계로 이끌어준 책을 소개합니다.
신혼집 살림을 채울 때만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냥 빈 곳에 아무렇게나 넣었으면 되었으니까. 일도 했었으니 핑계는 완벽했다. '일하느라 바빠서.' 출산 직전 출산준비물을 준비할 때에도 새로 구입했던 아기가구에 가지런히 넣기만 하면 되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에 정신없었을 때는 아기 키우느라 정신없다는 핑계로 조금씩 뒤로 미뤘다. 그러는 사이 물건은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방치하며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만 불편했다면 대충 보이는 곳만 치우며 살았을 텐데, 아이와 남편이 불편해하니까 정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다 나에게 물어보니 하나하나 찾아주기 귀찮아서 정리를 잘해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정리를 하자! 결심했는데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정리정돈'을 배운 적이 있던가. 아니,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것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던가. 중학교 가정시간에 냉장고 정리방법, 설거지하는 방법, 옷정리 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시험을 쳐야 하니 억지로 외우기 했고 삶과 연결시킬 생각은 못했었다.
집에서 엄마나 할머니의 살림법을 어깨너머로 배웠을 법도 한데 관심이 없으니 어떻게 하셨는지 보일리가 없다. 게다가 엄마는 이런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곤 하셨다. (물론 나중엔 후회하셨지만)
'어휴~ 괜히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있어'
설거지한답시고 주방에서 어물쩡거리면 친정엄마가 하시던 말씀. 괜찮다며 고무장갑을 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방해되더라도 옆에서 곁눈질로라도 엄마가 어떻게 수북이 쌓인 그릇을 씻어냈는지 봤었어야 했다.
'결혼하면 실컷 할 텐데 공부나 해'
청소를 하거나 거실에 있는 걸 치우려 하면 괜히 이런데 시간 쓰지 말고 공부하는데 신경 쓰라고 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셨겠지. 시간이 한참 지나 엄마는 이런 발언을 하셨던 것을 후회하시며(네가 그렇게까지 안 할 줄은 몰랐다면서) 결혼해서 누구에게 살림을 맡기더라도 잘 알아야 부탁할 수 있지 않겠냐며 회유하셨지만 그때의 난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 때라도 신경 쓰고 엄마의 살림을 배웠어야 했다.
수학을 모르면 수학학원에 가고, 영어를 모르면 영어학원에 가서 잘하는 사람한테 배우면 되는 것처럼 살림과 집정리도 배우면 될 텐데 아는 게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는 것조차 하지 못했었다. 일단, 서점에 가서 '정리정돈'과 '살림'에 대한 책을 찾아 끌리는 것부터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정리에 대한 책이 많았다. 지금까지 나만 몰랐던 거였구나 세상에 배신감이 느껴지면서도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사실상 집안일과 정리정돈에 관한 생각이 '무'에 가까웠는데 저자의 생각 읽고 실천하며 살림을 대하는 태도와 정리의 의미를 쌓아나갔다.
도움을 받았던 책 몇 권을 소개하자면
제목 그대로 1일 1 정리, 100일 동안 하루에 한 가지씩 정리하자는 의미로 각 일자별로 해야 할 것들을 정해주고 팁도 들어있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을 때 따라 하기에 좋은 책이었다.
결혼 일찍 한 친정언니가 '살림은 이렇게 하는 거야~'하고 옆에서 조곤조곤 하나씩 알려주는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세세한 노하우들이 가득 들어있어서 하나씩 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살림하는 당신을 귀하다고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미니멀라이프를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에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의 방식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물건을 비우는 게 목적이 아닌 내 라이프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삼아 남기고 싶은 것을 남기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장착할 수 있었다.
살림에 관한 태도와 전업주부의 시간관리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가 된 책이다. 매일 조금씩 하는 '루틴'에 대한 개념을 이 책을 통해 접했고, 무엇보다도 '나'를 돌보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삶을 변화시키는데 거창한 각오는 필요 없다. 지금 보이는 한 공간만 정리해 보자.'
정리든 살림이든 해야 하지만 어떻게든 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나에게 단비 같았던 책. 서문을 읽으면서 더 빠져들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깨끗한 집이 아니라 내가 원할 때 언제든 깨끗한 집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이 문장은 아직까지 나에게 남아서 정리정돈이나 살림을 항상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해방시켜 줬다. '원할 때' 후다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세세하게 소개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밖에도 훌륭한 책들이 많지만 내 살림과 정리정돈의 근간을 만들어주고 의미를 부여해준 책들이라 더욱 애틋하달까. 살림에도 여러 영역이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정리정돈'이지만 정리정돈에 신경쓰다보니 점점 청소나 요리 등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역시 모르면 배워야하고, 세상에는 나도 모르는 전문가들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