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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Nov 11. 2023

정리할 결심

이런 나도 할 수 있을까

정리와는 담을 쌓고 살았었다. 그때그때 습관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더 이상 무언갈 올려놓을 공간이 없을 때, 서랍에 물건이 가득 차서 한 손으로 닫을 수 없을 때 정리를 시작했다. 어질러진 방을 보며 한소리 하는 엄마에게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는 거라며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말했었는데, 방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돈 것을 보면 무의식이 어지러운 공간을 외면한 거였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나 할머니가 답답함을 못 이기시고 어쩌다가 방을 치워주시면 하루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었으니까. 


대학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내 공간을 가꾼다기보다는 잔소리 듣지 않고 내 멋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함이 먼저였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서 겨우 씻고 잠들었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출근하는 것을 반복했으니 살림을 하고 집정리를 할 시간이 없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마음 쓸 여유도 없었고.


이렇게 내가 사는 공간을 정리하고 가꾸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은 채 결혼을 하고 육아를 시작했다.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서툰 실력으로 나름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지속되진 않았다. 특히 아이를 돌보면서 집까지 돌보려니 정신이 없었다. 나를 돌보는 것은 사치였으니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테다.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기보다는 양말이 없어서 빨래를 하고, 먹을 게 없어서 대충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고, 청소도 제때 하지 못해서 겨우 아이가 다니는 곳, 아이가 만지는 곳만 청소하고 대청소는 꿈도 못 꿨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집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어수선함과 어지러움이 해결됐을 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방이 하나 많아져서 보기 싫은 것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 어지러운 것을 치우겠다고 정리를 시작하면 어디에 둘지 모르겠는 것들을 용도 없는 방에 넣고 문만 닫았으니 '보이기'에는 정돈되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혼돈 그 자체였다.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었다. 

정리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는데, 가격을 찾아보니 당시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금액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수밖에. 


정리와 쌓은 담을 허물고 친해지고 싶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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