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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Sep 25. 2024

9세의 심리수업

(더러움 주의)

아이 학교에서는 간혹 상담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는

모양이다. 오늘 샤워를 하던 중 아주 큰 사실을 배웠다며 썰을 푼다.


“엄마, 사람 마음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대~ 힘든 일이 있을 때 힘들다 힘들다 하면 더 힘들고 안 힘들다 괜찮다 하면 진짜 안 힘들게 느껴진대~

하기 싫은 공부도 재미있다 재미있다 생각하면 재밌게 느껴지고!

몸이 아플 때도 아프다 아프다 생각하면 더 아픈데

괜찮다 괜찮다 나는 아프지 않다 견딜만하다 생각하면 진짜 괜찮대.

나도 그래서 시험해 봤는데 정말 그게 통하더라 “


나 : 정말? 이야 어떻게 엄마가 병원에서 어른들한테 알려주는 걸 벌써 알았대?


아이 : 상담 수업 때 배웠지~ 근데 되게 웃긴 이야기도 들었어. 상담 선생님이 다른 반 수업할 때 거기 바보가 있었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니 어떻게 마음을 먹냐고 배부르겠다고 했다는 거야!  진짜 웃기지~


나 : (박장대소) 진짜 웃기다~ 개그맨이 따로 없네~


(좀 더럽지만 신난 아이가 코딱지를 파서 내 팔에 붙인다. 종종 하는 장난이라 이제는 익숙하다.)


나 : 엄마 지금 너한테 배운 거 써먹을게~ 네가 붙인 이

코딱지가 더럽다 더럽다 생각하면 진짜 더러운데, 어머 귀여워라 이렇게 귀여운 코딱지가 있나 생각하니

너어무 귀여운 거 있찌~ 아유~ 귀여운 코딱지


아이 : (깔깔대며 웃다 쓰러진다)


나 : 마음을 이렇게 먹고 나니 너무 배가 부르다~ 엄마 배 터지겠어~~


아이랑 같이 빵 터져서 웃고 끝이 난 샤워시간


아이는 샤워 중에 제일 깊은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 말 대잔치일 때도 있고 오늘처럼 삶에 꼭 필요한 이야기일 때도 있다. 듣다 보면 아이의 생각이 커가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올랐는지 요새 반 아이들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조퇴를 하려고 한다고 한다. 잘 보면 하기 싫은 수업을 앞두고 그러는 거 같고 지나면 또 멀쩡해진다고 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는 지식을 양껏 풀어놓고 설명하고 싶지만 충동을 잘 눌러야 한다. 우와 정말? 그랬어? 신기하다~~ 정도의 추임새가 아이의 입을 막지 않는 좋은 리액션이다.


아이가 의사표현이 명확하고 말이 많아질 무렵 “부모역할훈련”이라는 책을 읽으며 아이와의 대화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잘난 척을 하고 설교조의 말을 내뱉는 순간 아이는 침묵을 택하고 만다. 책에서는 그랬어? 그랬구나. 정도의 아이의 말을 반복하거나 동조, 호기심의 표현 정도를 하도록 권유한다. 어찌 보면 되게 쉬운 리액션 같지만 실전에서 쓰기엔 많은 인내심을 요한다. 그렇지만 한번 습득이 되면 꽤나 잘 붙는 대화습관이다.


책 덕분인지 아이는 나에게 온종일 종알종알 하루 있었던 일들, 자신의 생각, 감정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듣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갈 때도 있지만 매일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이의 생각이 자라는 게 또렷이 보인다. 내가 말하면 잔소리 같은 말도 밖에서 들으면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는 것도 알 수 있다. (사실 저 위의

깨달음은 언젠가 내가 했던 이야기이다;;;)


이렇게 아이는 한 단계 성장해가는구나 싶다. 앞으로의 삶이 좀 더 평화로울 수 있는 심리 아이템을 하나 획득했고,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더 채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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