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밀집한 곳에 병원이 있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우울, 불안이 생겨 병원을 찾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회사생활을 몇 달 짧게 경험해 본 게 다이다 보니 처음에는 정신의학적 접근과 상담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연차가 쌓이다 보니 어떻게 회사 내에서 이런 이슈들이 흘러가는지,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 선택을 한 후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흐름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때 마음을 다잡는 방법과 대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원에 올 때 크게 환자분들은 시기별로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괴롭힘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경우, 아직은 생기가 있고, 상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며, 신고를 하든 내가 이직을 하든 여러 대처 방안들을 생각하며 옵니다. 우울하고, 불안하긴 하지만, 이 상사의 행동이 잘못되었고, 나는 충분히 능력이 있으니 이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증상을 조절해 주며 스스로 선택을 해나갈 수 있게 지지해 주면 한두 달 사이에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리고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괴롭힘이 꽤 장기적으로 있었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표정이 없고, 무기력하고, 목소리도 잔뜩 기가 죽어있습니다. 너는 무능력하다는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수개월간 경험했다 보니 자존감과 자신감 모두 바닥인 상태로 옵니다.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화를 낼 힘도 없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 아래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개월간 타깃이 되어 지적을 받고 무시를 당하다 보니 스스로를 하찮은 사람으로 여겨 다른 회사로 이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제가 더 화가 나서 대신 욕을 해줍니다. 이런 #$%@#$%
사실 최근에 두 번째 케이스 환자분이 와서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임감이 크고, 어떻게든 이 난관을 헤쳐나가 보겠다는 생각에 거의 1년 가까이 괴롭힘을 당하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있고 그에 대한 진료를 본다고 해서 상황에서 지거나,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도와주는 아군 한 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꼭 조기에 정신건강의학과 혹은 심리 상담의 도움을 받기를 추천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있을 때, 우선 생각할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만 괴롭히는 것인지, 여러 명을 괴롭히는 것인지, 신고할만한 사안인지, 분리될 수 있을지 (상사나 자신의 팀 이동), 이직하는 게 나을지.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대처할지 방향을 설정합니다. 제일 베스트인 상사가 곧 다른 팀으로 이동 예정이다 하면 참고 지켜보는 것이겠지만, 그 외의 사안이라면 신고를 할지, 분리를 요청할지, 내가 회사를 나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자신이 아니라, 다음 결정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상황을 풀어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하다 보면, 자기 결정권이 많이 없어진 상태로 옵니다. 세세한 것까지 지적을 받으며 눈치를 보다 보니 스스로 무언가 결정하는 능력이 점차 퇴화된 상태로 오게 됩니다. 마음을 다잡고, 내 상황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릴 수 있다는 통제감을 다시 찾아봅시다.
어떻게 결정하든 우선은 증거를 모으세요. 내가 언제든 못 참으면 들이박을 수 있다는 무기를 가진 느낌이라 꽤 든든한 마음이 든다고 해요. 신고를 하든 안 하든,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우선은 증거를 모으세요.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나를 괴롭히는 것을 본 동료들의 증언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평소 다 지켜보면서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 주었을지라도, 막상 사내에서 진술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대부분 등을 돌립니다. 각자의 커리어가 있고, 사정이 있기에, 직장 내에서 시끄러운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괜한 기대를 가졌다가 서운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이런 일에서의 증거는 스스로 모아야 합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심리이니 너무 마음상해하지 마세요.
사내 제도를 확인해 보세요. 직장 내 괴롭힘에 빠르게 대응하여 분리조치가 잘 이루어지는 회사도 꽤 보았습니다. 인사팀과 협의하여 은밀하게 다른 핑계를 대고 조용히 옮길 수 있기도 합니다. 도저히 이 회사에서 안 되겠다 싶어 이직을 고려하지만 마음 상태가 힘들고 바로 멘땅에 퇴사하자니 경제적 곤란이 있다 하면, 유급으로 병가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참고로 질병으로 인한 퇴사의 경우 실업급여가 바로 지급되지 않습니다. 사내 상담 센터의 도움을 받고 심리적 지원과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절대 죽지 마세요. 내가 죽으면 상대가 죄책감이라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살 생각을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고작 부하직원이나 괴롭히는 못난 사람 때문에 내 아까운 생을 마감하지 마세요. 보란 듯이 이 상황을 이겨내고, 더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너 같은 사람 때문에 나를 망치진 않을 거야"라는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절대 죄책감 안 느낍니다.
어떻게 결정을 하든 회사에서 가해자와 함께 지내야 할 시간은 길든 적든 있을 것입니다. 상사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긴장되는 증상들을 가지고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상사의 심리에 대해 분석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다른 사람을 악의적으로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상사는 굉장히 미숙하고, 실은 자신이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서 먼저 누군가 한 명을 타깃으로 삼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서운 괴물의 모습을 한 상사를 실은 약해 빠진 존재로 이미지화해서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잘 되지 않으면 전문가의 상담, 약물의 도움을 조금 받아 이 시기를 보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약에 대한 의존이 생길까 두려워서, 내가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망설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평소 건강하게 잘 지냈던 분이라면 절대로 이로 인해 약을 잠시 복용했다고 의존이 생겨 평생 약을 먹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안이 해결되고 나면 꽤 금세 약을 중단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누구든 한 명이 쫓아다니면서 매일 나에게 악담을 퍼붓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있다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악한 사람으로 인해 잠시 힘들어 도움을 받는 것뿐입니다. 병원에 와서 상담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