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나

by 봄봄

“선생님, 회사에서는 제가 너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마음에도 없는 말에 웃어야 하고, 싫은데 좋은 척해야 하니까… 어느 순간 내가 진짜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


진료실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집에서의 나와 직장에서의 내가 다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룹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나쁜 아이라고 스스로를 인지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나, 괜찮은 걸까요?

누구에게나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 안에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모습,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 가족 앞에서의 모습… 어느 하나가 ‘진짜 나’이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심리학자 융(Carl Jung)은 이를 ‘페르소나(persona)’, 즉 ‘사회적 가면’이라고 불렀습니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쓰는 얼굴이자,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 수단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의 나는 공손하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지만,

오래된 친구 앞에서는 편안하고 유쾌할 수도 있지요.

이렇게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오히려 그만큼 내가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의 모습으로 예를 들어보면 다들 수긍을 합니다.

“제가 친구들 앞에서 하는 유치 찬란한 개그를

진료실에서 하면 좀 그렇긴 하겠죠? “



친구 그룹마다 성격이 달라지는 나는 어떨까요?


“이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제가 리더 역할이지만,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는 조용해지고 수동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이중적인 사람 아닌가 싶어요. “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사람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역할’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나오는 서로 다른 모습은 오히려 내가 얼마나 유연하게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잘못된 게 아닙니다.


마치 같은 배우가 다른 무대에서 다른 배역을 맡듯,

우리도 다양한 장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건 ‘가짜’의 삶이 아니라, ‘다층적인 진짜’의 일부입니다.




단, 이런 페르소나가 ‘진짜 나’와 너무 멀어질 땐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하고, 관계도 무난하지만

내면은 텅 빈 것 같고, 아무것도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분.

이런 공허함은 ‘진짜 나’와 ‘사회 속 나’의 거리가 너무 벌어졌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껍데기만 쓰고 돌아다니다 들어온 기분이라

공허하고 지친 마음만 남습니다.

그걸 채우려고 음식을 많이 먹어보지만

배고픔과 공허함은 다르다 보니 결국 채워지진 않고요.

(역으로 폭식하는 분들의 마음을 따라 들어가보면 공허함이 나오고, 그안으로 더 들어가보면 이런 진짜 나와 보여지는 나의 큰 괴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내가 편안한 모습’과 ‘내가 보여주는 모습’ 사이의 간격을 조금씩 줄여나가 보기.

회의에서 한 마디라도 내 진심을 담아 말해보기.

믿을 수 있는 친구, 가족과 내 가장 편한 모습으로 시간 보내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혼자 있는 시간에 진짜 내 취향을 충족시키는 소소한 활동을 해보기.


무엇보다 가장 먼저 시작할 것은

진짜 나는, 여러 모습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가짜가 아닙니다.

단지 상황에 따라, 역할에 따라

자신의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가 입는 페르소나는 우리를 보호하고,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짜 내가 담기도록,

작은 숨구멍을 내고,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사에서의 나, 친구들 앞에서의 나, 그리고 나 혼자일 때의 나.

그 모두가 진짜 나의 조각들이고,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기억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