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엔 진상이 없다. 자영업자, 다른 과 동기들 이야기를 들으면 꼭 등장하는 진상이 희한하게 정신과에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다. 다른 업종에 비하면 아주 희박한 비율이다.
내 공간을 갖고 시간이 흐르며 진상이 덜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내던 중 대략 이유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건 아니고 순전히 내 생각임을 미리 밝혀둔다.
일단 어떤 사건에서의 가해자는 병원에 잘 오지 않는다. 그로 인해 상처 입고 피해 입은 자가 병원에 온다. 또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꽤나 뻔뻔하게 그 상황을 해석하고 흘려보내는 사람은 병원에 올 일이 없다. 자신의 잘못을 찾고 전전긍긍하는 자만이 병원에 올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다 병원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고 갈 뿐이다. 지나친 초자아의 발달로 죄책감을 너무 느끼고, 양심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일이 생기면 잠도 못 자고 끙끙 앓다 온다.
그렇게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 꽤 많이 하는 자책이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요”라는 것이다.
“나약한 게 아니라, 착한 거예요.
가끔은 조금 뻔뻔하게
가끔은 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나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