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아이는 항상 셔틀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내려주는데도 그 짧은 거리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어제도 아이는 나를 기다리다 만나자마자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 **이가 저번에 우리 집에서 놀다가 내 방청소 해줬잖아. 그거 청소비 삼천 원 내래. “
“야~ 그건 같이 놀다가 자기가 흥에 겨워서 갑자기 청소하고 했던 건데 무슨 청소비야?
그리고 친구들끼리 돈 요구하는 거 아니야. “
“엄마, 근데 그때 돈 안 줬으니 이자까지 붙여서 내라는데? “
집에 종종 오는 동네 친구가 돈을 요구한단다.
방 청소하는 그날 나 역시 거실에 있어서 상황을 아는데,
아이가 청소 부탁을 한 거도 아니고 놀다가 혼자 갑자기 자기 청소 잘한다며 자랑하며 시작한 청소였다.
또 뭐가 되었든 청소비라니.
친구 간에 돈을 내놓으라니.
친구 간 금전이 오가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설명하는데
대화가 잘 안 되다 보니 본업을 잊고 나도 언성을 높인다.
“걔가 자꾸 돈 요구하면
너 걔랑 친구 하지 마!! “
아차 싶지만 이미 발사된 말.
아이가 툴툴댄다.
아이들마다 스케줄이 달라서 자기랑 스케줄이 잘 맞고 같은 단지에 사는 그 친구가 제일 절친일 수밖에 없는데
왜 엄마는 못 놀게 하냐는 말.
그리고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나온다.
“에이, 엄마한테 괜히 말했네. 앞으로 말 안 해.
엄마 친구도 아니고 내 친군데 왜 엄마가 더 화를 내는 거야 “
수습불가다.
내일 삼천 원을 갖다 줄 기세인 아이 모습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점차 화가 오른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여유로이 소파에서 둘째와 놀고 있는 남편에게 소리친다.
“여보! 그 맨날 집에 놀러 오는 **이가 그때 방청소 해줬다고 삼천 원을 달래. 그게 말이 돼? 근데 또 걔랑 친구 하고 싶다고 돈을 주겠대 “
내 흥분은 아빠에게 옮겨붙는다.
“뭐라고?!
너 돈 주는 순간 걔한테 호구되는 거야!
친구 간에 그런 돈요구는 잘못된 거야
&@₩@@@“
더 흥분한 아빠가 폭풍 잔소리를 쏟아낸다.
아이는 또 낮게 읊조린다.
“아, 괜히 말했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네가 바로 돈을 주지 않고
엄마한테 말한 건 너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 같아.
엄마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판단을 참 잘했어.
아마 그 친구도 장난으로 던져본 말일테니 내일 지켜보고, 혹시나 또 돈 이야기하면 친구사이에 돈을 주고받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해보는 건 어때?
아깐 엄마도 너무 화나서 그랬는데 그일 하나로 친구 관계를 끊는 건 오버고, 어떻게 하나 지켜보자. “
아이도 좀 누그러든다.
아이랑 대화할 때 제일 조심하는 건
언젠가 아이가 내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엄마한테 말해봐야 좋을 게 없고, 일만 커지고, 화만 내고, 결국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부모역할훈련”이라는 책에서는
판단하지 말고, 방법을 제시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끔 질문을 하라고 한다.
“네 생각엔 친구 간에 청소비라며 돈을 주는 게 어떤 거 같아?”라고 차분하게 물었어야 했다.
딸 말맞따나 내 친구도 아닌데
내 딸에게 드디어 돈요구가 들어왔구나 하는 놀라움에
감정이 앞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