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원래 수학 학원 먼저 들어갔잖아.
근데 나보다 뒤에 들어온 애가 속도가 엄청 빨라서
나보다 벌써 두단원 앞을 하는 거야.
내가 5장 푸는 동안 그 애는 7-8장은 푸는 거 같아.
겨울방학 때는 주 5일로 늘려서 나오고... 따라잡을 수가 없겠어 “
대형학원의 획일화된 스케줄이 안 맞을 거 같아 보낸
개별진도 보습학원이 이렇게 아이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줄 몰랐다.
“달아, 근데 속도가 빠른 건 공부하는데 큰 의미는 없어.
네가 속도가 늦는 대신 더 꼼꼼히 살필 수도 있으니까.
사람마다 또 잘하는 과목이 다를 수도 있어. “
아이는 그래도 와닿지 않는 거 같다.
수학만 느린 게 아니라, 이젠 영어도 누가 제일 잘하고
국어도 누가 제일 잘하고, 미술도 누가 제일 잘한단다.
그 잘한다는 게 영어, 수학 같은 경우는 중학교 진도까지 친구들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우리의 공부가 초등 때 다 끝이 나는 게 아닌데
이 장기 레이스를 이렇게 달리는 게 맞나 싶다.
4학년은 5교시나 6교시까지 수업을 하니 끝나고 월수금 영어 두 시간, 화목 수학 두 시간을 하면 그날 갈 수 있는 학원은 없다. 이걸로도 아이는 최대치로 학원을 가는 것이다. 더 힘든 학원을 보내자니 저녁시간 숙제시간이 늘어날 거 같아 내키지 않는다. 저녁식사 후 한 시간씩 숙제를 하는 것도 내심 과한 공부인 거 같아 고민될 때가 많다.
“달아, 근데 공부는 초등학교때 하고 끝이 아니잖아?
엄마는 지금 커서도 매일 공부하는걸. 사람은 평생 공부하며 살아야 해.
중고등학교 때는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지금부터 너무 달리면 고등학교 때 지쳐서 공부가 질려버릴지도 몰라. 즐기면서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 “
“엄마, 근데 그 애들은 질려버릴 리가 없어.
지금도 누가 뒤에서 따라잡을까 봐 엄청 불안해해.
불안해서 계속 열심히 하고, 고등학교 가서도 그러겠지.”
“불안이라고?!!!”
아이 입에서 그 나이에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한 단어가 나온다.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일 뿐인데 공부에 불안을 느끼다니.
그것도 심지어 따라 잡히는데 대한 불안이라니.
내가 자랄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종류의 불안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습학원 하나 정도 다니며, 숙제도 물론 없었고
나머지 시간은 동네 곳곳을 누비며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뛰어놀았으니까.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시험을 백점 맞고 싶다는 정도였지
누구를 앞질러 간다는 개념자체가 없었던 거 같다.
모두가 선행이라는 게 없이 주어진 학년의 공부를 했으니까.
지금은 단원평가를 보면 대부분이 백점 아니면 90점 이상이다.
기본이 자기 학년 꺼는 잘하는 거고
아이들이 생각하는 여기서 더 잘하는 건 얼마나 고학년 것을 하고 있느냐이다.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공부를 달려서 이 아이들이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할까? 그게 끝이 아닌데.
병원에 오는 상위권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친구들 중에 늘 불안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여럿 떠오른다.
학교 다닐 때부터 줄곧 1등을 해왔고, 그 1등들이 모인 대학에서 1등을 못했을 때의 충격과 불안감. 그 친구들이 말하는 불안감이 바로 누가 뒤에서 따라올까 봐 불안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정체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앞지르겠지 하는 불안감.
"달아, 엄마는 네가 공부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긴 하겠지만, 불안해서 하는 공부가 되어서는 안 돼.
공부는 1등인데 불안 속에 산다면 그건 엄마가 바라는 일이 절대 아니야."
낮에 본 책의 구절도 잠시 펴서 보여준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에서 불안, 걱정 속에 사는 것은 여러 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불안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짧은 내용이지만 아이에게는 객관적 레퍼런스라 더 와닿는 거 같다.
다른 친구들도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자식도 자식이지만, 길에서 간혹 보는 딸아이 친구들, 집에 종종 놀러 오는 친구들이 실은 따라 잡힐 불안을 갖고 있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공부 그 자체를 즐기고, 누구보다 더 잘하는 것보다는 내가 한 뼘 한 뼘 자라는 것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