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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Jul 27. 2022

Mr. Taxi






아주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 주변의 동네, 학교, 비슷한 전공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물론 좋지만 연령과 성별을 막론해서, 별 접점이 없다시피 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새롭고 신선해서 귀를 잡아끈다.

그래서 아주 느긋하게 시장 한 바퀴를 돌아보거나 저녁 시간 아저씨들 많이 모인 대포 집이나 돼지갈빗집에서 엿듣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람 사는 얘기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 어디에도 완벽히 똑같은 사연은 없는 법이다.

내 사연도 평범하고 쉽지는 않다고 여겼는데 가만히 돌아보면 아직 덜 산 게 분명한 미완의 이야기일 뿐이다. 내 이야기는 ‘고작’ 이란 표현에 불과할 정도로 모두의 이야기는 대단하다.

지구라는 별에서 코딱지만 한 사이즈도 못 되는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개미굴처럼 사람으로 빽빽해 도무지 숨 쉴 틈 없어 뵈는 이 도시에 우리는 모두 일개미처럼 흔해 빠진 인간들이면서 동시에 저마다 나비를 꿈꾸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음을, 그렇게 느낀다.

잘 듣는 사람이 잘 쓰고 잘 말하는 거라고 가르쳐주셨던 고등학교 은사님께 삶의 즐거움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 대목이다.     


이야기 주워듣기에 참 좋은 곳 중 하나는 사우나다. 사우나에 앉아서 듣는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수다는 두말하면 입 아프게 재밌다.

몸 위에 새겨진 범상치 않은 타투를 힐긋대다가 이내 그중 누군가 ‘어유, 그런 거 하면 안 아픈가?’ 하고 물꼬를 트면 당사자인 나를 두고 이어지는 타투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곤 한다. 꽤 자주 벌어지는 대화이다. 그러다가 그들의 현란한 토크 드리블에 잠시 넋 놓는 부지불식간 사이에 토크의 주제는 전혀 엉뚱한 데로 튄다.

남편 자랑인지 욕인지 모를 이야기와 저 옆에 골목 사우나에 새로 오신 세신사가 실력이 좋다더라는 카더라, 고구마순 줄기를 어떻게 불려서 까야 잘 까지는지에 대한 정보, 그래서 대통령 잘못 뽑아 나라 죽 쒔다는 이야기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그리고 나만 하는 게임 같은 거긴 한데 저마다의 말투 속에서 알아챌 수 있는 뉘앙스로 고향 맞추기도 한다.

몰랐던 건데 창원과 울산이 다르며, 같은 전남이어도 강진과 여수는 많이 다르다. 부산에서도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 지역이 있단 걸 사우나 소금방에서 배웠으며 대구를 비롯한 경북의 언어가 ‘’ 발음을 많이 남긴다는 것도 구별해냈다.

사투리와 서울말을 절묘하게 혼합해 구사해도 어미 끝에 남는 여운은 저마다 다르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어도 말투가 안 바뀐다고 온몸을 다 내놨으면서도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는 아주머니의 웃음에 나이와 수줍음은 전혀 상관없음을 배우기도 했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으면서 나는 뭐에 수줍나, 가만히 생각하려다가 사우나 끝의 맥주 한 캔이 얼마나 시원했던지 금세 잊고 그런다.     


사실 수줍을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창피하고 얼굴이 확 달아오를 민망함이 더 가깝고 친근한 감정이다. 살면서 민망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수치를 안 다는 것에 내가 그래도 아주 양심을 다 버린 인간은 아니구나, 하면서 다행을 느낀다만 어느 때고 초연하고 의연한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가령 이런 순간에 말이다.     



명동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무더운 날이었다.

택시 기사님 성향마다 다르지만, 대화를 안 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경우도 많고 그날처럼 타자마자 뭐 명절날 몇 년 만에 만난 조카와 삼촌처럼 편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날도 있었다.

요즘 명동 상권이 많이 죽었던데요, 로 시작된 대화는 남산 3호 터널을 지날 때까지 제법 편안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기사님과 중고차 시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사님은 차는 중고로 사도 얼마든지 좋고 튼튼하다만 다른 건 중고로 사기가 조금 그렇다는 말을 마치면서 숨을 골랐다.     


“아니 전에 회사 다닐 때 후배 하나가 있는데 걘 뭐든 다 중고로 사더라고요.”     


“요즘 당근이나 중고나라 많이들 하니까요.”     


“무슨 뭐 신발에 옷에, 가구에 커튼까지 죄다 중고로 사 가지고는 일하다 말고 나가서 물건 거래한다고 그러고 참나.”     


“비싸고 큰 거야 그럴 수 있는데 전 옷이랑 신발은 좀 그렇던데.”     


“그렇죠? 아니 그러더라고 글쎄.”     


대단한 대화가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신호만 지나면 목적지였고 신호는 멈춰 있었다. 결제를 위해 슬슬 카드를 꺼내고 주섬주섬 가방을 여미고 있을 때였다.     


“내가 그래 가지고 너 이 자식아 너 자꾸 그렇게 중고만 사 버릇하면은 나중에 마누라도 중고로 얻어 인마!라고 했다니까?”     


오.

라는 애매한 탄식으로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 아니 갸웃댔다. 보셨을 리가 없지만.     


“아니 그러니까 그 뒤로는 중고를 좀 덜 사더라고.”     


신호를 지나 목적지로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데 머리 회전이 핑핑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나를 한 번도 중고의 무언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아주 타인에게 보일 나는 중고구나. 하는 깨달음이 제일 처음 약간의 충격처럼 튀어나왔고 뒤이어 줄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생각이 머릿속에 돗자리 펴듯 펼쳐졌다.

     


마누라를 중고로 얻어, 마누라를 중고로 얻어. 중고인 마누라를 얻어.     


카드를 태그하고 기사님과 마스크 위의 눈만 웃어 인사를 하면서까지도 그 문장을 되뇌었다. 마지막이 조금도 산뜻하고 유쾌하지 않았는데 조심히 가시라는 인사는 또 되게 예의를 차려했다.

그 순간 나는 내 기분이 불쾌함인 걸 알아챘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를 중년 남성에게, 심지어 나의 이혼 경력을 알 턱이 없는 타인에게 들은 소리로 좀 전까지 설렜던 마음이 구깃해 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 속 중고 거래를 참 열심히 한다는 사람의 심경 변화도 되짚었다.

마누라도 중고로 얻을 거냐는 말에 중고 거래를 좀 멀리하게 됐다는 건 아무래도 그건 싫다는 뜻일 거였다.

설마설마하다가 마누라를 중고로 얻을까 봐 당근과 중고나라 어플을 지우는 누군가를 상상하니 나의 ‘중고’인 상황이 그렇게 절레절레할 처지 구나. 다시금 깨닫고야 말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그저 ‘중고’의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걸까. 하며 택시에서 내린 뒤 조금 황망히 멍하게 서 있었다.

중고의 나, 누군가에게 중고의 애인이 될 나, 그래서 만에 하나 중고의 마누라가 될 나를 상상했다.     

이혼 경력을 달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임이 여전하다는 걸 잠시 잊었냐며 아무렇지 않게 발걸음을 뗐으나 어딘가 찝찝했다.


‘어, 저 이혼했는데.’라고 해야 했을까.

그러다가 그 대답에 어마어마하게 무안을 느끼고 머쓱했을 기사님을 생각하니 도리어 안 하길 잘한 듯하다가도 숨긴 거 없이 숨긴 사람이 된 기분이라 개운치 못 했다.

이혼했다는 도장을 이마 위에 찍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완벽한 타인은 무조건 모를 경력, 그걸 미주알고주알 떠벌리고 알릴 필요는 없는 노릇인데 내가 먼저 머쓱해 숨긴 기분이라 찝찝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턱하니 부딪히는 인식의 문턱 앞에서는 별수 없게 휘청댄다. 풀썩 넘어지지 않아도 문지방에 찧어 발톱과 발가락 사이가 뜨고 마는 아린 기분을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가끔은 그게 더 신경 쓰이게 아플 때가 있다.

물론 명동으로 향하던 택시에서 들은 중고 마누라는 아프게 와닿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어디에서 누군가는 어쩌면 그보다 더 부정적이고 낮게 얕잡는 단어로 이혼한 사람을 부를 거였다. 거기다가 애까지 딸렸어? 어휴, 야 중고도 중고 나름이지.라고 할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그럴 수도 있지, 했지만 텁텁하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내게만 싸늘한 기분이었다.

    

이혼했는데 뭘 그렇게 아껴,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말을 한 사람은 내내 혼자가 좋다며 다 피하는 날 위한답시고 그런 말을 했을 거다.

그 말과 택시 기사님의 말은 어딘가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어차피 중고인데 뭘.

사용감 있거나 스크래치가 있고 어디 부품 하나 없어서 원래 쓰이던 사람 손을 떠난 무언가.

금세 저렴하게 하나 사서 끼우면 쓸 수 있는, 봐줄 만하진 않지만 쓰기엔 탈 없는 그런 중고가 과연 날까.     

가치가 후려쳐져서 억울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중고니 네고 좀 해달라고 보채고 요구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취급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게 되려나.      



별 뜻 없이 알고 있던 누군가의 중고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해주려던 거겠지만 택시 기사님이 전해준 이야기의 여운은 참 오래갔다.


‘마누라도 중고로 얻는다고 하니까 그 뒤로 좀 안 그러더라고요.’


아무 연관도 없지만, 순간 나한테 무슨 냄새라도 나나, 얼굴 어디가 일그러져 있거나 빨간 틴트가 입술 선 밖으로 삐죽 나와 볼썽사나운가 싶어 핸드폰 액정에 얼굴을 비추고 킁킁댔다.

나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그러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으로 한 말이라 나 역시 흘려들으면 그만일 에피소드였는데.

추노를 당하다 붙잡힌 노비처럼 낙인찍힌 것도 없는데 내 어디에 그런 중고스러운 무언가, 남들이 꺼려야 할 꺼림칙함이 묻었을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나약한 개구리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 퐁당퐁당 던지는 가벼운 조약돌에 느닷없이 딱밤 맞듯 핑 돌 때가 생긴다는 걸 알았다.

고인 물가 위에 별안간 퍼지는 파동 같은 여운을 남긴 그날의 대화는, 그 조약돌은 마음 얕은 곳에 가라앉아 있어도 또 어느 센 파도가 일면 다시 둥둥 떠 자리를 옮길 거다. 존재감을 다시 일깨우면서.

그래서 언젠가 ‘그래, 난 중고인데.’라며 드물게 찾아온 설렘을 한풀 꺾어줄 브레이크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중고. 욕도 아니었는데 대체 그게 뭐라고 마음 안에 자꾸 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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