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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Aug 10. 2022

그대에게, Intro






있는 놈들이 더 하다는 말을 아는가. 물건이나 재산도 그러하겠지만 지금 말하려는 건 좀 다르다.

놀랍게도 이 처지에 연애 고민을 정말 많이 받는다. 그래서일까. 부록처럼 연애의 목적이라 불릴 수도 있는 섹스 이슈에 대한 조심스럽고 은밀한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언젠가부터 슬며시 이것들이 날 맥이나? 싶었지만 꼭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그냥 왠지 다 알 거 같고 다 겪었을 거 같은 거다. 한 발짝 떨어져서 큰 동요 없이 들어줄 것만 같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사실 굳이 나를 따지자면 전남편과의 연애 시절이 마지막 연애였다. 바야흐로 십 년 전, 그 케케묵은 에피소드가 그나마 가장 최신의 경험인 셈이다.

그런 고인 물이다 못해 썩은 물이 되어가는 내게 연애를 묻고, 결혼할지 말지를 묻고 좀 더 진하고 깊게 잠자리 문제 같은 걸 털어놓는, 있는 놈들이 하도 많아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혼과 기혼을 지나 이혼에 도달했으니 뭘 잘 알 거 같고 통달한 듯 보이기라도 한 건가.

실은 몰랐으면 더 모르는 처지인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말 많은 이의 오해를 사고 있는 거다. 그저 그냥 아주 센 현타를 맞고 성욕마저 파스스 사그라든 건조 하디 건조하고 재미없는 일상을 사는데. 어떻게든 한 줄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이것저것 물어오는 건 재미있고 안타까우며 가끔 부러운 일이다.

어쨌건 중학생, 고등학생이던 제자들이 이십 대 중반의 한창 날아다니는 현역이 되었고 친구들은 그 일련의 과정을 살아온 뒤 결혼을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때마다 최선을 다해 들어주고 알량한 경험을 공유한다.     


....가만히 또 보니 진짜 너네 너무 한 거 아니냐. 어디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     


어쨌든 이 글 이후로 날 어찌 볼지 좀 두렵긴 한데 모쪼록 어쨌거나 미혼도 기혼도 아닌 사람의 시점에서 보이는 요즘 사랑의 끄트머리 단면쯤이려니. 주저리 같은 자기 고백을 통해 이런 관점이 생겼구나, 하고 가벼이 읽어주길 바란다.          


놀랄까 걱정되는데 처음으로 뭘 얘기할지 아주 조금 고민했다가 선섹후사를 골랐다. 그냥 하도 많이들 얘기하길래 골라봤다.

얼마나 들었는지 원래 있던 사자성어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선섹후사, 바야흐로 드디어 온갖 빨간 맛의 시대를 지나 결국 선섹후사의 시대가 왔다.

원나잇은 하도 듣고 봐서 그러려니 했는데 세상에 오 마이 갓 이제 뭐가 대세야?라고 대낮에 떡볶이집에서 입을 틀어막게 한 단어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先 섹스 後 사귐이라는 뜻인데 신조어라기엔 이미 너무 오랜 시간 즐비하게 여기저기 일상적으로 쓰여서 자세한 설명은 더 하지 않겠다. 이미 다이렉트로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메다꽂는 단어라 구구절절 덧붙일 것도 없다.



일단 나부터 얘기해 본다면 섹스에 있어서 꽤 고루한 편이었다. 썸 타는 상태에서 손을 잡는 것도 질색이었고 모든 스킨십은 무조건 사귀자, 어쩌자는 말이 오고 간 뒤 시작돼야만 했다. 연애와 스킨십이 준비 시작! 하고 시작하는 달리기 시합이 아니지만. 당사자끼리 관계의 확실함을 인지한 뒤 키스를 갈기든 집에 안 보내던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었고 상대에게도 그렇게 요구했다.

같이 술 한잔하다 슬며시 손잡고 그러는 거에 혼자 조용히 식곤 했다. 그 순간 섹시한 호기심이 사그라들고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제스처에 매력이 반감되기까지 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데 얘 왜 이래, 조용히 잡힌 손을 빼내며 마음속으로 채점을 해댔다. 그렇게 마이너스 5점, 10점이 되면 설렜던 마음과 호감이 손안에 쥔 모래처럼 부스스 흩어져 사라지곤 했다.     


가만히 지나온 사람과 연애를 톺아보니 저런 이유를 시작으로 상대가 날 충분히 노잼인 여자로 봤을 수도 있겠다 싶다. 막상 저래도 시작하고 불나방처럼 달려들기라도 하면 매력이라도 됐을 텐데 말이다. 사이가 확실해져도 여전히 스킨십을 질색하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자세, 색다른 장소나 순서가 바뀌는 데에 못마땅한 티를 냈다. 리드를 바라면서 그 리드가 마음에 안 들면 대번에 드러내고 안 따르는 다루기 불편한 여자 친구였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니 서로 좋자고 하는 건데 안 따라주는 파트너, 얼마나 멋쩍고 무안했을까 싶다. 오늘은 아주 골로 보내주겠다며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마음의 준비를 했을 지난 이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뒤늦게나마 전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다들 꽤 괜찮은 남자였으니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자신감을 잃지 않길 바란다. 다들 애 많이 썼다. 내가 알아.)

그럴 진데 그러면서 정말 후련하게 잘했다는 만족은 하긴 해야 했으니 진짜 웃긴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침대 위 상대를 너무나 궁금해하고 상상하면서도 여기만큼은, 이 선은 넘어가지 말자며 스스로 붙들어 매는 타입이기까지 했다. 이것만 봐도 절대 음흉하지 않은 게 아니었는데! 내가 봐도 도무지 어렵고 유난스러운 데다가 만족시키기 까다로운 파트너였다.      


하나하나 돌아보니 어느 순간 무언가 탁 터트리고 활활 태우는 시점이 있을 법도 한데 막상 없었다. 첫 섹스를 트고 나면 둘이 죽고 못 사는 타이밍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때 엄청 사렸다. 상대가 금방 싫증 낼까 봐 두려웠고 잡은 물고기가 되어 흥미롭지 않은 여자가 될까 봐 누가 시키지도 않은 노심초사로 동동댔다.

궁금함과 야릇함을 잔뜩 응집해 키워놓았으니 본래 어느 지점에서 그 포텐을 팍 터트리는 게 맞는데, 대체 언제 터트리려고 그랬는지 첫 섹스까지도 두고 보며 숨죽이는 타입이었다.

본 게임을 시작하면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그러면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는 까다롭고 속을 모를 스타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와 보니 그렇다. 그때는 내가 뭘 많은 걸 바라냐며, 그냥 기본만 제대로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랬는데 내가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았다. 탐구력 강한 기특한 남자들을 줄줄이 내쳤다. 우린 이것을 두고 제 복을 제가 걷어찼다,라고 한다.  

    


키스하다가 조금 어라? 싶은 불편함이 감지되면 밀쳐냈고 첫 잠자리가 영 아니어서 일주일을 피하다가 헤어지자고 해버린 적도 있다.

아마 이런 착오와 불시착을 겪고 싶지 않은 극 효율을 따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게 선섹후사가 아닐까 싶다. 할 게 너무 많고 신경 쓸 게 천지인데 스킨십 안 맞는 연인과 영차영차 뭘 맞춰가기가 번거로운 마음을 기꺼이 이해하고 공감한다. 정말이지 그러기에 요즘은 그야말로 매력의 전쟁터다. 매력 있고 새롭게 끌릴 사람이 넘치고 넘치는데 뭐하러 안 맞는 거 붙들며 머리를 싸맬까. 어느덧 합리적인 논리에 그럴싸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도 지금이나 됐기에 아, 정말 애 많이 쓰고 잘해보겠다고 노력했었는데 왜 그걸 몰라주고 나 좋다는 것만 우겼을까, 하기도 한다. 그때의 한정된 시야에선 내가 좁게 알고 있는 얕은 감정의 만족만이 중요했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찰떡같은 호흡을 만들기 위한 실습이라도 열심히 했으면 상황과 관계는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잘 아는데. 안타깝게도 그땐 그렇게 기다리고 맞춰줄 여유를 지니지 못했다.

사이즈나 도무지 몰입할 수 없는 비루한 테크닉만 탓할 게 아니었다. 여자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남자는 없다. 긴장하거나 너무 생각이 많아도 잘 안 되는 걸 그땐 몰랐다.     


비단 섹스가 키스와 애무, 삽입과 사정만으로 끝나는 번식의 스포츠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면 두 사람이 공유할 쾌락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모른다. 어디서 주워듣고 본 게 있어서 머리로는 다 아는데 모르는 척하느라 자애롭게 실천하지 못한 과거가 몹시도 죄스럽다. 꼭 저 멀리 홍콩을 찍어야만 하는 게 섹스의 목적이 아니었다. 아 물론 홍콩 좋은 거 되게 잘 안다. 그래야 뭔가 한 거 같은 흡족함도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아기자기하게 티키타카가 잘 되는 게임 같은 섹스도 있는 거고 황진이가 바랐듯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를 베어 두고 싶은 두고두고 새길 따사로운 밤도 있는 법이었다. 섹스를 너무 편협하게 바라본 탓에 다양한 사랑의 손길을 진득하게 누리질 못했다.

모쪼록 미안할 따름이다. 많은 감각이 잠식되었을 내 몸에,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도.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으면 아주 현란한 청춘을 보냈을 거였는데 참 아쉽다. 하긴 많이 알고 다 아는 게 능사가 아니긴 하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이해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흡수해 감싸줄 생각이 없었으니 돌아간다 한들 별반 다르지 않았을 듯하다.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을 걸 알지만 솔직하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에서 자란 것도 한몫했겠다. <마녀사냥> 같은 토크쇼가 등장했지만 그러면서도 인터넷 세계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자가 뭘 좀 모르는 게 미덕이던 분위기가 만연했다.

겉으로는 갖은 쿨한 척을 해두고 내숭으로 가려야 했던 아이러니가 행해지던 급변기의 젊은 여자로 살아야 했던 건 그리도 피곤하고 모양 빠졌다.

    

하여튼 정말이지 그때 왜 그렇게 딱 들어맞는 남자가 없다고 징징댔나 모를 일이다. 내가 눈이 높길 하냐, 까다롭길 하냐며 한탄했는데 눈도 더럽게 높았고 맞춰갈 생각을 애초부터 안 하니 까다롭고 제멋대로인 애였는데 말이다. 내가 나를 이리도 모르면서 남자들 정말 모르겠다고 혀를 둘렀다. 경험으로 대충 섹스의 순서나 과정은 아는데 그렇다고 똑 부러지게 제대로 아는 건 없었다. 보통 그 간극에서 많이들 서툰 실수를 한다.

아마 그때가 모두 공평하게 헤매는 방황기가 아닐까.

나의 만족, 너의 만족, 정서적 유대와 음성과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수 없는 별같이 아득하기만 한 사랑의 언어가 오고 가야 하는 때인데.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고 들끓는 체력으로 우격다짐하듯 해치웠던 몸의 대화로 우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고 공허했는가.

그야말로 누군가를 어르고 달래 고차원의 만족을 선사하는 걸 배우는 때. 말 그대로 어른의 몫을 배우는 제2의 사춘기 같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문제의 그 떡볶이집에서 볶음밥을 추가하고서는 ‘자만추’의 새로운 정의도 배웠다. 세상에 정말 대단하기도 하지. 푸를 정도로 하얀 백열등 아래에서 냄비 바닥을 긁다가 뜻을 듣고는 잠시 아찔해 아득하기도 했다.

근래의 자만추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고 나서 만남을 추구한다는 뜻이란다. 그래서 이제 어디서 ‘저는 자만추가 좋아요.’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니면 안 되겠다고 혼자 몰래 볶음밥에 집중하는 척하며 되새겼었다. 어쨌든 일단 나는 자고 나서 만남 추구를 못 할 부류니까 말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애 딸린 돌싱이어서 여태 누구 하나 스쳐 가질 않았다. 그런데 자고 나서 만남을 추구해? 굉장히 택도 없는 소리가 틀림없다.

여전히 앞서 얘기한 대로 섹스에 있어서 그다지 열리지 않은 노잼에다가 어느덧 저 멀리 떠밀린 퇴역이다. 너무 오래전이라 감도 잃었다. 무엇보다 불을 지필 마음의 자리는 눅눅해져 있어서 불씨가 튄다 한들 화르르 번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나도 미친 척 하룻밤 불장난에 휘저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호르몬이 미쳐 날뛰던 이십 대 초중반 때고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이니까, 라는 억지의 정신승리로 합리화가 가능했을 때의 얘기다.

감당하기 어렵게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면 오히려 하루 진하게 놀고 말자고. 굉장한 열등감에 쌓여있던 이십 대 때는 어차피 제대로 만나봤자 상처받을 거 뻔하다며 외려 그런 삐뚜름한 선택을 하곤 했다.

하루 가진 것만으로 됐다니. 거짓말을 할 거면 번지르르하게라도 하지 저딴 멍청한 생각을 했다. 끝마치고 눈을 마주하며 무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회피형 인간은 이런 데서도 이렇다.

차라리 솔직했다면 인연이 어그러졌을지언정 후회 없이 멋있기라도 했을 거다. 창피는 순간이고 미련은 그거보다 좀 더 길게 가기 마련이었다.

그땐 누군가를 더 원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두려웠다. 그렇게 망설이면서도 놓치기는 싫어서 그렇게 번번이 그렇게 엇나갔다.

늘 거울 속 내가 불만족스러웠다. 그런 나를 제외한 세상 바깥이 예쁨으로 가득해 주눅 들었다. 그래서 매력 있는 누군가에 비해 한참 못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편안한 사람’이라고 얼버무렸다. 편안함을 바라는 기저에는 그렇게 어둑한 어린 날의 열등감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가만히 뒤돌아다 본다. 진정으로 하룻밤만 나누고 스쳐 지날 누군가가 되고 싶었을까. 원하고 그리던 사람의 하룻밤 파트너로만 그치고 싶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매번 그런 식으로 속 편하다고, 진득한 연애는 귀찮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해댔고 놓치고 후회했다.     

그런 사람과 머쓱하고 불편하게 눈을 뜨는 게 싫었다. 어색하게나마 대화가 오고 가다 뜻밖에 잘 풀릴지도 모르는데 겁부터 먹고 도망갔다. 술김에는 그렇게 세상 섹시한 척 예쁜 척해댔을 거면서, 그리도 앞뒤가 안 맞게 아리송하게 굴었다. 아침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진짜 내 모습을 일부분 보여야 한다는 게 께름칙했다.

혼자 눈 떠 옆자리가 비어있는 침대를 보며 상대가 뭘 느낄지는 배려하지 않았다. 당장 참을 수 없이 식어버린 떨떠름한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나를 구해내는 게 급했다.

그때 숨기고 있는 진짜 알맹이를 내보였으면 거절당할지언정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뒤늦게서야 부끄럽고 힘든 과거를 반성한다.

다 지나서 들은 이야기인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로 나를 꽤 괜찮게 생각하고 저지른 밤이었는데 내가 열심히 도망 다녀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했다. 세상에 그렇게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여하튼 그런 찌질한 경험들이 겹겹이 촘촘하게 베이스로 깔린 사람인데. 자고 나서 도망가기 바쁜 인간이 자고 나서 알아간다니.

서로 벗은 몸을 다 본 뒤, 어디가 민감하고 무슨 소리를 냈는지 다 듣고 본 뒤에 조신하게 마주 앉아 그게 되나? 싶어 몇 번을 갸웃댔다. 촌스러운 티가 날까 홀로 어색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으면서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허겁지겁 꺼풀을 벗겨 정신없이 해치워놓고 별안간 지금부터 깊어질지 말지 결정한다는 근래의 사실이 머리를 굴려서 입력하고 인식해야 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낯설었다.      


멀쩡한 옷으로 덮고 흐트러진 머리를 단정히 한 뒤 멀쩡히 마주 앉아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한 상대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영 머쓱하고 숨 막히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내심 서로의 잠자리를 얼마쯤으로 채점한 뒤 사귈지 말지 정하는 게 요즘 사랑의 트렌드라면 아마 나는 다음 생에 새 사랑을 꿈꿔야 하겠다.

‘자만추’의 논쟁으로 떡볶이집이 끓는 떡볶이의 열기처럼 뜨거울 때 혼란하다 혼란해, 하면서 떠오르는 어지러운 과거의 장면들을 애써 무시하며 웃고 넘겼지만 뒤따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글쎄 모르겠다.

섹스가 연애의 모든 것, 전부는 아니어도 하이라이트의 한 부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미 폭죽 다 터트리고 불꽃놀이 다 한 뒤의 시야가 두근대며 맑을 수 있을까. 싶다.

식성을 파악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를 같이 보고. 늦은 밤 친구와 술 마시고 걸어오는 전화에 인상 쓰고 달려도 나가보고. 너무 다른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써 내려갈 사소하고 중요한 모든 에피소드가 섹스 이후에, 섹스를 끼고 벌어진다라. 아슬아슬한 기류 안에서 오고 가는 작고 짜릿한 눈맞춤을 무디게 받아들이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건 무언가 빠트린 기분이 들 것만 같다.      


그럴 것이 딱 그 순간이 아니면 못 느낄 간지러우리만치 하찮고 작은 설렘이 분명 있다. 너도나도 다 알고 있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와 떨림. 한껏 조심하면서도 함부로 선을 넘어 상대의 어딘가를 침범하고픈 상상의 나래 같은 건 섹스 이전과 이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저 셔츠가 벗겨지면 어떨지, 귓바퀴가 다 간지럽게 귓속말을 속삭이면 얼마나 빨갛게 물들지, 침대 위 성향을 어떻게 드러낼 것이며 과연 어떤 걸 요구할지, 우리의 관계는 이후 더 돈독해질지, 아닐지까지. 글로 보면 한껏 음침하지만, 옥시토신이 미친 듯이 폭주하는 그때만의 심장 박동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정말 그 모든 판타지의 별천지가 썸이라는 그 불완전한 관계에서 다 소화가 되긴 될까?      


어딘가 두려움까지 동반한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텀이 연인 사이에 정말 필요치 않은 걸까? 기껏 그렇게 실컷 정 들여놓고 속궁합이 안 맞으면 난처한 것뿐이니까, 섹스라는 본 게임을 앞두고 전부 다 거추장스러운 긴 인트로일 뿐인 걸까?

그건 맥 빠지는 걸 넘어서 슬프기까지 하다.


사랑해 마지않는 노래 중에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라는 곡이 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풋풋한 대학생 신해철은 30초가 넘는 인트로 끝에 겨우 목소리를 들려준다. 힘이 넘치다 못해 터져 나가 무작정 뻗치는 애드리브 후로 곡의 전개는 급물살을 타며 귀를 사로잡는다. 곡은 내내 조마조마하며 무언가 터트려 줄 거라는 청자의 기대에 보란 듯이 몇 배로 화답해 갚아준다. 마지막까지 성공적으로 불꽃을 터트리면서 싱그러움을 잃지 않는다.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39초에 달하는 인트로를 두고 길어서 지루하다 하지 않는다. 외려 전주가 곡의 백미라고 하기도 하는 이도 있다. 정말 그런 게 대한민국에서 나와 자랐다면 그 전주와 인트로에 심장이 뛰지 않을 리 없다.     


과연 그런 <그대에게>에서 그 인트로가 요즘 나오는 곡들처럼 10초 내외로 짧았거나 아예 없었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슬며시 달아올라 신나게 뛸 준비를 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 같은 전주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는 세상 속에도,’를 정말 숨차게 바로 급히 내뱉는 신해철의 목소리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가슴 뛰게 만드는 39초의 정성스러운 도입이 없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그토록 풋풋한 정성으로 와닿을까.

한껏 두근거리게 펼쳐지는 연출이 아니었다면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다는 그 치기 가득 어린 다짐이 상큼하다 못해 언제고 청귤처럼 시게, 극적으로 와닿아 가슴 뛰게 만들 수 있었을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사람 사이에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굳게 될 자만추와 선섹후사가 후에 무엇으로 기록되고 기억될지 한껏 뒤 쳐져서 놀라기 바쁜 나는 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리는 두근거림, 언제나 있어 주겠다는 무조건적인 설렘의 시간은 당장, 그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지금이 아니면 없다는 거다.

안 느끼고 생략하겠다는 건 선택이니 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너무 짧아 아쉽기만 한 찰나의 그 반짝임을 이제 더 귀하게 여기지 않는 듯해 조금 걱정스럽고 아쉽다.

불꽃놀이의 하이라이트에서 불발탄이 나올 수 있는 사고를 미리 방지하자는 게 좋은 견해이긴 하나, 사랑 = 섹스가 아니고 섹스 = 사랑이 아님을 이미 엿봐버린 나는 그렇다.     

     

지나치게 빨리 달아오르는 동안 놓친 것들, 몸이 가까워지느라 눈 여겨보지 못한 마음의 거리가 언젠가 분명 헤어져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걸, 꼭 알아뒀으면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데 그 사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 한 채 헤어질 수도 있는 노릇임을 간과하지 말자. 


그러고서 한 박자 늦게 찾아오는 공허와 허무는 실연보다 아프다. 시리게까지 느껴지는 허전함이 몸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오면 스스로 못 견디게 싫을 거다.

그건 소소하게 겪는 현타보다 몇 단계 위의 고차원적이고 날 선 입체의 고통이다. 어쩌면 다음 사랑을 맞이하기에 주저하게 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답은 없다. 사실 그래서 이 문제가 어렵다. 당연한 거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리스크를 안고 진행해야 한다는 게 알면서도 참 골치 아프고 맥 빠진다. 가파르게 하락하는 주식이었으면 손 털고 말아 버리기라도 하지만 인생에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삶에 스미게 허락하는 건 맥락이 아주 다르기에. 문고리를 잡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기꺼이 이해한다.


삶은 참 예상할 수 없는 거라 잠시 스치기만 한 사람이 잊을 수 없는 향기를 남기기도 하고 잊고 싶은 사람이 영영 잊히지 않는 누군가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충분하게 신중해야 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 순간에 뜨겁게 솔직해야만 한다.      


단물 다 빠진 감 없는 나는 이 정도로 이 주제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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