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은 Jul 17. 2023

논현동 블루스






1차에서 2차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지은씨는 꼭 나랑 소주 한잔 더 해야 한다고 단단히 팔짱을 낀 여자 선배를 부축하며 걷는데, 옆에서 멈춘 택시에서 반지르르 잘 꾸민 남자 셋이 우르르 내렸다. 나름 명품을 가지가지 골고루 걸친 옷차림과 망설임 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걸음걸이로 얼추 사이즈가 나왔다.      


“뭐 하는 사람들이지?”     


슬쩍 취해서 풀리던 선배가 또렷한 귓속말로 속닥였다. 눈이 커진 표정에 담긴 호기심에 반응하지 않았다. 굳이 내 설명이 없어도 지하 노래방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이 답이 될 테니 말이다. 술 냄새와 사람 냄새 가득한 역삼동 골목, 불현듯 잊고 살던 그가 떠올랐다. 잊혀도 그만일 기억이었던 그. 논현동, 하면 한신포차 다음으로 생각나는 그가 말이다.     



20대 초에 어쩌다 혼자 살게 되었다. 가족들이 흩어지는 바람에 홀로 서울에 있어야 했다. 지저분한 과정을 겪었고 결국 보증금 없이 두 달 치 월세만 들고 논현동으로 흘러가게 됐다. 

월세에 비해 수준 이하이던 그 집의 이사를 끝내고 허탈하게 혼자 나와 동네를 걷는데 사람이 너무 없고 조용했다. 어라, 이렇다면 말이 달라지지. 강남은 강남이구나. 하면서 들떴었다. 고 조금만 걸어 나가도 편의점이 널려있고 그 시절인데도 배달 맛집이 천지였다. 그러나 그 다닥다닥 붙은 빌라에서 하루도 채 보내지 않고 실체를 알았다. 와, 뭔 놈의 미친놈들이 새벽에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욕을 해대는지. 여자 비명에 화들짝 놀라 뻑뻑한 창문을 열어젖혀 두리번대면 거의 그냥 취해서 웃고 떠드는 거였다. 혼자 살게 된 것도 두렵고 무서웠는데 그런 환경이니 오죽했을까. 잠 한숨 못 자고 살길 일주일쯤 했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밖을 나서는데, 공동현관에서 누가 휘청대며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에 아이돌인가 싶게 멋있는 인영이었다. 유리문을 두고 안에 선 나와 바깥에 선 그가 눈이 마주쳤다. 참 잘생겼는데 묘하게 탁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논현동에서 일주일 살아보니 파악이 됐다. 한눈에 봐도 그냥 술 마시고 놀다 온 사람이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닥으로 툭 떨구는 고개에 그 옆을 무심히 스쳐 지났다. 백팩에 머리 질끈 묶고 학교 가는 학생과 명품 정장 쫙 빼입은 남자. 얼핏 스친 그에게서는 그 바닥을 잘 모르는 나도 진하게 맡을 수 있던 화류계 냄새가 풍겼다.     


그와 말을 트게 된 건 재활용을 버리러 나오면서였다. 게릴라처럼 뜬금없이 자꾸 누군가 어디서 노래를 불렀다. 매일 말이 빌라지 판잣집 같은 곳에서는 누가 죽으라고 하동균 노래를 불러제끼는데 전혀 감미롭거나 듣기 좋은 게 아니었다. 느닷없이 또 하동균 테러가 시작된 거였다. 그녀를 사랑해 달라고 쌩난리를 치다가 갑자기 나비를 찾기 일쑤인 그 소음.      


“아 미친 건가.”     


노래라도 잘 부르면 몰라, 그것도 아닌데 하동균에 비비다니. 똥 씹은 내 표정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던 그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삐딱하게 곁눈질하니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야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여기 4층에 주인집 아들이에요. 몇 번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데 지 아들이라 그런지 그냥 냅두던데. 졸라 개념 없어.”     


입 안 열고 비싼 옷 입은 그는 멋진 모습이었지만 입을 연 그는 그냥 동네 양아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눈동자는 덜 탁했지만 이미 선입견을 끼고 보는 내 눈에 고울 리 없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가까워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저 301호 살아요.”     


툭 담배를 내던져 끈 그는 그렇게 통성명을 했다. 사는 데 알아서 어쩌라고. 학교 다니면서 죽으라고 알바 3개 뛰어도 부귀영화 못 누리는 나와 일주일만 일해도 내 한 달 알바비는 우습게 벌 사람. 아무리 잘생기고 싹싹해도 호의가 호의로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난 모르는 남자들 앞에서 술 팔고 웃음 팔며 안기는 일은 안 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만 했으면 내가 이 글을 안 썼겠지. 무용과에는 새벽 특강이란 게 있는데 학교까지 가려면 진짜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새벽에 나가다 그와 마주칠 확률? 거의 매일이었다. 가벼운 눈인사와 고갯짓이 ‘야 일찍 일찍 다녀라.’로. ‘학교 잘 다녀와라.’ 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친밀감으로 금세 자라나고 만 거다. 알바 끝내고 치킨 냄새 폴폴 풍기며 그 불야성을 지나칠 때 녀석이 여자와 거리를 지나는 것도 몇 번 봤다. 물론 때마다 여자는 바뀌었다. 눈이 마주치면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지만, 슬며시 이해되더라. 

쟤는 저게 일이니까. 그러고 다음 날 마주치면 그는 취한 와중에 더 상냥하게 웃으며 학교 잘 다녀오란 인사를 건넸다. 어딘가 맥없고 초췌한 미소였다.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슬며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는 일은 달랐지만 둘 다 스물둘이었다. 둘 사이에 속절없이 그 나이 때 애들 같은 가벼움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상에 자주 끼어들수록 깜빡이는 까만 속눈썹과 웃을 때마다 생기는 인디언 보조개에 눈이 갔다. 남자들이 이래서 청순글래머에 열광하는구나, 이래서 아저씨들이 룸살롱 다니고 돈 갖다 바치는구나.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이 골목을 터전 삼아 불나방 같이 사는 사람들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의 마지막엔 결코 해선 안 될, 그러나 화류계 인간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있어 주면, 얘가 좀 행복하지 않을까.’     


학교 잘 다녀오라고 등을 두드려주던 녀석은 어느새 밥 먹다가 내 머리칼을 서슴없이 넘기기 시작했고 말을 걸 때마다 손등을 두드렸다. 야,라고 부르던 호칭이 지으나아아, 정도로 늘어지며 살가워진 때였다. 녀석은 학교생활을 궁금해했고 군대 갔다 와서 수능 보면 너무 늦나? 같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인 서울 하려면 몇 등급이 나와야 하냐고 꽤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그러게, 그 어리다 못해 시퍼렇게 푸른 나이에 다시 시작하려면 얼마든 할 수 있었을 텐데. 그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나는 어림없고 택도 없단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아마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녀석이 학교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왔었다. 공연이 끝나고 처음으로 둘이 술 한잔하는데 녀석이 저런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 이 시간에 일 아니고 손님 아닌 여자랑 술 마시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당연히 거짓말일 걸 알았다. 그러나 어두운 눈동자에는 맞은편에 있는 내가 다 알아차릴 설렘이 일렁였다. 눈을 피해 음식으로 고개를 숙이자 앞머리가 쏟아졌다. 자상하게도 옆으로 넘겨주는 손길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체할 것 같았다. 수많은 여자의 머리칼을 넘기고 귓속말로 달콤함을 속삭였을 입술이 미웠다. 생각해달라고 생색낸 적도 없는데 녀석이 주말 하루를 쉬고 여기까지 와준 게 얼마나 손해인지 계산했다. 친구, 혹은 썸이 되기엔 이미 내가 그를 한참 앞서서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담스러워진 거였다. 어떻게 될지 꼭 찍어 먹어야 다 아는 게 아니었다. 어찌 될지 빤히 아는데 왜 좋아지는 건데. 어디 남자가 없어서 저런. 근데 애는 짠하고.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2차? 그거는… 손님이 부르는 가격이 마음에 들면 나가기도 하긴 하는데. 가게에 시간당 떼주는 돈만 주면 나머지는 내가 먹는 거지. 가게에 시간당 2만 원을 떼준다 쳐, 손님이 100만 원을 부르면 나머지는 내거니까… 근데 그게 왜 궁금해?’     


그런 삶을 사는 남자를 감당 못 할 게 훤했다. 일도 일 나름이지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터무니없었다. 만약 안아보게 된다면, 밤을 보내본다면 그 순간마다 어제와 그저께 저마다 다른 여자를 안았을 품에 있는 건데. 완전히 그 순간의 행복을 순수하게 누릴 수 없을 거였다. 그저 가벼운 파트너라면 모를까. 이 마음으로는 너무 괴로울 거였다. 애초부터 가벼운 파트너 같은 걸 둘 성격도 아니고 여유 없는 내 삶도 비루하고 바빴다. 속사정을 파헤치자면 녀석이 더 피폐하고 음울하겠지만. 내가 그걸 이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녀석이 꽤나 오래 내 눈치를 보며 맴돈 데에는 아마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다.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을 거다. 녀석은 마음 아프게도 착했다. 내가 마주쳐도 데면데면해지고 서서히 멀어지는 걸 바라만 보며 무슨 마음이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다. 마냥 이해해 달라고 바랄 수 없었을 처지를 이제 와 생각한다.     


한 계절이 시작할 때 온 논현동에서 딱 그 계절만 보내고 떠났다. 이사하던 날, 일을 끝내고 와 옷도 안 갈아입은 녀석이 다 풀린 눈으로 빌라 입구에 주저앉아 있던 게 기억난다. 여자 혼자 이사하면 일 험하게 대충 해준다고 꾸역꾸역 트럭을 떠나보낼 때까지 빨간 눈을 깜빡였다. 멀지 않은 곳으로 가니까 죠스 떡볶이 먹으러 온다고, 그때 보자고 인사를 했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논현동에만 있던 게 여기저기서 잘만 생겼다. 그를 보러 굳이 떡볶이 핑계를 대지 않아도, 논현동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문득 십 년이 지난 지금, 녀석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졌다. 학교 구경에 들떴던 옆얼굴이, 이사하던 날 어색하게 건넨 인사가 눈에 선하다. 군대는 어떻게 했는지, 아직도 그 일을 하는지. 출근할 때마다 실핏줄을 가리는 안약을 아직도 넣는지 같은 게 궁금하다.      

논현동 밤거리에서 다시 그때처럼 마주한다면, 이번에는 친구 혹은 동료와 거하게 맛있는 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를. 혹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데이트이기를 바랄 뿐이다. 한때 친구이자 설렘이던 멀어진 사람이, 그렇게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맥심에 연재하지 않은 잉여글(?)이랄까요? 소중한 재고같은 글입니다.

가끔 이런 글도 괜찮을 것 같아서.










작가의 이전글 어린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