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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Aug 16. 2023

뽀뽀하기 좀 그런 나이






귀여운 일이 있었다. 어찌 보면 서운해야 할 일이기도 한데, 일단 귀여우니 써보겠다.

9살.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바뀐 나이 셈으로 7살인 우리의 2학년과 오늘 아침 헤어지면서 있던 일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잔뜩 미간을 찌푸린 아이에게 허리를 숙인 뒤 뽀뽀를 하려는데 이 녀석이 난감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거다. 마치 누가 보면 안 되기라도 하는 듯이.      


“아이 좀.”

“왜?”

“여기 선 좀 그렇고. 집에서 해줄게.”     


집에서는 자기 전에 뽀뽀 네 번 정도는 해야 눈을 감고 자는 척이라도 하는 애가, 게임을 더 하고 싶거나 부탁할 게 생기면 냅다 입술부터 맞대고 보는 애가, 학교 앞에서는 싫다는 거다.

아니 벌써 이러나? 싶은 서운함보다 웃음이 먼저 퍼졌다. 

대체 어떤 이유일까? 친구들과 남자가 이쯤 나이 먹으면 밖에서 엄마랑 뽀뽀하면 안 된다는 얘기라도 속닥댔을까? 언제까지고 밖에서 스스럼없이 뽀뽀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기가 벌써 왔다는 게 새삼스럽게 새로웠다. 괜히 서운할까 봐 집에서 해주겠다는 말이 어찌나 웃겼는지. 고작 뽀뽀 하나로 마음 상할 거라고 여기는 뽀글거리는 머리통이 깜찍했다. 머쓱함과 남사스러움을 아는 시기까지 컸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슬며시 뿌듯하기까지 한 내 속을 알까 모를까.     


깔깔 웃는 나를 두고 교문 안으로 들어간 아이는 한참이나 뒷걸음을 걸었다. 저 엄마가 왜 저러나, 삐친 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고 사라지는 모습에 기분 좋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 안 할 때가 올 거고, 내 연락을 성가시게 받는 날이 오면 그때의 감정은 또 다르겠지만. 오로지 엄마에게만 매달려 들러붙어 살던 아이였는데. 아이의 세상이 엄마와 나, 에서 확장되어 넓어졌다는 걸 알게 되니 행복했다.      


이제 아무 데서나 뽀뽀를 하거나 함부로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걸 안 해야겠다. 만 7세 어린이의 사회적 입지와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가오와 간지를 따지는 사춘기가 금방 올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귀여워하되 먼저 존중해 드려야 맞지. 어쨌거나 아들과 공공장소의 애정표현을 다시 생각하게 된 오늘이 아쉽고 시원섭섭하며 기특하다. 언젠가 집에서도 뽀뽀 안 할 때가 오겠지. 턱 끝이 까끌까끌하고 나보다 훌쩍 키가 큰 어른 남자를 떠올리니 까마득하고 벅차다.

지금은 이렇게 여리기만 한데. 여리기만 한 이 몸이 내가 올려다볼 정도로 든든히 넓어질 때 괜히 눈물겨울까 봐, 벌써 아쉽고 섭섭하다.     


언젠가 떠나보낼 행복, 또 언젠가는 그리워할 오늘이란 생각이 든다. 아쉽고도 반갑다. 

잘 커주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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