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아스퍼거 진단 - 1
아들은 네 살이 되자 너무 심하게 울며 떼를 썼다. 나는 아이가 어떤 포인트에서 울며 왜 떼쓰는지 예측을 못해서 우왕좌왕했고, 어찌할 줄 몰랐다.
남편은 그런 아들과 나를 지켜보다가 아이가 떼를 쓰는 수준이 심상치 않다며 오은영 클리닉, A 소아정신과 두 군데에 진료 예약을 했다.
육아에 지친 나는 남편에게 괜한 걱정거리를 만든다고 화를 내면서도 A 소아정신과에 찾아갔다.
평소 신중한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서 꿈틀댔다.
A 소아정신과 의사는 우아하지만 무신경하게 우리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놀이 치료, 언어 치료, 사회성 치료, 부부 상담, 엄마 양육상담을 권했다.
A의사는 진단명을 말한 후 병원에서 제공하는 치료들을 받으라고 기계적으로 말하고는 끝이었다.
나는 오은영 선생님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크로스체크 목적이었던 A의사를 불신하기로 결심했다.
그 의사를 싫어했지만 오은영 선생님의 진단을 받기 전까지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기에 모든 치료를 진행했다.
A소아정신과 의사, 치료사들은 묘하게 엄마들을 죄인취급했지만,
나는 우리 아들이 자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2개월이 흘러서 오은영 클리닉에서 어느 날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
그 당시 최소 10개월은 기다려야 오은영 선생님께 진단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를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당일 40분 내에 클리닉에 도착할 수 있냐는 물음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급하게 클리닉으로 향했다.
오은영 클리닉에서 아이의 풀 배터리 검사, 부부 mmpi 검사, 아이와 엄마의 놀이 관찰 등 다각도의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를 듣는 날, 오은영 선생님께서 내가 아이를 안고 달래는 모습을 관찰하시더니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였을 문제상황들을 쭉 읊기 시작했다.
심지어 시댁에서 엄마가 아이를 예민하게 기른다는 말도 들었을 거라는 말씀에 너무 놀랐다. 내가 시댁에서 들었던 표현 그대로였다.
오은영 선생님은 아이의 청각/미각 민감성, 반향어 사용, 책에 대한 집착 등 행동적 특징과 검사결과를 종합하시면서 아이가 아스퍼거로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아이들의 감각은 일반인들에 비해 고도로 예민해서 세상 모든 자극들이 통증처럼 느껴지는 감각체계를 지녔다고 하셨다.
오은영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세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각통합치료, 언어 치료, 놀이치료, 엄마양육상담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아이가 아직 어리니 꾸준히 치료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고, 부모님만큼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거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는데, 조명이 고장 났는지 건물 안이 너무 깜깜했다.
앞을 바라보니 건물 밖 햇빛 가득한 거리에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삼삼오오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 아들이 햇빛 비추는 거리 위 평범한 사람들 속으로 보이지 않게 스며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에게 예정된 상처와 시련이 가늠조차 안 돼서 슬픔과 공포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내 얼굴 같지 않았고, 눈물을 닦으려고 팔을 들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누군가가 나를 세게 치고 지나간 것 같았는데 아프지 않았고, 어떤 감정도 일지 않았다.
집으로 가야 했지만 무릎이 없어진 것 같아서 그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건물 밖 햇살이 부서지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깜깜한 방에 갇힌 나와 아들이 작은 열쇠구멍을 통해서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