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나의 예민함에 대하여 (1)
“술도 좀 마시고 그래야 남자친구가 생기지.”
“남자들은 술 좀 마실 줄 아는 여자들을 좋아해.”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마시지 않는다 이야기했을 때, 내가 들었던 가장 어이없는 말이다.
사실 딱 두 사람에게 딱 두 번 저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첫 번째는 20살 때 알바를 하던 레스토랑의 주방장으로부터, 두 번째는 26살 때 직장에서 50대 여자 선배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화가 났었다. 그때 그 주방장은 요리를 하면서 담배를 꽤 많이 피우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난 그것만으로도 별로 그 사람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맛에 누구보다도 민감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맛을 둔감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흡연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니? 나이대는 30대, 그리고 결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레스토랑은 그렇게 규모가 크거나,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을 삶의 목표점으로 삼을만한 곳은 아니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곳에서 일하던 그 주방장에게 나는 별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차피 나는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이야기할 거리가 없기도 했고.
나에 대해서 뭘 안다는 것인지 모르겠는 담배나 뻑뻑 피워대는 그런 남자가 자신보다 열몇 살은 어린 여자아이한테 삶의 교훈이라도 주는 듯한 뉘앙스로 말한 저 “술도 좀 마시고 그래야 남자친구가 생기지.”라는 말을 던진 것은 내게 꽤나 큰 문화충격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저 이야기를 하기 전 나는 몇 명의 남자친구를 만났었고 그 당시 남자친구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색다른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사실 한심하게 느껴졌다. 술을 마셔야 남자친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남자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을 때 만나지 못할 남자친구라면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걸 ‘당연한 진리’인 듯 이야기하는 꼴이라니.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그리고 저런 사람도 결혼을 하는구나, 했다.
두 번째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실망감이 컸다.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님이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역시 별 거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별로’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사실 잘 마시고 싶은 소망을 이전부터 품어왔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고, 게다가 잘 마시기까지 하는 소위 말하는 ‘주당’ 들을 보면 부러운 감정이 피어오른다.
나는 술을 정말 못 마시기 때문이다. 이슬 톡톡과 같은 도수 2%의 술을 몇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곧바로 빨개지는 데다가, 극심한 경우 알레르기가 올라와 온몸이 가렵기도 하다. 그리고 원체 술을 잘 못 마시다 보니, 술을 마실 때 나의 몸이나 마음 컨디션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속이 더부룩할 때 술을 마시면 곧바로 토하기 일쑤고, 몸이 안 좋거나 더위를 먹은 것 같은 상황에 술을 마시다 쓰러진 적도 있다. 얼마 전 처음 안 사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술을 마시면 두드러기가 올라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단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시는 술은 무조건 화를 불러일으킨다. 하여튼, 알코올을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하는 몸뚱이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술을 ‘왜’ 마시는지 잘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첫 술은 20살 때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도 얼굴이 바로 빨개지는 당시에는 축복받은 몸뚱이를 가졌던 덕분에 선배들이 술을 많이 권하지 않았었다. 당시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지는 추세이기도 했고. 보통 술을 마시면 기분이 ‘업’ 되면서 재밌다는데, 나는 그렇게 뇌를 빼놓고 하는 대화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깔깔대놓고 다음 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도 안나는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도통 모르겠었다. 나는 그렇게 노는 건 술을 안 마셨을 때 훨씬 가능한걸.
게다가 너무 졸리다. 술은 보통 밤에 마시지 않나. 야식을 먹는 습관이 없고, 무조건 귀가해서 잠을 자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냥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술을 잘 못 마시다 보니 조금 마시고 확 빨리 취했다가 깨고는 했는데, 그렇다 보니 나를 제외하고 모두 취해 있는 풍경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대학생 때 있던 그런 단체 술자리에서 나는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 언제 가… 집에 빨리 보내줘……’ 그리고 정말 신기했다. 다들 왜 집에 안 가는 거지? 지금 막차 끊겼는데??
이에 더해서, 술은 몸에 안 좋지 않나. 담배도 마찬가지이지만, 몸에 좋지 않은 걸 왜 굳이 하는 걸까……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대학생 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술 마시면 안주 먹고, 안주 먹으면 살찌고, 돈은 돈 대로 쓰고(술을 별로 안 마시는 내게 n빵은 항상 너무 가혹했다), 다음 날 숙취에 힘들고, 숙취 해소 때문에 또 돈 쓰고, 잠 못 자서 피곤하고, 공부에 무리 가고 등등… 무한 악순환인 것 같은데 저게 재미있나?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다.
그렇게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차가 된 지금까지도, 강소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마신다 해도 맥주, 500cc 다 마셔본 적 없고, 마시더라도 이슬 톡톡이나 칵테일, 와인, 하이볼 정도였다. 맛있는 술이 좋은 걸 어떡해. 맛없는 걸 돈 주고 왜 먹는 거야. 그나마 회식자리에서 마시는 맛없는 술은 소맥인데, 회식 자리에서는 정신 잃으면 큰일이 나므로 정신을 잃어본 적은 없다. 대신 무조건 택시 타고 집에 와서 뻗어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교직은 나름 잘 맞는다. 퇴근이 4시 30분인 교사들은 대부분 티타임으로 회식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고, 여름에는 1차를 끝내고 나와도 해가 중천인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절대적으로 적을뿐더러, 술을 마셔도 집에 가서 회복할 시간이 나름 충분하다는 것이지. 회식이 디폴트값인 다른 사기업에서는 술 때문에라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나도 ‘술을 좋아해 보려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으니...
-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