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더워.”
비행기에서 내리자 분명 엊그제까지 느꼈던 것 같은데도 생경한 여름 공기가 코 끝을 간질이며 들어와 폐를 가득 채운다.
경유지인 방콕까지 4시간, 딜레이 되는 이륙 시간을 기다려 다시 장장 10시간의 비행이었다. 경유 시간까지 포함해 21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일 년이 지나갔다. 아니, 다시 말하면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지나 그 다음 한 해의 첫 날이 되었다. 이것은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첫 연말연시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크리스마스, 12월 31일과 새 해의 첫 날, 생일에 이르기까지 약 3주. 이 기간 동안만큼은 이상하게도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곤 했다. 한 해를 돌아보는것,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붕 뜬 시간 속을 유영하는 게 습관이 되었달까. 이번에는 그 유영을 보다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저 멀리 남반구의 어딘가로 떠나보기로 한 것.
비행기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유영의 감각을 보다 구체화시키는 경험이었다. 그 동안에는 두 발을 땅에 붙인 채로 나의 정신과 마음만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느낌이었다면, 이젠 그 발도 지구의 표면으로부터 10km는 떨어져 있으니. 붕 뜬 마음에 대한 합리적인 명분이 생겼다. ‘Happy new year!’라고 적힌 초콜릿이 올라가 있는 후식 케이크를 한 입 뜨면서 파바로티의 음악을 듣는다. 그 동안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는 것, 그것부터여행의 시작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연신 꺄르르대는 두 명의 여자 아이 옆에 앉아 그들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새해가 밝는 아침을 카메라로 담는다.
장장 17박 18일의 일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떠나 있고 싶었지만 주머니 속 자금 사정을 생각하면 ‘적당히’가 필요했다. 점점 기온이 올라 옷이 얇아지는 봄을 지나 녹음이 우거져 찌는 듯한 습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름이 되고, 점차 선선해지는 가을이 되면 몸을 움츠리기 시작해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다시 마음을 간질이는 봄바람만을 기다리는 겨울의 순환 및 순서에 나도 모르는 사이 꽤나 익숙해졌었나 보다. 마비가 된 듯 작동이 부드럽게 되지않는 손가락들을 만들어버리는 찬 공기가 아닌, 더운 공기에 나의 몸은 마음과 마찬가지로 관절 사이 사이가 유연해진다.
지금까지 나의 연말연시는 언제나 한겨울이었는데.
한여름의 연말연시, 꽤나 부드럽게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