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을 때의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독하면서도 생에 대한 집념 같은 것이 느껴지는 그의 글은 그 소설을 토해내듯 써 내려간 그를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후 IQ84라는 거대한 그의 소설을 읽다 잠시 쉬어 두고 있던 찰나, 그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작성한 회고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나는 그처럼 달리기를 당장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그리고 무엇이든지 당장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그래서 10km를 무작정 뛰어 보았다. 올해 안에 한 가지를 꼭 완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10km 마라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10km 달리기를 하는 동안, 하루키가 이야기한 달리기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다. 나는 지루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 반면, 일부러 달리기 코스를 찾아 달리던 지난 연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확히 말하면 8km 정도가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하루키의 말처럼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달리기 시도는 10km 완주, 그 첫날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달렸기 때문인지 무릎이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뭐, 사실 핑계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자신과의 경쟁, 그리고 성실성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달리기는 별로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대신, 나는 글쓰기를 하루키처럼 해 보기로 결심했다.
이전부터 좋아하고, 또 재능이 나름대로 있다 믿었던 글쓰기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만했던 탓일까, 어느 시점 이후로는 꾸준함은 저 멀리 내 다 버리고 소위 ‘삘’이 꽂힐 때만 글을 쓰고는 했다. 그렇다 보니 내 마음에 드는 완성도 있는 글이 만들어지는 횟수를 줄어들었고, 무게감 없이 가볍고, 단어들만 나열해 놓은 것 같은 문장들은 늘어갔다.
하루키는 소설가에게 재능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자질 두 가지를 집중력과 지속력으로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붓는 능력,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수행해 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작업.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말한다. 조깅을 매일 해서 근육을 훈련시키는 과정처럼 나의 몸에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 나는 얼마나 이와 같은 ‘노력’의 부분을 무시하고 ‘재능’의 부분만을 인식하며 살아왔던가. 언젠가부터 나는 가슴이 뛰지 않는 일에는 곧 죽어도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 ‘업타운 걸’에서 다코타 패닝이 발레를 하며 이야기하듯이, 어떤 것은 꾸준히 연습을 해야 그 재미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가장 비효율적이라 보이는 ‘시간 투자’가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는 것이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연소시켜 가는 일
나를 효과적으로 연소시킬 수 있는 방법 중 나는, 글쓰기를 택했다. 나의 영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이 일을 하다가 당장 지구에 유성이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일. 브런치에 일주일에 6일을 연재하겠다 선포해놓고 매번 글을 써내려가는 것도 나를 효과적으로 연소시키는 활동의 일환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고, 모레도 쓴다.
아, 힘들다.
그래도 나는 또 다음 주에도 쓰고, 내년에도 쓸 것이다. 이 공간에 나만 남는 것, 그 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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