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영화는 1920년대 초 소비에트(구 소련)에서 시작된 영화 사조이다. 편집은 미국의 그리피스를 시작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집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서사를 중심으로 한 사건의 연속성에 기반하여 발전했다. 반면 소비에트의 감독들은 숏들의 병치나 충돌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여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몽타주를 연구했다. 몽타주(montage)라는 용어는 프랑스어로 모으다, 조립하다를 뜻한다. 프랑스 이론가인 레옹 무시냑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어 명명되었지만, 이후 소련 영화인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점을 이루었다.
소련 레프 쿨레쇼프는 1921년 그의 연구 <모주힌 실험>에서 쿨레쇼프 효과를 증명했다. 모주힌은 실험에 참여한 배우의 이름이다. 수프가 담긴 그릇, 죽은 소녀가 있는 관, 아름다운 여성의 숏 다음에,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배우 모주힌의 클로즈업 숏을 병치시켰다. 관객은 먼저 나왔던 숏이 무엇인지에 따라 배우의 감정을 배고픔, 슬픔, 애정으로 각각 다르게 느꼈다. 이 실험은 하나의 숏은 그 자체로써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다른 숏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쿨레쇼프 효과의 의의
하나의 숏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숏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형성된다. 따라서 숏의 연결에 따른 상호작용에 따라 관객이 받아들이는 심리적, 정서적 의미가 달라진다. 숏의 배열에 따라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에 감독은 비로소 영화에 창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쿨레쇼프는 서사구조에 중점을 둔 연속편집과 유사한 몽타주 원리를 체계화한 인물로서 보수적인 입장에 해당된다. 그는 그리피스의 영화들을 연구했고, 이 실험을 통해 영화에 있어서 편집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주장한 것이다.
소련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은 <전함 포템킨>(1925)를 통해 충돌 몽타주 영화를 선보였다. 이른바 충돌 편집으로써, 서로 다른 숏의 충돌과 대조를 통해 새로운 관념과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최대의 편집 효과는 숏들이 서로 완벽하게 조응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 숏들이 관객에게 충격을 줄 때 얻어진다고 보았다. 그의 영화에는 학살의 정도가 강해질수록 숏의 길이가 점점 빨라지는 운율 몽타주, 군대의 직선 행진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군중의 대비를 통한 율동 몽타주, 빛과 그림자, 밋밋함과 입체 등 화면 속 이미지의 대비를 통한 음조 몽타주, 잠자는 사자상에서 포효하는 사자상으로 세 장면이 연속해 이어지며 관념을 만들어내는 지적 몽타주 등 수많은 몽타주 실험을 선보였다.
소련 프세볼로드 푸도프킨은 <어머니>(1926)를 통해 구성적 몽타주를 주장했다. 그는 쿨레쇼프의 직접적인 계승자였다. 숏은 벽돌과 같아서 씬이나 시퀀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연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연속성 편집을 주장하며 이를 연쇄의 편집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감독이 주제를 발전시키는 동안 서사적 맥락을 뒤엎지 않는,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편집을 통해 관념을 유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몽타주 조각을 주제에 맞게 선택된 조형력 있는 이미지로 여긴 것이다. 흙 속 마차 바퀴 > 진흙 > 바퀴를 돌리는 손 > 일그러진 얼굴과 같은 연속적인 편집은 고통스러운 노동의 무게를 표현했다.
*소비에트 몽타주 영화의 의의
자연스러운 편집을 주장한 쿨레쇼프와 푸도프킨, 정서적 충격을 안겨주는 충돌 편집을 주장한 에이젠시테인 모두 영화 속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 편집이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시나리오부터 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국가에서 통제했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 달리 특별 대우를 받았는데,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다. 소련 영화의 서사구조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에 맞게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했으며, 클로즈업 숏, 상징 등을 빈번히 사용했다. 무엇보다 공들여 연구한 몽타주를 적극 활용하여 사회주의 이념을 자연스럽게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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