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리얼리즘 영화는 193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사조이다. 운명과 죽음 등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서정적이고 시적인 스타일을 중시한 프랑스적 분위기의 영화들이었다. 도시 뒷골목의 소외된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여 거리의 영화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대체로 어둡고 비관적인 주제를 다루었지만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향수가 담긴 영화들이었다.
프랑스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1937)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이야기를 풀어낸 서정적인 영화이며, <무도회의 수첩>(1937) 역시 미망인의 심리를 쫓아 과거로 들어가는 영화였다. 그는 프랑스 초기 유성 영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일상생활에 대한 애착을 보인 영화들을 주로 연출했다. 마르셀 카르네의 <안개 낀 부두>(1938), <천국의 아이들>(1945)은 우수에 차고 퇴폐적 예술의 이미지라는 시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만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 장 르누아르는 <게임의 규칙>(1939)이라는 대표적 시적 리얼리즘 영화를 연출했다. 이후 네오리얼리즘 영화 <토니>(1935), 누벨바그 영화 <풀밭 위의 오찬>(1959)에 이르기까지 영화사를 아우르며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영화의 의의
어둡고 명암대비가 뚜렷한 로우키 조명을 활용하여 밤의 분위기를 지배적으로 사용하였다. 결정론적 비관주의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내러티브를 통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좌우된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특히 일상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억압적인 사회제도, 이데올로기의 허상, 인민전선 등을 반영한 노동자와 하층민들의 세계를 담아냈다. 그밖에 유성 영화의 확산을 촉진, 비일상적인 영상 문법의 사용, 미장센의 강조, 스튜디오에 기반한 제작 방식 등의 특징을 가졌다.
당시 프랑스 영화 시장을 독점했던 파테와 고몽 영화사가 해체되면서 소규모 독립 영화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대형 영화사의 배급망, 스튜디오, 설비까지 이용하게 되면서 독자적인 미학을 확립할 수 있었다. 1935년 이후에는 프랑스 전체 영화의 90% 이상을 소규모 독립 영화사에서 만들기까지 했다. 시적 리얼리즘은 이후 네오리얼리즘과 필름 누아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
* 필름 누아르란?
누아르는 프랑스어 검은색을 지칭하는 말로써, 2차 세계대전 시기와 그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어두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들을 통칭한다. 악으로 인해 공포와 무기력이 만연한 세계 속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로우키의 밤 장면과 그림자를 관습적으로 사용했다. 냉소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켰으며, 수직이나 사선의 화면 구도를 빈번히 사용하였다. 대표작으로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1941),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1941), 빌리 와일더의 <이중 배상>(1944)이 있다. 누아르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과 정신적 고통, 전쟁에서 복귀한 뒤 사회 적응에 실패한 남성들의 불안과 소외 등을 반영하였다. 필름 누아르는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등에 영향을 받아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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