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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롱이 May 07. 2021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 영화의 혁신과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 영화 1960년대를 전후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사조이다. 누벨바그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을 하는데, 영화의 주제와 제작 방식혁신을 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었다. 이 시기는 주관적이면서 자유로운 표현들이 영화를 통해 발전하는 시기였다. 누벨바그는 영화 평론지 「카예  시네마」에서 글을 썼던 프랑수아 트뤼포,   고다르 등의 몇몇 감독으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알랭 레네, 크리스 마르케  당대 혁신을 추구했던 모든 신세대 영화인들을 함하는 종합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1959) 시작으로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  >(1962)에서 선형적 서사의 구속에서 벗어난 느슨한 이야기 전개주인공의 일상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주로 연출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전 영화를 주로 상영하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즐겨 방문했는데, 거기서 만난 앙드레 바쟁에게 영향을 받으며 영화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프랑스 장 뤽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1960)와 같이 정치적, 미학적으로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기성세대가 만든 세계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아냈고, 인과 관계를 무시한 서사, 점프 컷의 의도적 활용,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물, 이미지와 사운드의 불일치 등 파격적인 미학을 선보였다. 특히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여 낯선 느낌을 주고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만드는 시도를 하였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1962)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


프랑스 알랭 레네 <히로시마  사랑>(1959)에서 전쟁의 상처를 다룬 실험적 내레이션, 파편화된 이미지, 영상과 독립된 음악 등을 활용하완전히 새로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짧은 플래시 컷과 시공간을 비약하는 점프   동시대를 활동했던 프랑스 감독들  가장 실험적인 미학을 선보였다. <히로시마  사랑>(1959)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뮤리엘>(1963) 함께 기억 3부작으로 불리는데, 그는 인간 속에 갇힌 기억의 문제와 기억 속에 갇힌 인간들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었다. 이외에도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잉마르 베리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노엘  올리베이라, 필립 가렐, 크리스 마르케  프랑스 누벨바그에는 주제와 제작 방식에서 혁신을 추구했던 수많은 감독들이 있었다.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의 회고적 플래시백


*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의의

감독의 개성을 중시하는 작가주의 성향으로 인해 통합된 스타일을 지닌 영화운동으로 응집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일부 감독들에게서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충동적이고 개성적인 인물의 등장일탈적 에피소드, 그리고 열린 결말은 서사구조의 연결성을 파괴했다. 더불어 전통과 권위, 정치에 대한 불신을 주제로 청년 문화를 담아내고자 했다.
만듦새에서는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조악한 겉모습을 보였다. 실제 로케이션 촬영의 선호, 자연조명의 사용, 즉흥 연출과 배우들의 즉흥 연기, 행인의 프레임 침입, 핸드헬드와 롱테이크 등이 활용했다. 이는 경량화된 카메라  녹음장비, 필름의 질적 향상으로 가능했다.
누벨바그는 영화에 대한 영화, 즉 메타 화를 추구했다. 불연속적 편집 방법인 점프컷을 활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켰다.
그밖에 저예산, 미장센의 강조, 익살을 통한 유희와 오마주, 실존주의의 반영 등의 특징이 었다. 그리고 대중적 흥행은 많은 제작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스타 배우가 배출되는 사례도 있었다.


누벨바그 영화는 사상가 알베르 카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미뉘 출판사의 신소설 누보로망, 카예  시네마의 영화 평론 앙드레 바쟁,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등의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당시 텔레비전의 등장과 할리우드 영화의 범람으로 프랑스 영화 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정부는 프랑스 영화육성위해 자국 영화 의무상영제, 정부 보조금, 사전 제작비 지원, 단편영화 장려금, 영화인들의 공간이었던 시네마테크의 운영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세대 감독들을 지원했다.


* 앙드레 바쟁은 누구인가?

영화 평론지 「카예  시네마」를 창간하고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영화 이론을 정립한 영화 비평의 선구적인 인물이다. 그는 몽타주로 대변되는 형식주의 영화를 비판하고, 미장센으로 대변되는 리얼리즘 영화를 추구하였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개성이 반영된 창작물이라는 작가주의를 주창하였다. 바쟁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프랑수아 트뤼포,   고다르,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는 59년과 66 사이에 32편의 극영화를 제작하며 누벨바그 영화 사조를 주도했다.


영화 평론지 「카예 뒤 시네마」와 앙드레 바쟁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는 작가주의 영화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작가주의란 영화는 창작자의 개성이 반영된  편의 예술작품이며,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책임지는 존재는 바로 감독이라는 것이었다. 1954 프랑수아 트뤼포 「카예  시네마」에서 예술적 개성을 갖춘 몇몇 감독을 작가로 분류하고 그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후 1960년대 미국 영화평론가앤드류 사리스가 이를 작가론으로 번역하며 미국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 작가주의 영화의 의의

1948 프랑스 영화평론가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이 카메라 만년필설을 주장한 것이 배경이 되었다. 영화의 카메라작가의 만년필 같은 예술 창작의 도구라는 의미를 가진 이론이었다.
이후 1954 프랑수아 트뤼포가 소설을 영화화하던 경향의 프랑스 주류 영화를 질의 전통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시각효과와 미장센을 중시하며 개성 있는 감독의 위상을 높인 작가 정책 이론을 제시하며 작가주의를 촉발했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감독  사람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작가주의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경우 피드백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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