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주제다. 근본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경쟁이라도 하듯 ‘행복연구소’로 검색되는 기관, 칼럼이 10개가 넘는다. ‘행복전도사’라는 직업도 있다. 대학에 ‘행복학과’도 개설됐다. 세기의 철학자들이 평생을 걸고 고민해온 주제지만 행복은 사랑과 함께 아직도 마땅한 해답을 내지 못한 난제다.
서양에서는 행복이 철학의 중요한 화두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선(supreme good)’은 ‘행복(eudaimonia)’이며, 행복은 ‘덕(德·virtue)’을 통해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심취하거나 봉사를 하며 덕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실제 사람들은 베풀 때 보람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경쟁과 이익 추구가 중심가치인 개인주의가 이데올로기로 뿌리내린 요즘 세상에서는 나누자, 베풀자는 외침은 구호에 그치는 고루한 이야기일 뿐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선언한 최초의 철학자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며, 행복한 삶은 최대의 쾌락과 최소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가르쳤다. 반면, 스토아학파는 행복을 정신과 영혼의 안정에서 찾아야 하며, 욕망을 버리는 금욕주의를 행복을 달성하는 실천 윤리로 제시했다. 당시 에피쿠로스를 적대시했던 학파들, 특히 스토아학파는 에피쿠로스가 사치스럽고 방탕하다는 소문을 내어 인격적으로 모략했다. 사람들은 에피쿠로스의 이름으로 ‘행복하기 위해’ 섹스와 돈, 명예를 갈구하고, 난잡한 행동을 합리화하고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그렇게 가르치지도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인본주의 입장에서 신을 대신할 만한 가치의 기준을 쾌락이라 정의하고, 육체적 쾌락이 아닌, 고통을 피하는데서 얻게 되는 소극적 의미의 쾌락을 찾는 정도였다. 쾌락만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고통이 더 커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쾌락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욕구를 억누르거나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지, 쾌락만을 추구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닌데도, 일부 학자들이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학파를 분류하며 편의를 위해 두 학파의 주장을 극과 극으로 몰아세워 지금까지도 ‘에피쿠로스=쾌락’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당대에 에피쿠로스가 남긴 저서는 300편이 넘으나, 그중 <행복론>을 통해 행복의 실체와 동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미 기원전 270년 경에 해답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쾌락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이 가지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아주 조금”이라며 행복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에피쿠로스는 1) 친구와의 우정, 2) 독립된 상태, 3)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행복해지는 비결로 꼽았다. 모든 쾌락을 인정하고 누려도 좋다고 한 에피쿠로스는 되려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려는 ‘동기’를 깨닫고 나니, 다 부질없고, 쾌락은 잠시 잠깐 기쁨을 줄 수 있지만,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행복 비결
[우정 나누기] 사람들이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주목을 끌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명예를 추구한다.
[독립된 상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늘 시키는 일만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면 죄수나 노예와 다름없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지 않고 자유롭기 위해 돈을 벌고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자신과 친구가 되기] 사람은 의외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모른다.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쇼핑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먹고 마시기도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을 갖지 못할수록 엉뚱한 것을 더 욕망하게 된다고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어린 시절에 해볼 것 못해볼 것 다 해본 사람은 성인이 되어 오히려 모범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쾌락에는 흥미가 떨어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좋아하고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구와 행동을 존중했다. 다만 지나친 쾌락추구는 오히려 고통을 수반할 수 있음을 알고 멀리 보고 행동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언뜻 에피쿠로스의 행복론과 소확행, 미니멀리즘을 혼동할 수도 있다.
일 예로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기 위해’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쇼핑하는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늘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를 입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들의 삶을 미니멀리즘 생활법이라 부른다. 미니멀리즘이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에만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일, 물건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최소한의 물건과 행위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삶을 말한다.
그럴듯하고 세련되게 보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게 각 잡히고 정갈한, 절제된 삶을 원하는 건 아니다. 미니멀리즘을 비롯, 느리게 살기, 워라벨, 소확행(小確幸) 등 소위 요즘 ‘유행하는’ 삶의 태도들은 삶의 다양한 방법론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중 나와 맞는 방법을 택하면 그만이다. 막연히 ‘행복하자’라고 외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의 비결을 외치는 종교 지도자들, 강연자들은 수 없이 많지만, 만유인력처럼 누구나 끌어당기는 행복공식은 없다. ‘나에게 맞는 행복 법’이 있을 뿐.
가난하고 위태로운 섬나라 바누아투, 피지 행복지수 1위 비결은?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는 2006년 영국 신(新) 경제 재단(NEF)에서 실시한 국가별 행복지수(HPI) 조사에서 178개국 중 행복지수 1위(한국은 102위)를 차지했다. 이어 2006년과 2014년에는 바누아투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옆 섬 피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되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Gallup)과 윈(WIN)에서 세계 65개국 국민 6만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행복 평가와 2015년 전망’에서도 피지(93%)와 나이지리아(89%)가 최상위로 꼽혔다.
기후변화로 침수위기에 처해있고, 해마다 반복되는 사이클론 때문에 전 국민이 난민이 되는 일도 허다한 남태평양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는 전 세계인들에게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쳐 준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왜 행복할까?
바누아투 국민의 취업률은 7% 선이다(실업률이 아니다). 그나마 취업자 대부분은 저임금으로 단순노동을 하는 관광업에 종사하며 고기잡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태평양의 빈곤국 중 하나인 이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8년 3,033달러로 전 세계 233개국 중 185위다. 2015년에는 초강력 사이클론(태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노숙자 나라’로 전락했다. AP 통신과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65개 섬에 살고 있는 전체 인구 26만 7천 명 대부분이 집이 완전히 무너지거나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누아투와 피지가 자연재해나 가난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행복한 나라인 이유는 GDP가 아닌 단단한 ‘사회적 지지망(social network)’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처할 때, 그의 주위에 있는 지지망이 얼마나 탄탄한가에 따라 어려움을 극복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크기는 상대적이라 아무 일 없이 편안할 때 보다 어려움이 닥칠 때 비로소 고통과 함께 행복의 크기도 상대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어려움을 빠르고 자연스럽게 해결하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어야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도 유지된다. 즉, 개인과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관계망이 탄탄할수록 개인의 행복도도 비례하여 높아진다는 의미다. 지금도 부족사회를 이루며 분명한 질서와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는 남태평양의 섬들은 빈곤하고 잦은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의 피해로 수몰 위기에 처해있기 까지 하지만,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이 ‘각자도생’를 해야 하는 세계 GDP 12위 경제력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큰 삶의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행복의 사회적 기초’가 취약한 나라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지지’는 156개국 중 91위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이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팍팍한 삶을 살아야 하는 한국인들이 가난해도 서로를 의지하고 도우며 사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보다 불행한 삶을 사는 이유다.
한국의 사회적 지지는 계속 나빠졌을 뿐 아니라 연령대 간 격차도 벌어졌다.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비율이 20대 7%, 30·40대 22%, 50대 이상은 39%로 20대와 50대 이상의 격차가 32% 나 된다.
특히 2030이 많이 불행하다.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과 2017년 사이 20대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비율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15%에서 28.1%로, 몸이 아플 때가 5.1%에서 11.3%로, 우울할 때가 3.2%에서 7.9%로 크게 늘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같이가치'가 2017년 9월부터 진행한 ‘대한민국 안녕 지수 프로젝트’를 분석한 보고서인 ‘ABOUT H: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 2019’도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030 청춘들이 가장 낮은 수준의 행복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와 30대의 안녕 지수는 10점 만점 중 각각 5.06, 5.12로 가장 낮았고, 60대는 6.03, 10대는 5.75로 높았다.
프로젝트 총괄을 맡은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030 세대가 감사하는 성향이 가장 낮게 나타났고, 10대와 20대에서는 남과의 비교 성향이 유독 강하게 나타났다”며 “성격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이러한 성향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2030 세대 중에서도 여성의 행복도가 유독 낮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위계질서와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의 부담이 더욱 큰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란? 포털사이트 다음의 ‘마음 날씨’ 플랫폼을 통해 지난 1년 6개월간 1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번 이상 ‘안녕 지수’ 테스트에 참여했다. 누적 건수로는 300만 건 이상의 데이터가 축적됐다. 이번 책은 매년 상반기 발간 예정인 시리즈의 첫 시작이다. 지난 4월에 발간된 이 보고서는 2018년 한국인의 행복 수준을 연령별, 성별, 요일별, 시간대별, 지역별로 나눠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심리 보고서’에서는 대표적인 심리 지표인 성격·자존감·물질주의·감사·사회 비교·사회적 지지 등 6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행복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행복 척도를 평가할 때 ‘부패의 인지 정도’도 중요한 행복 평가척도다. 이 지수 역시 100위로 하위권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는(사진)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자국을 탈출하고 싶은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지적하며, "한국에선 돈과 연줄이 없는 인간에게는 꿈과 희망도 없고, 재벌계 대기업 사원이나 정부 관료가 아니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한국을 싫어한다"며 "그 불합리한 현실을 비난하는 단어인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라고 폄하하는 기고문을 발표해 양국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놓고 한국에 독설을 퍼부었다.
헬조선이란 단어는 우리 스스로 만든 부적절한 단어긴 해도 지금 한국을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 처절함, 분노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이기도 하다.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능력보다 연줄이 위력을 발휘하고, 부의 불평등은 줄어들 기미가 없고, 정·재계의 부패며 부조리는 툭하면 언론을 장식하고, 가까운 장래에 나아진다는 전망은 희미한 상황을 달리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발간된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에서도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절망감, 혹은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지위(기대)와 현재의 지위 사이의 격차에서 오는 다양한 종류의 ‘결핍’과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사회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변화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한국인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사회적 원인을 지적했다. 우 박사는 “당장 몇 년 후도 예측할 수 없고, 사회안정망도 완비되지 않은 나라에서 갖는 불안감은 중산층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퇴색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제대 우종민 교수는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고 성장이 가팔랐던 고속성장 시대에는 누구나 노력하면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그런 보장이 없다”면서 “고용시장 자체도 불안정할뿐더러 이미 양극화가 너무 심해진 상태라 만족스러운 삶을 꿈꾸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그 결과가 근로자들의 누적된 피로와 우울감, 자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한국인 대부분이 살면서 ‘나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느낀다(144위)는 조사 결과다. 기대가 자꾸 좌절되니 무기력증에 빠지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주변과 비교당하며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주위 눈치를 보며 남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니 갑갑함을 느낀다. 별다른 대안도 없으면서 헬조선을 벗어나겠다며 이민을 꿈꾸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도 그런 욕구의 적극적인 표현이 아닐까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격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적 비교가 특히 심한 편이다. 여성과 젊은 층에서 사회적 비교 성향이 가장 높지만, 사회적 비교 때문에 행복도가 낮아지는 정도는 노인층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모든 세대가 평등하게(?) 불행하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말이 씨가 된다고 헬조선 이란 단어는 이제 그만 쓰기로 하고 ‘그럼에도’ 행복할 궁리를 이어나가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사주도 한 날 한시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경향성을 모은 빅데이터로 다른 사람의 인생의 패턴을 짐작하는 연역식 학문이다. 만약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한꺼번에 펼쳐서 10대 시절부터 노년까지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지 볼 수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발달 연구인 하버드대학교의 ‘성인발달연구’ 보고서야 말로 사주명리학으로 치면 역술서에 해당하는 연구결과다. 이 연구는 1938년부터 75년간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한 역대 최장 기간에 걸친 인생 연구 프로젝트다. 비용도 2천만 달러 이상이 투자되었다. 연구대상으로는 하버드대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부터 보스턴의 가난한 지역에서 사는 소년들도 있었다.
75년 동안 연구 결과,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립은 치명적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반대는 ‘고립된 삶’이라 할 만큼 고독은 몸과 정서에 해롭다. 먼저, 고립과 고독은 다르다.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의 저자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 폴 요한스 틸리히(Paul Paul Johannes Tillich)가 이 유사한 듯 보이는 두 감정을 정의했다. 고립 혹은 외로움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가 단절됐을 경우 개인이 느끼는 감정으로 우울과 불안 등을 동반한다. 반면 고독은 스스로 공동체와의 접촉을 끊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자발적인 고립은 ‘자유로움’을 품고 있다. 연구 결과, 가족·친구·공동체와의 사회적 연결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며,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은 행복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중년기에 건강이 더 빨리 악화되고, 뇌 기능이 일찍 저하되며, 외롭지 않은 사람들보다 수명이 더 짧았다.
좋은 관계
그러나 무작정 사람들 무리 속에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성경의 잠언에서는 “다투는 여인과 사느니 보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제발 결혼하시게, 좋은 아내를 맞으면 행복해지고, 악처를 맞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연구 역시 갈등 속에서 사는 것은 몸과 정신에 매우 해롭다고 밝혔다. 소크라테스의 비유처럼 바람직하고 따뜻한 부부 관계는 몸과 정신의 건강을 지켜주지만, 애정 없이 갈등만 잦은 결혼은 이혼보다 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50세에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사람들이 80세에 가장 건강했다. 바람직하고 친밀한 관계가 나이 먹는 고통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안정적이고 공인된 관계를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좋은 관계는 몸 건강뿐 아니라 뇌도 보호해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애착으로 단단히 연결된 관계를 가진 80대는 그렇지 않은 80대보다 더 건강했고 치매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이 의지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좀 더 빠른 기억력 감퇴를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의 성인발달연구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이다 보니 ‘나와의’ 질 좋은 관계에 대한 비중은 다소 적게 다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피쿠로스가 <행복론>에서 정리한 행복하기 위한 3가지 비결에서도 주변 사람과 이 친밀한 관계(우정)를 강조하지만, 자신과의 관계(매일 홀로 차분하게 생각하기)도 행복의 중요한 척도로 여겼다.
자존감은 자신만이 지닌 특별한 가치에 대한 인식이며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감각이다. 때문에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고 남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존재 자체에 대한 고유한 가치는 자기 스스로 세우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승인이 필요 없고, 외부조건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존감은 제 눈에 안경이다. 자기를 보는 눈으로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보게 된다. 내가 건강해야 세상이 살만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건강에서 체력이 기초가 되듯 행복도 자존감이 바탕이 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유년기의 성장환경만을 탓하며 평생 회복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것처럼 한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한들 연애나 사업에 실패해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하고, 늘 자신 감 없이 웅얼웅얼하던 사람도 내 말을 귀담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달변가로 돌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의 크기와 습관은 달라진다. 특히 연인, 배우자, 부모, 선생님 등 중요한 타자일수록 자존감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자존감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에 때로는 맞서기도 하고, “피부관리를 하듯 자존감을 관리해야 한다”라고 윤홍균 정신과 전문의는 저서 <자존감 수업>에서 강조한다. 특히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가려서 만나야 한다. 자존감도 성격과 습관처럼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발견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복음’과 도 같다. 자존감은 자기 안에 갇혀있는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통로다. 행복을 현실 속에서 만나고 느끼는 촉수, 감각기관이다.
자존감은 자기 효능감, 조절 감, 안전감으로 이뤄진다. 자존감을 반드시 잘 관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효능감’ 때문이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자기 인식이 없으면 숨 쉬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무기력해지고 성장을 멈추게 된다. 정신적 식물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망상이 들 때는 나를 통해 기쁨을 얻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부모님, 자식, 친구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있다면 태어나길 잘 한 인생이다.
‘자기 조절감’은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에피쿠로스는 저서 <행복론>에서 “사람들은 정말 필요한 것을 갖지 못할수록 엉뚱한 것을 욕망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잦은 쇼핑이나 과도하게 물건이나 사람에게 집착을 부리는 행동은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신호로, 모든 것을 원한다는 것은 내가 진짜 필요한 게 뭔지 모르거나, 잊어버렸다는 의미라고 지적한다. 재벌 2세들의 과소비, 마약, 폭력사건 등 ‘금수저’인 그 아이들이 뭐가 부족해서 저러나 싶을 만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언론을 통해 보게 된다. 아무리 가진 게 많고 명예를 누려도 자신의 내면을 만나지 못하면 반쪽 짜리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기 안전감’은 안전한 환경 속에서 누리는 안정감을 뜻한다. 하지만 환경이 꼭 무탈해야 안정감을 얻는 것만은 아니다. 생사를 오가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답게 깊은 성찰을 통해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실제 체험담을 적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프랭클 박사가 대표적인 예다. 사람들은 예측이 어렵고 허덕이는 상황을 면하기 위해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으려 애쓴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이는 아무리 유능하고 부유해도 의미가 없다.
무려 기원전 270세기에 에피쿠로스가 발견한 3가지 행복 비결에서 대단히 진전된 이야기는 없는 듯하다. 행복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고 풍성해지며, 안정화될 때 찾아드는 만족감이다. 그러나 모든 출발은 건강한 자존감이다. 자신의 존엄성을 받아들이고, 건강한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도록 환경과 중요한 타자들을 관리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더욱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가꾸어나가며 성장하는 것이 에피쿠로스가 밝혀낸 행복의 실체,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의 근원적인 동기라는 것이다. 서울대 행복 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종합 선물세트를 ‘여행’이라고 정의했다.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 걷기, 먹기, 대화 나누기로 꽉 채워진 시간을 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즘 어린아이들의 행복지수가 점점 더 낮아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2019 세계 행복 보고서’(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 발행)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청소년들은 온라인에서 갈수록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신 친구와의 교제나 독서, 수면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디지털기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10대들은 다른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보다 덜 행복했다"며 "아이 세대(IGEN)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미디어가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감으로써 행복에 간접적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AI와 빅데이터가 세상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 해도 행복은 결국 사람과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피어오른다. 인간의 행복은 기계가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임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행복해지는 방법이 의외로 쉬워서 놀랐다. 당장 *스카이스캐너부터 검색해본다. 성수기도 지났겠다 주말 끼고 이틀 정도 휴가를 내어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갈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그곳에서 걷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함께 사진 찍는 ‘종합 선물세트’를 모두 맛보고 올 생각이다.
*스카이스캐너(Sky scanner)는 세계의 저렴한 항공편과 호텔 예약, 그리고 렌터카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의 서비스 업체다.
“야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질투는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클라우디아 세닉 소르본 대학 경제학 교수
“우정을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해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같이 웃고 위로해라.” 에리히 키츨러 빈대학 심리학 교수
“내가 웃으면 세상이 나를 향해 웃어준다.” 데이비드 G 마이어스 사회심리학자
“행복이란 체온과 같다. 가끔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갈 때도 있다.” 로버트 A 커민스 호주 디킨대학 경제학 교수
“행복한 사람이 더 관대한 것은 아니다. 관대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 레오나르도 베체티 이탈리아 로마 토르 베르가 타대학 경제학 교수
“Meaning(의미)에서 Me(나)를 뽑아낼 수 있지만, Me에서 Meaning을 끌어낼 순 없다.” 게리 T 레커 심리학 박사
“중년이나 노년이 젊은이들보다 더 행복하다. 만족이라는 지혜를 터득한 덕분이다.” 마지 E 라크먼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심리학 교수
“행복은 존재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그들을 삶에 초대하는 과정에서 행복이 만들어진다.” 테레사 프레이리 포르투갈 미뉴대학 사회심리학 교수
“나쁜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불행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나빠진 일을 더 나쁘게 할 뿐이다.” 데이비드 왓슨 아이오와대학 심리학 교수
“행복해지는 방법은 원하는 것을 향해 다가가거나 아니면 원하는 것을 지금 상황에 맞게 옮겨오거나 딱 두 가지가 있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베인대학 경제 사회윤리학 교수
출처: 세상 모든 행복(흐름출판)
글=박재아 DaisyPark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