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셔스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유럽의 정취와 아프리카·아시아의 애수가 융화된 독특한 문화는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 풍취를 자아낸다. 모리셔스의 수상인 프라빈드 주그노트(Pravind Jugnauth)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모리셔스는 작은 섬나라지만 경제적, 정치적, 문화 수준이 월등히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모리셔스는 1인당 GDP가 약 1만 1015달러(2017년)로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적도 기니와 세이셸 다음으로 3번째로 높은 순위다.
모리셔스는 개방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으며 정치 및 경제 자유도가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아 선진국들의 투자가 활발하다. 1968년 독립 당시만 하더라도 설탕 수출에 의존하던 가난한 나라였지만 관광과 금융서비스 등 산업다각화로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면서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안정된 경제구조를 지니게 됐다. 2012년부터 민간사업분야의 세금을 대폭 감면하는 등 정부 주도형 경제에서 민간주도형으로 전환을 선언해 외국인들의 투자 기회가 더 크게 열렸다.
모리셔스 경제의 핵심은 제조, 관광, 금융서비스, 농업(설탕)으로 특히, 천혜의 해변과 자연경관을 활용한 호텔, 리조트, 골프 등 서비스 산업이 발달했다. 농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4.8%에 불과하다. 제조업이 24.6%, 서비스업이 70.5%로 선진국형 경제구조로 탈바꿈했다. 아름다운 해변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모리셔스에서 관광산업은 제3의 외화 수입원이다. 모리셔스의 연간 관광객 수는 1994년 40만 명, 2004년 72만 명 선이었다가 2014년 처음으로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18년에는 139만 명이 입국해, 2017년에 비해 4.3 % 증가율을 기록했다.
모리셔스는 세계경제포럼(WEF) 선정 아프리카의 최대 경쟁력 국가로 꼽혔고,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이 꼽는 '경제 자유지수'에서도 2015년 아프리카 1위 국가로 뽑혔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등 첨단 전자분야의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만여 개 달하는 외자기업도 진출해있다. 모리셔스 정부는 4가지 핵심 육성사업인 설탕 섬유 관광 금융 분야에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방과 지원책을 펼쳐 매년 4%대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3만 2천여 개가 넘는 해외기업들이 이미 투자를 했고 금융 부문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자유화 정도와 반부 정부 패 지수로 보아도 모리셔스는 아프리카에서 보츠와나와 더불어 1~2위를 다툰다.
면적(2040㎢)은 제주도(1848㎢)와 유사하고 인구는 120만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1인당 GDP가 11만 228달러를 넘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잘 사는 국가로 등극했다. 그러나 모리셔스는 불과 3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도도새만이 가득한 무인도였다. 1968년에는 1인당 GDP가 200달러에 불과한, 특별한 산업 없이 설탕 수출로 먹고사는 빈국(貧國)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모리셔스는 경작지의 90%에 사탕수수를 재배했고 전체 수출의 96%를 설탕이 책임졌다. 모리셔스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게 된 시우사구르 람굴람 경(SSR·Sir Seewoosagur Ramgoolam·1961~1982년 초대 총리)의 기지와 헌신으로 모리셔스의 GDP는 1977년과 2009년 사이 연평균 5.1%씩 증가했다. 시우사구르 람굴람 경 국제공항(영어: Sir Seewoosagur Ramgoolam International Airport)은 지금의 모리셔스를 있게 한 초대 총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초대박 다문화 사회
모리셔스는 16세기 말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8세기 초 프랑스가 점령해 1세기 동안 식민통치를 받다 영국으로 넘겨졌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인과 아프리카인들이 사탕수수밭 경작을 위해 강제 이주해 지금의 토착민이 됐다. 모리셔스는 1968년 독립한 뒤 92년 공화국으로 선포됐다. 원래 모리셔스는 원주민이 없는 무인도였지만,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독특한 인구 구성을 갖게 됐다. 케냐나 남아공에도 이미 인도인들이 오래전부터 정착해서 살았지만, 모리셔스는 특별히 인도인 비율이 높다. 인도계가 68%, 아프리카계 크레올인이 27%, 중국인이 3%, 유럽계 백인이 2%다.
인도인이 많아서 일까, 모리셔스는 인도/네팔과 함께 인구가 대다수가 힌두교를 믿는 기이한 나라다. 아프리카 국가에 힌두교라니, 좀 낯설긴 하다. 무려 인구의 반 정도가 힌두교를 믿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당히 섞여 있다. 힌두교 52%, 기독교 28%, 이슬람교 17%, 불교 3%의 분포를 이루고 있다.
유럽인이 발견하기 이전 모리셔스는 도도 새만이 가득한 무인도였다. 1598년 네덜란드인이 섬의 소유권을 확보했지만 식민 경영을 할 만큼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오지 못해 1710년에 섬을 포기했다. 1715년에 프랑스가 점령해 동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리고 와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1810년 영국이 프랑스에서 빼앗아 1814년부터 식민지로 만들었고, 1835년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인도인들을 이주시키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해방시켜 설탕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게 되었다. 참으로 사연 많은 설탕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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