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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Jul 22. 2024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륵거리던 우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난 타샤

수험생 시절,

어머니는 문 앞에 서서 도서관으로 가려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나를 꼭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힘들거라 말했지만, 

나 자신은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고 되뇌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있기에, 나는 연필을 잡으며 책에 머리를 묻을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있기에, 나는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사랑이었다.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나아갈 힘이 있다.


내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나아갈 힘이 있다.


나의 꿈인, 세계여행 100가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순간


나 자신과 내 삶을 지독히고 사랑하는 나는, 나아갈 힘으로 '꿈'을 얻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 자신에게 최소한의 교양을 심어주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 자신에게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 자신에게 더 넓은 세상은 선물하고 싶었다. 



편안한 일상 같았던 바탐에서 지내다 보니,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비몽사몽 깨어난 나빌라와 인사를 하고, 새로운 출발을 향해 나아갔다.


빨간색 표시는 현재 나의 위치를 의미한다


자카르타는 내 인생에서 첫 번째 남반구이다.



GPS가 적도 아래에 내 위치를 표시한다는 사실에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자카르타 공항 입구를 나오자마자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와 흥정하는 택시 운전사들 너머로 주황빛의 일몰이 내리고 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있을 거라 들었기에

인파를 비집고 버스를 찾는다.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여행자에게 버스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잘못된 버스를 타고 이동하지만, 

낯선 이는 무어라 말하며 제대로 된 길을 알려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만국의 공통언어인 미소가 있기 때문이다.


살짝 스치는 인연에도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짧은 인연에 비추는 미소 속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보여서 좋다.


덕분에 무사히 다른 버스에 올라 시내로 향한다.


버스표를 반복해서 세는 운전자


일주일간의 편안했던 일상 덕분일까,

일 년 전에 봤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기대 덕분일까,


새롭게 출발한 자카르타 여행은 시내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모든 순간을 찬란하게 했다.



셌던 버스표를 10분에 한 번씩 또 세는 운전자의 모습도,

도로 위 무수히 설치된 전광판 광고들도,

옆에 앉은 다른 중국 여행객이 나를 흘낏하는 시선조차도 아름다웠다.




2022년 한국에서 타샤와 나


타샤와는 대학교 교환학생 도우미 봉사활동을 하며 한국에서 처음 만났다.

한 도우미 당 8명가량의 교환학생이 배정되는데, 

타샤와는 그중에서 나와 가장 많은 추억을 쌓은 친구였다.


2022년 나와 타샤, 대한민국 서울에서
2023년 나와 타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낙타보다도 더 긴 속눈썹과 커다란 눈을 가진 그는 언제나 치아를 드러내 밝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우린 함께 서울 일대를 걷고,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한식을 먹으며 

서로의 문화와 삶을 공유했다.


그리고, 지금

우린 함께 자타르타 일대를 걷고, 

주변을 구경하고 나시빠당을 먹으며 

지난 시간과 삶을 공유한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타샤는 도요타에서 HR 인턴을 보내고 있다.

퇴근 후 바로 반듯한 복장과 함께 나를 만나러 온 그에게서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던 성숙미가 느껴진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륵거리던 우리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비는 여행자와 사원증을 메고 회사에 다니는 사회인이 되었다.

각자의 길 위에서 각자 삶의 형태로 변해가는 서로를 보며,

함께 있는 순간을 믿겨하지 않으면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붙잡는다.


타샤는 한국에서의 시절을 매우 그리워했다.

타샤가 보낸 잊지 못할 한국에서의 시간이 나와의 추억도 한몫한다는 사실이 좋다.

누군가의 잊지 못할 순간을 함께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린, 이번 만남을 이후로 다시 어떤 형태로, 

어디에서, 언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더욱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궁금해하며, 앞날을 응원해 주었다.


나의 첫 번째 인도네시아 친구이자, 내 대학 시절의 일부 조각보가 되어준 타샤..

행복했던 한국에서의 교환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나아가는 그에게도 삶의 이유를 물었다.




"내 삶의 이유는,
나는 행복하게 살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
다른 이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자카르타의 곳곳은 열대야 느낌으로 가득하다.

종종 보이는 노숙자는 서울역을 연상케 한다.

열대야와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 도시의 밤을 밝히는 노란색 가로등을 배경으로 우리는 걸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시 만나게 되는 장소가 인도네시아가 될 줄은 더욱 몰랐다.


우린 우리가 만든 우연을,

우리가 만든 운명을,

우리가 만든 기회를

함께한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앞으로 걷게 될 각자의 길을 나누며

우리의 시간을 채웠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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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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