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④⑧ : 플리트비체가서 아름다움 느끼기
플리트비체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남서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플리트비체에 들어서면 마치 오랫동안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펄쳐진다. 석회암과 돌로 구성된 자연 댐에 의해 16개의 호수가 층층이 연결되었다. 세월에 녹아내린 석회암은 곳곳에 동굴과 협곡을 형성했고, 맑은 지하수가 연결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플리트비체 호수 산책로를 따라 걷는 관광객들, 그들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동화 속에 온 기분을 준다. 에메랄드 빛의 호수는 맑고 투명해, 그 안에 잠긴 물고기 움직임이 다 보일 정도이다. 나는 넋을 잃은 채 플리트비체 사진을 봤다.
'플리트비체에 가야겠어!'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⑧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가서 아름다움 느끼기
사진을 본 고등학생 시절부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플리트비체를 품은 국가, 크로아티아는 내게 낯설었다.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온 이유는 플리트 비체를 위해서였다. 오로지 투명한 호수를 찾아 자그레브 거리에 발을 디디니, 내가 동유럽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로아티아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한지 불과 십년을 조금 넘었고, 유로화를 공식 화폐로 사용한 것도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상인들은 유로와 크로아티아의 옛 화폐인 쿠나(Kuna)를 동시에 받고 있었다. 좁은 돌바닥 골목길을 통과해 낡은 소리를 내는 트램에 올랐다. 거리는 1990년대 초에 일어난 전쟁 흔적도 품고 있었다. 미디어에 표현된 세련된 도시 이미지, 전통있는 건축과 예술만이 유럽이 아니었다. 자그레브에서 만난 한 크로아티아 친구는 말했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 크로아티아에서 나이 드신 분들은 매번 전쟁(크로아티아 독립전쟁) 이야기만 해. 거의 중독이야. 그들은 열린 사고가 없어서 외국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낯설어하고 경계하지."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며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위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전쟁을 겪었다. 독립국으로 인정받고, 유엔 정식 회원국이 되면서 크로아티아는 외교 관계를 확대해 나갔지만, 전쟁의 잔재는 여전히 사람들 내면에 짙게 남아있었다. 보수적인 시각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아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여행 할 생각 자체가 없어. 데이지 너의 여정을 들으면 깜짝 놀랄거야."
자그레브를 여행하며 나는 익숙한 서구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모든 유럽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문득 생각했다. 여행하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게 아니구나. 나 역시 시대적 상황과, 주위 환경, 나를 에워싼 모든 것 덕분에 꿈을 꾸고,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동시에 중학교 시절, 세계일주를 상상하며 가슴설레하던 내 모습이 스쳤다. 내가 자그레브를 찾은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 플리트비체를 보러 가자.
햇살은 방금 일어난 듯, 따뜻하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개장 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올랐다. 플리트비체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단체 관광객들은 깃발을 높이 든 가이드를 따라 티켓을 구매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플리트비체를 설명하는 가이드를 지나쳐 공원에 들어섰다. 산책로를 따라 줄곧 걸어가니 플리트비체 호수 전경이 보였다. 호수는 다채로운 팔레트같았다. 청록빛부터 연한 녹색, 푸른 하늘빛까지 푸른 계열의 색이 여러 빛깔로 변주되고 있었다.
우거진 숲을 지나 호수에 가까이 다가가니, 여러 크기의 호수가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른 아침을 알리는 듯, 호수 위엔 안개가 살포시 퍼져있었다. 호수를 둘러싼 숲은 비밀을 품고 있는 듯 고요했다. 나무 데크에 오르자 멀리서 관광객 소리가 들렸다. 즐겁게 사진찍는 관광객 사이로 플리트비체의 크고 작은 호수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맑고 청명한 물은 거울처럼 호수 주위의 모든 풍경을 반사했다. 호수에 반사된 하늘은 마치 원래 땅위에 있었다는 듯 뭉실 구름과 함께 펼쳐있었다. 호수 산책로를 걸으며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과 동시에 하늘 위를 걷는 듯했다. 호수를 잇는 폭포는 빠른 물줄기로 떨어져 호수 표면에 파장을 만들었다. 폭포 소리는 마치 유람선 엔진이 물속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동력음과 같았다. 폭포 아래로 층층이 떨어지는 물들은 젤리 덩어리처럼 부드럽게 흘렀다.
물속에는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있었다. 투명한 물은 그들의 사생활조차 지킬 생각이 없는 듯, 움직임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흐르는 물소리는 잔잔한 배경음이 되었고, 나무 뿌리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며 헤엄쳤다. 호수 아래로 뻗은 나무 뿌리는 얽히고 설켜 수면 아래 감춰진 미로 같았다. 크고 작은 폭포는 저마다 리듬으로 호수에 물결을 일으켰고, 그 위로 바람이 합류했다. 호수 표면에 살포시 닿은 나뭇잎은 유유히 어딘가로 흘러갔다. 굽이 굽이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게 하나의 연극처럼 느껴졌다. 우린 나무 뿌리가 써내린 대본 속 인물처럼 움직였다.
나무 데크가 끝나는 지점에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상부 호수를 보는 트레일과 하부 호수를 보는 구간으로 나뉘었다. 나는 하루종일 플리트비체에 머물 예정이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긴 트레일에 들어섰다. 이어지는 길은 넓은 반경으로 호수를 감싸 안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관광객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나와 호수, 둘만이 존재했다.
깊게 이어진 길을 걸으니 평온함의 끝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 속을 걷는 동안, 이보다 더 평온할 수 있을까 싶었다. 햇살은 따스하게 스민 채, 나뭇잎의 옅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뭇잎의 여린 그림자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하늘거리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니, 그림자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사이에서, 마치 나뭇잎이 기분좋아 춤을 추는 듯했다.
햇살에 울렁이는 호수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바람이 뺨을 사랑이며 스쳤다. 나는 작은 조약돌을 호수에 던졌다. 둥근 돌은 표면에 닿아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렸다. 파동이 마치 내게 메아리치는 듯 돌아왔다. 산들바람에 나뭇잎이 춤을 췄고, 그 위로 참새가 노래했다. 맑고 투명한 호수는 청명한 하늘을 비추었다. 반사된 하늘은 땅에서 인사했다. 호수의 맑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호수는 따스한 햇살에 윤슬을 반짝였고, 그 빛이 눈 부시게 찬란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플리트비체의 모습에 매료되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지금 이 순간, 플리트비체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사진 한 장으로 오랫동안 꿈꾸던 장면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서 울컥했다. 호수의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내게 인사를 하는 듯했다.
"이건 꿈이 아니야. 너는 이곳에 올 자격이 있어. 호수의 아름다움을 느낄 자격이 있어."
동공에 반사된 호숫물이 내 눈을 타고 흐르는 걸까. 눈물이란 형태로 플리트비체가 내 몸에 스며든걸까. 찬란한 한마디에 코끝이 찡해졌다. 고개를 돌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눈물을 마음껏 흘렸다. 플리트 비체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감정에 솔직히 반응한 내 몸이 감사했다. 내가 흘린 눈물조차 플리트비체를 이루는 물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행복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해가 조금씩 저물어 호수 주변의 햇살이 사라졌지만, 내 눈에 비친 플리트비체의 물빛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있었다.
다시 자그레브로 돌아왔다. 오렌지 색으로 번지는 일몰을 보니, 자그레브에 처음 도착하던 날이 떠올랐다. 새벽 버스를 타고 동이 트는 자그레브와 인사했는데, 어느새 나는 떠나는 날의 저녁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을 물들인 주황빛 일몰을 보며 문득 떠오른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안녕,
여기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야. 나는 자그레브의 전경을 보면서 너를 생각하고있어.
엽서를 사서 너에게 적고 싶었는데, 한 장에 1유로나 하는거야, 살지 말지 한참 고민했어.
그래도 사야지 생각해보니 펜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안 샀어.
그런데,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아무 종이에 펜을 빌렸어.
나는 오늘 크로아티아 플리트 비체에 갔어. 찬란하게 빛나는 호수에 눈물이 마구 쏟아지더라.
크로아티아는 정말 아름다워. 그 순간,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꿈꿨어.
이 세상에 영원이란 게 있을까?
어쩌면 영원한 건 없고,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겠지.
그래서일까, 우리는 변화 속에서 영원을 찾아가는 거 같아.
영원한 사랑도, 꿈도 없겠지만, 그래도 우린 사랑하고 꿈을 꾸잖아.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플리트비체에 오고 싶어.
나는 구겨진 종이 접은채, 자그레브를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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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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