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⑤ⓞ : 지중해에서 생생한 올리브 먹어보기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이름에서도 지중해의 햇살과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나라들은 올리브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을 갖고있다. 건조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을 지내온 올리브는 깊은 맛과 풍부한 향을 만들었고, 그 이미지는 내게 오래도록 남았다. 푸른 바닷물의 청량함과 시원함 뒤로 생생한 올리브를 먹는 사람들의 이미지. 지중해 햇볕아래 탱글탱글하게 올리브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어릴 적 나는 반짝이는 지중해를 보며 올리브를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⑤ⓞ : 지중해에서 생생한 올리브 먹기
서아시아 여행의 마지막 국가는 튀르키예였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있으며 지중해 동부 해안선을 가져 지중해 문명권의 역사가 깊다. 지중해와 접한 남쪽 도시 안탈리아, 거대 항구를 품은 메르신, 넓은 해변과 휴양시설을 가진 카스와 아름다운 풍경의 페티예까지. 한 달 간 튀르키예에 머물며 나는 지중해 문명을 생생히 느꼈다. 메르신을 시작으로 튀르키예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 이동했다. 지중해로 불어오는 따스하고 시원한 바람에서 사람들의 여유가 묻어났다. 메르신에서 안탈리아, 올림푸스를 거쳐, 지중해 도시의 여정을 이어갔고, 여행 끝자락에서 나는 쿠사다시(Kuşadası)에 도착했다.
쿠사다시는 지중해 동쪽, 에게 해에 면한 해안 도시이다. 무거운 배낭을 챙기며 버스에서 내리는데 바다 내음이 물씬 느껴졌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갈매기는 끼룩 소리를 내며 머리 위로 지나갔다. 아직 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와 소리만으로 바다에 왔음을 실감했다.
시원한 바다 내음을 뒤로하고 카우치서핑 호스트 집으로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밤버스를 타고 비몽사몽한 채 낯선 도시의 아침을 걸으니 20kg에 육박하는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정류장에서 걷고 또 걸었다. 10분쯤 지났을까, 한계가 와서 엉성한 낙서가 있는 거리 모퉁이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돌렸다. 도로 건너편, 길가에 늘어선 빌딩 사이로 바다가 희마하게 보였다. 멀리 있는 바다였지만, 코 끝에 퍼진 바다 내음이 퍼졌다.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있으며, 정비를 마친 여객선은 저음의 경적을 울렸다. 보는 것과 다르게, 바다가 가까이 있는듯했다. 바다 마을을 실감하며 낙서를 바라봤다. 나를 멈춰 세워 잠시 길을 돌아보게 만든 낙서. 엉성하지만 귀여운 낙서에 미소를 질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호스트 가족은 두 팔벌려 나를 환영했다. 영어를 못한다고 미소짓지만,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진심 어린 환대를 느꼈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 아래, 안락한 침대에 누우니 마음이 편해졌다. 창문 너머 스미는 햇살이 방 안을 채우고, 반사된 빛은 무지개를 만들었다. 피로에 쌓인 몸을 씻고 나서, 나는 호스트 가족의 정성어린 아침 식탁에 앉았다. 꿀과 빵, 햄뿐 아니라 고소한 올리브 오일을 적신 빵과 올리브도 놓여 있었다. 나는 올리브를 발견하자 남몰래 속으로 기뻐했다. 그들의 마음이 마법 소스가 되어, 올리브에 올려진 듯했다. 아침 식사를 시작으로, 나는 쿠사다시에 머물면서 지중해의 신선한 올리브를 원없이 맛볼 수 있었다.
호스트 동네 사람들은 베란다에서 식사하는 문화가 흔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침 점심 저녁을 불문해 무조건 테라스에 앉아 식사했다. 그들을 따라 식탁에 앉으면 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살랑이는 바람은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이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쿠사다시의 올리브가 햇살에 녹아 달달하게 느껴졌다. 안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하루는 이웃이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그곳은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문화가 남아 있었다. 건네받은 접시에 작은 선물을 담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예고에 없던 이웃의 초인종 소리에도, 그들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오순도순 소박한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식탁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 그들의 여유로운 삶의 방식 속에서, 지중해의 따스함이 내게도 스미고 있었다.
"데이지, 오늘 장날인데, 보러갈래?"
호스트의 제안으로 장을보러 시장에 따라갔다. 상인들은 도로를 따라 일렬로 자리 잡아, 물건을 팔고 있었다. 지중해의 시장답게, 올리브는 빠지지 않고 당당히 중앙에 진열되어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덜 익은 초록빛 올리브부터 숙성 과정을 거친 검은색 올리브까지 각양각색의 올리브가 있었다. 초록빛 올리브는 아삭한 식감과 씁쓸한 맛을, 검정빛 올리브는 부드럽고 깊은 맛을 품고 있었다. 그 중간의 보랏빛, 노란빛, 갈색빛 올리브까지 다양하게 시장 거리를 알록달록 색칠했다. 올리브의 다양한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데, 저멀리 클라리넷과 북소리가 울려왔다. 이웃집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신랑과 그의 친구들이 북소리에 맞추어 신부 집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신부를 부르는 몸짓이었다.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고운 신부가 모습을 드러냈고, 신랑과 손을 잡은 채 춤을 췄다. 이내 차에 올라 식장으로 이동하였고, 신부가 떠난 집의 발코니에서 신부 어머니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가 점차 작아졌고, 이내 고요해진 공간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했다. 딸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눈물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나도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호스트는 장난스레 말했다.
"데이지, 울면 올리브가 더 짜질거야"
그날 저녁, 호스트가 방문을 두드렸다.
"데이지, 해를 보러가지 않을래?"
그의 제안에 단순히 옥상에서 해를 볼거라 예상했지만, 그는 나를 쿠사다시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포인트로 데려갔다. 언덕 위에 조금씩 올라가니 쿠사다시 마을 전체가 보였다. 마을 너머로는 지중해가 넓게 펼쳐져있었고, 그리스 섬들이 아득하게 수평선 위에 떠 있었다.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일몰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게 물든 태양이 지중해 수면 위에 번졌다. 마치 스케치북 위에 물을 쏟고, 그 위로 주홍색 물감이 퍼져나가는 듯 했다. 연하게 물든 하늘과 남색으로 진해지는 바다 위에서 희미해진 수평선이 붉게 물들었다. 둥글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춰버린 줄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나는 온전히 '순간'에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눈물이 나왔다. 쿠사다시의 항구 내음도, 일몰로 붉게 물든 하늘도, 이곳에 함께 잇는 모두에게 고마웠다. 동시에 여행하며 쌓였던 힘듬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무정함에 상처받은 마음이, 호스트의 온정 앞에서 녹아내리는 듯했다. 뜬금없이 멋진 풍경을 보여주겠다며 일몰을 보여준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붉은 바다는 바다 전체를 껴안았고, 내 마음을 포옹했다. 저멀리 뿌연 안개 사이로 그리스 섬은 미동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그스름 해진 일몰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여행 중에 힘든 일도 많고 앞날은 불확실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꿋꿋히 이겨내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쿠사다시 시내의 성은 밤을 준비하며 하나둘씩 조명을 켰다. 일몰이 완전히 져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호스트는 장난스레 말했다.
"데이지, 울면 올리브가 더 짜질거야"
그 날 저녁에도 올리브는 빠짐없이 식탁위에 올라왔다.
다음 날, 호스트 가족 모두와 딜렉 반도 국립공원(딜렉반도-뷔윅 멘데레스 삼각주 국립공원, 이하 딜렉 국립공원)에 갔다. 딜렉 국립공원은 그리스 사모스 섬과 2km 떨어져있는 곳이다. 공원에 도착하니 사모스 섬이 눈 앞에 보였다. 그 주위로 푸른 하늘과 짙고 투명한 바다가 펼쳐졌다. 바닷가는 자갈로 이루어져 파도가 자갈 위를 사그작거리며 덮었다가 사라졌다. 호스트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미리 준비한 소풍거리를 꺼냈다. 식탁보 위에 올리브를 비롯해 치즈, 토마토, 감자 등 각종 재료가 놓였다. 식탁 주변으로는 굵고 높은 나무가 사방을 둘러쌌다.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한층 시원함을 느끼며 호스트 지시에 맞춰 감자를 벗겼다. 누구는 토마토를 썰고, 계란을 넣고, 올리브 오일을 섞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햇살은 포도와 올리브 나무를 포근히 감쌌다. 푸른 바다와 나무 사이에서 올리브를 한 입 먹었다. 젤리처럼 말캉하게 씹히는 올리브는 고소하고 달달했다. 중올리브 특유의 짭짤한 맛도 중간중간 스며들다 고소한 맛으로 끝나며 지중해의 풍미가 입안을 감돌았다. 지중해에서 생생한 올리브를 먹는 순간은, 그 자체의 맛을 떠나 함께하는 이들과 그 순간의 공기가 함께해 잊을 수 없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지중해 바다로 향했다. 딜렉 국립공원은 지중해의 에게해를 품었는데, 보존이 잘되어 바다가 투명했다. 물 속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였고, 파도의 그림자는 투명한 그물망처럼 반사되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그물 그림자는 다이아몬드를 겹겹이 겹쳐 바다 속 모래 바닥에 생동감을 더했다. 바다에 몸을 맡겨 물길이 이끄는 대로 떠내려가니, 물밑에서 멀리 벗어난 곳에 도착했다.
뭍과 반대되는 방향 멀리에서 검은 무리가 보였다. 한쪽만 어둡게 보인 바닷속은 구멍이 난듯 보였다. 접근 제한이 없어 그리스까지 갈 수 있는 이곳에서, 검은 무리가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다. 사람들의 소리와 점점 멀어지며 검은 무리에 가까이 다가가니, 해초들이 물살에 몸을 맡겨 춤추고 있었다. 정체를 알고나니, 문득 물밑과 멀리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육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는 고요로 가득했고, 오로지 투명한 바다 속에 둥둥 떠있는 내 육체만 존재했다.
그 순간, 어떠한 자극도 없이 오로지 바다의 숨결을 느꼈다. 장엄하면서 고요했다.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스 섬을 향해 바닷 속 깊이 들어가니 정어리 떼의 향연이 펼쳐졌다. 공연의 막을 내릴 때 터지는 빵빠레처럼, 빛을 반사한 정어리는 은박지처럼 반짝였다. 바다로 쏟아지는 은박지를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바닷속 세상은 수없이 넓고, 낯설며, 내가 속한 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 위대함 앞에서 나는 겸손을 느꼈다.
물속에서 나와 식탁의 올리브를 베어물었다. 기름진 껍질을 씹는 순간, 젖은 바다 냄새와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아름다운 지중해와 함께 생생한 올리브를 먹는 이 순간, 나는 더 없이 올리브를 음미하고 사랑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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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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