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르헨티나 I
이과수 폭포 웅장함 느끼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⑤② : 이과수 폭포의 웅장함 느끼기

by 여행가 데이지

이과수 폭포로 가는 남색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어두워진 하늘이 내려앉았고, 어스름진 도로 위로 아파트가 모여 있었다. 눈먼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키던 짙은 어둠은 잠을 자고 일어나자 밝은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휴게소에서 뻥튀기 과자를 사고 다시 버스로 돌아가려는데, 주차장에 버스가 흔적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버스를 놓친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뛰었다. 나는 곧바로 다른 버스 기사에게 달려가 다짜고자 도움을 요청했다. 양복차림의 운전기사는 다른 버스에 타라며 흰색 버스를 가리켰다. 나는 흰색 버스로 곧장 달려가 소리쳤다.


"이과수! 이과수!!"


다급한 내 목소리에 버스 기사는 스페인어로 뭐라 말했다. 손짓을 보니 떠난 버스에 전화를 걸겠다는 듯했다. 그는 버스에 오르라는 시늉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헐레벌떡 버스에 올랐다. 뭉게구름 가득한 창밖 하늘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정류장에 정차하니, 이전에 놓친 버스가 보였다. 버스 기사에게 감사하다고 외치며 남색 버스에 올랐다. 옆자리에 앉았던 승객은 웃으면서 나를 반겼다. 나는 머쓱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웃음)제가 다시 왔어요"


세계일주 324일차,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어느새 농담처럼 다가왔다. 모든 짐을 둔 버스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나는 과거보다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이 끝난 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창동안 방금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입술을 실룩이니 창밖으로 이과수 마을이 나타났다.


20240114_143408.jpg


이과수 마을은 정글지역 인만큼 더위와 습기가 공기 중에 가득했다. 버스에 내리니 습기를 뚫은 바람이 신선하게 볼에 닿았다. 사람들은 시원하게 나시 티 하나만 걸친 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산 초콜릿은 금방이라도 녹을 것 같았지만, 형태를 유지하며 내 입속 탐험을 기다렸다. 버스는 2시간 연착되어 마을에 늦게 도착했지만,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달콤하기 짝없는 간식을 먹으며 후덥지근한 바람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나의 버킷리스트인 이과수 폭포를 내일 본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⑧ : 이과수 폭포의 웅장함 느끼기


20240115_132806.jpg
20240115_124925.jpg


이과수 폭포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계를 따라 흐르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폭포에 사람들은 이곳을 '악마의 목구멍'이라 부른다. 나는 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하며 곧 마주할 이과수 폭포를 상상했다. 세계일주를 하며 이미 다양한 폭포를 봤기에, 과연 이과수 폭포에서 온전한 압도감을 느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준비를 마칠 즈음, 압도감을 느끼지 못하는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기전,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과수 폭포의 온전한 설렘을 느끼지 못해도, 모든걸 즐길 준비는 되었으니까"


마을에서 폭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어폰 너머로 라틴 노래의 흥겨운 타악기 소리가 울렸다. 열정을 표현한 레게톤 리듬을 맞춰 고개를 까닥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과수 강을 사이로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가 드러났다. 동시에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세계 3대 폭포를 배우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아가라, 모시오아툰야, 이과수 폭포를 외우며 언젠가 그곳에 있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좁은 교실 안에서 십대 시절의 내가, 지금 이 순간 이과수 폭포로 향하고 있었다.


범람으로 인해 악마의 목구멍 구간은 입장은 불가했다. 아쉬운대로 관람이 가능한 산책로를 따라 상부에서 하부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폭포 상부에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빽빽하게 둘러싼 나뭇잎 사이로 어디선가 타잔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타잔 대신 웅장하게 떨어지는 폭포가 고동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걸음을 옮기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저 멀리 들려오는 폭포 소리에 빗방울이 폭포에서 뿌려진거라 생각했다. 산책로 초반부터 날아오는 빗방울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빗방울은 조금씩 거세졌다.


'이거 폭포에서 나온 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같은데 ..'


비는 점점 굵어지며 세차게 내렸다. 아르헨티나의 여름을 알리는 장마와 같았다. 순식간에 젖은 옷은 물기를 머금어 무겁게 축 늘어졌다. 나는 비 맞는것을 좋아하지만, 가져온 전자기기가 걱정되었다. 옷 안으로 소지품을 넣어 물기를 막아보려 했지만, 면 소재의 노란 반팔은 물을 빨아들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지나가는 노부부에게 비닐을 부탁했다. 부부는 미리 준비한 비옷의 매무새를 다듬은 뒤, 따뜻한 미소로 비닐봉지를 건넸다. 거세지는 빗방울 아래에서 우린 같은 감정을 공유한듯 웃음을 나눴다. 전자기기를 비닐봉지에 넣고 지퍼를 올리니, 한편에 차지한 근심이 사라졌다. 이내 마음이 편안해지며 나는 하늘을 향해 힘껏 두 팔을 벌렸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감옥을 탈출한 주인공과도 흡사했다.


"시원해~"


이건 비가 그치고 찍은 사진이다

폭포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와 여름 한낱의 장맛비가 살갗에 떨어졌다. 피부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시원한 향기에 모든 세포가 뜰뜬 것을 느꼈다. 살갗에 직접 닿는 촉감 너머로 폭포의 우람한 소리가 들려왔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는지, 폭포에서 나온건지 헷갈렸다. 그러나, 잔뜩 신난 채로 그 착각마저 즐겼다. 저멀리 웅장하게 떨어지는 폭포는 타악기가 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실로폰 연주가 되었다. 나는 자연이 내는 환상적 리듬에 나는 몸을 맡겼고, 자연이 내뿜는 촉감을 온전히 사랑했다.


상부 산책로를 다 둘러보고 잠시 휴식처에 앉아 비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젖은 운동화를 말리는 관광객들은 이과수 폭포가 주는 습도와 갑작스런 장마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얼굴에는 시원함이 서려있었다. 비가 멈출즈음, 나는 다시 하부 산책로로 향했다.



상부 산책로에서는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 폭포의 시작점과 아슬아슬한 낙차를 느낄 수 있었다. 반면 하부 산책로는 이과수 폭포 전경을 흡수 할 수 있었다. 상부와 다른 매력으로 폭포는 웅장하게 존재감을 뿜어냈다. 위엄있는 폭포에 관광객들은 감탄하며, 빗방울이 그친 틈을 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20240115_112241.jpg
20240115_132748.jpg
20240115_131725.jpg


굵은 빗방울로 인해 보지 못한 상부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 상부 산책로에 갔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이과수 폭포는 웅장함을 한층 더했다. 비가 개고나니 폭포는 빗물을 흡수해 더 강해진 듯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폭포 앞에 서서 몇분 가량 멍하니 바라보았다. 굵은 물줄기는 막아둔 일부가 터진 것 처럼 힘차게 분출하고 있었다. 막힘 없이 펑 뚫린 하늘 아래에서는 거대한 폭포 전부가 장렬하게 분출하고 있었다. 나는 오로지 폭포에 집중하며 이과수의 장대함을 느꼈다. 강렬한 폭포 소리에 압도되어 모든 정신이 차단되는 듯했다.


격렬한 물줄기는 차가운 물조차 뜨겁게 보이게 했다. 폭포가 내뿜는 입김 사이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수증기 속 무지개는 하늘 위 요정처럼 샘솟았고, 폭포의 물줄기는 캉캉을 추는 치마자락처럼 뿜어졌다. 중력에 대응하듯 지구 중심으로 무섭도록 떨어지는 모습은 흥겹게 춤추는 치마폭과 같았고, 장렬하게 뿜어내는 울분은 그 춤바람 속에 녹아 들었다. 나는 이과수 폭포를 바라보며 지구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폭포의 춤사위는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산책로를 나오는 길에 빗방울이 다시 거세게 내렸다. 교과서로만 보던 이과수 폭포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황홀했다. 이과수의 강렬함, 웅장함, 무언가 토해내는 울분과 뿜어내는 짖어댐을 보았다. 이과수를 향해 내린 비는 축복과도 같았다. 축복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자유라는 단어 그 자체가 되는 순간을 느꼈다. 내가 꿈꾸고, 그 꿈을 이루고, 그 순간을 음미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맞으며 폭포를 나오는 길, 나는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나왔다. 볼에 닿은 물이 폭포에서 오는 것인지, 하늘에서 내린 것인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블로그

https://www.youtube.com/@daisyshin:유튜브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9화아르헨티나 I 탱고 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