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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I 탱고 배우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⑤① : 남아메리카에서 탱고의 열정 배우기

by 여행가 데이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는 마치 다시 파리에 온 듯했다. 햇살은 따스하게 창가를 비추었고, 바람을 타고 내 코 끝으로 스며들었다. 화창한 하늘은 그림처럼 맑고 투명한 색으로 펼쳐졌고, 그 푸른 스케치북 위에 흰색 구름이 덧칠된 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고풍스러운 유럽 양식의 건축물 사이,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엠빠나다를 먹고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열기에 따뜻한 고기 냄새가 묻어 나왔다. 건물은 고딕의 뾰족한 탑과 신고전주의의 정직한 기둥이 혼재했고, 건물 사이로 관능적인 탱고 음악이 퍼져 나왔다. 소형 아코디언 소리는 거리 위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했다. 유럽식 건축물과 라틴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거리에 매력을 더했다. 상점 진열장 곳곳은 아르헨티나 국기 색인 하늘색과 흰색 타일로 가득했고, 그 위로 태양 문양이 새겨있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리오넬 메시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와 자석이 나란히 진열되었다. 나는 거리를 음미하던 중, 멈추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어폰 너머 들려오는 탱고 노래가 거리 위 햇살에 살살 녹는 듯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⑤① : 남아메리카에서 탱고의 열정 배우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본고장으로 탱고가 도시 자체의 정체성이었다. 원주민 터전에 유럽 이민자와 아프리카계 후손이 유입되고, 노동자가 모여들며 생긴 빈민가에서 탱고가 시작했다. 하층민의 정서와 서로 다른 집단의 문화가 어우러지며, 절제되고 침착한 리듬 속에 이들의 외로움과 욕망이 녹아든 탱고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보카(La Boca)는 탱고를 그대로 표현한 거리였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보카 지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알록달록 칠해진 판잣집 사이로 탱고 음악이 흘러나왔고, 아코디언과 비슷한 반도네온 소리가 공기로 퍼져갔다. 빨강, 초록, 파랑으로 물든 벽돌 위는 벽화가 덧칠되어 거리가 하나의 캔버스와 같았다. 거리 예술가는 캔버스에 탱고를 그리고, 탱고의 느린 선율에 맞추어 춤사위를 표현했다. 사람들은 식당 테라스에 앉아 아르헨티나 전통 마테를 마시며 맥주잔을 부딪혔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뒤로 탱고 예술가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애절한 표정이 보였다. 생동감 넘치는 거리는 탱고의 섬세한 울림으로 공기조차 끈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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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 공연


하루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탱고 공연을 보러 갔다. 하층민의 슬픔은 탱고 공연을 통해 애절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무대에서 붉은 조명이 밝아지며 남녀 무용수가 나왔다.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단정히 머리를 묶은 무용수는 낮게 나오는 음악에 맞춰 고개를 돌렸다. 남녀는 얼굴을 닿을 듯 말 듯 유지하며 살갗을 스치는 긴장을 주고받았다. 탱고 노래의 리듬은 서로의 끈적함을 더했다. 시선은 바닥을 향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서로를 향했다. 마치 첫 만남에 강렬히 이끌린 듯 매혹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남자 무용수는 여자의 허리를 감쌌고, 음악이 격렬해지며 두 사람은 정교하게 스텝을 밟았다. 유쾌한 탱고 리듬 위에 현악기는 절절하게 울렸고, 치맛자락은 유연하게 퍼졌다. 여자 무용수는 남자 다리 사이로 발을 꺾어 몸을 품에 맡겼다. 어느새 무대를 가득 채운 다른 무용수들이 리듬에 맞춰 합류했고, 남자는 계속해서 여자 허리를 감싸 안았다. 노래 피날레가 찾아오고, 여자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공연의 막이 내렸다. 한 편의 공연은 사랑과 고독, 열정과 욕망이 뒤섞인 예술이었다. 탱고를 추는 남녀의 강렬한 끌림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오래전부터 탱고 배우기는 나의 버킷리스트였지만, 공연을 본 순간 나는 곧바로 탱고 수업을 등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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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주소를 따라가니 간판 하나 없는 건물이 나왔다. 초인종을 누르니 낡은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수업을 맡은 흰색의 곱슬머리 강사는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현지인을 포함해 여덟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모였고, 저마다 어색하다는 듯 수줍게 인사했다. 강사는 수강생 얼굴과 메모장을 번갈아 보다가,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탱고는 서로를 느끼는 거예요."


강사는 탱고에 대한 추가 설명 없이 수강생을 일렬로 세웠다. 그는 서로 감각을 느끼기 위해 어떤 움직임이 필요한지 본인 몸으로 직접 시연했다. 그의 흰머리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시연을 끝으로 수강생은 둥글게 원을 이루었다. 이내 탱고 악기인 반도네온의 공허한 울림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우리는 탱고 리듬에 몸을 맡겼다. 이내 무작위로 옆 사람과 마주해 서로의 호흡과 리듬에 몸을 실었다. 짙은 템포의 음악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강사는 수강생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중간중간 조언을 덧붙였다.


"탱고의 시선은 어깨 밑을 향합니다."


탱고의 쓸쓸한 멜로디를 배경으로 나는 파트너와 발을 맞췄다. 반도네온의 애틋한 선율에 맞추어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리가 공간을 가득 감쌌다. 나는 파트너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파트너가 발을 조용히 앞으로 내디딜 때, 나는 발을 뒤로 빼며 중심을 맞췄다. 움직임으로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순간, 나는 파트너와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서로를 보지 않아도 돼요. 그저, 서로를 느끼는 거죠."


탱고 (모자이크).png 아르헨티나에서 탱고 수업을 배우며


강사의 말을 들으며 템포에 따라 움직였다. 강사의 박수 소리에 맞추어 파트너를 바꿔가며 리듬에 발을 맞췄다. 애절한 피아노에 맞춰 상대는 발을 뒤로 빼며 나를 끌어당겼다. 나도 그에 맞춰 몸을 기울였다.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상대의 숨결이 느껴졌고, 체온이 전해질 듯 긴장감이 흘렀다. 표정보다 체온은 더 많이 말하고 있었다. 상대의 숨소리조차 리듬이 되었고, 오늘 처음 본 상대의 이름도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눈보다 발로, 말보다 호흡으로 움직이는 춤사위는 흠뻑 젖은 밤공기와 같았다. 절제된 탐욕 속에 고독이 스며있었고, 그 속에서 가슴 아픈 사랑의 시련을 느껴졌다. 살갗을 부딪히는 순간, 나는 파트너의 체온을 느꼈고, 그 찰나에서 긴장감이 돌았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서로를 느끼면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강사의 박수 소리에 맞춰 파트너가 바뀌었다. 이번은 엄마 나이대로 보이는 한국 분이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두 손가락을 맞잡아 깍지를 끼우자, 그의 부드러운 몸짓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따스한 눈빛과 몸짓을 해석하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춤을 춘 적이 있었나?'


점점 빨라지는 리듬 속에서 첼로의 낮은 현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바이올린의 날카롭게 튕기는 소리가 이어지며, 상대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자연스레 한국에 계신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손을 맞대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그의 이끄는 손길에서 엄마의 온기를 느꼈다.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상대의 숨결 속에서 엄마의 미소가 스쳤다. 강사는 박수를 쳤고, 이내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파트너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먼저 너에게 갈게. 나한테 들어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말은, 탱고를 추는 모든 방법을 한마디로 압축한 듯했다. 그는 내 숨결을 움켜쥐고 거침없이 리듬을 만들었다.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나는 그의 이끌림을 따라 천천히 그에게 들어갔다. 허리를 감싸는 그의 촉감은 단단했고, 그가 내쉬는 숨결 사이로 뜨거운 열정과 긴장이 느껴졌다. 그의 진득한 움직임은 나를 사랑에 빠뜨릴 것만 같았다. 끈적이는 탱고 리듬 속에서 상대를 느끼며,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탱고를 배워야지.'


수업 내내, 나는 탱고 자체와 사랑에 빠졌다. 수업이 이루어진 한 시간은 오직 상대방의 숨결과 탱고 음악으로 가득한 순간이었다. 탱고 선율은 분노와 슬픔을 손에 가득 쥐는 듯 나를 매혹적으로 이끌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나는 떠나는 사람을 애타게 부르는 듯한 애절함을 느꼈다. 사랑의 격렬한 파도와 고독의 쓸쓸한 바람이 끊임없이 내 마음을 오갔다. 탱고의 강렬한 유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 위에서 노동자가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피어갔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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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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