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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I 스페인 버킷리스트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⑥-⑦ : 빠에야 먹기/가우디 건물

by 여행가 데이지


스페인 버킷리스트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스페인에 대한 상상을 채워준 두 가지 특정 수입이 있다. 첫 번째는 가우디 건축물 내용을 담은 영어 수업이었다. 영어 수업 한 달 동안 가우디 건축물이 가진 미학과 가우디의 삶을 배우며 그 독특한 건축물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다.

두 번째는 요리 실습을 했던 기술과 가정 수업이다. 내가 어떤 요리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가 만든 빠에야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친구는 정성껏 볶아진 밥 위에 신선한 새우를 숟가락에 담아 건네주었다. 당시 기술과 가정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그 친구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빠에야를 받아 든 순간과 한입 먹었을 때의 감동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빠에야 한입을 먹자마자 풍미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마치 다채로운 색채와 향기로 가득한 미식 축제 한 복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부터 스페인 여행에서 '가우디'와 '빠에야'는 결코 뺄 수 없는 꿈이 되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⑥ : 스페인에서 빠에야 먹고 새우의 촉감 느끼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⑦ : 스페인 안토니 건물보고 곡선과 곡선의 미학에 대해 생각하기







#1. 스페인에서 빠에야 먹고 새우의 촉감 느끼기




중학생 시절부터 품어온 빠에야에 대한 꿈은 스페인을 여행하는 상상 속에 언제나 빠지지 않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정갈하게 플레이팅 된 빠에야부터 지역 맛집에서 전통 방식으로 요리되어 깊은 맛을 내는 빠에야까지, 모든 형태의 빠에야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그러나, 스페인 여행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빠에야는 예상과 달랐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유명세에 예약 없이 못 먹는 맛집도 아니었다.



(1) 마트에서 대충 만든 빠에야라도



drive-download-20240314T023201Z-001.jpg 산티아고 순례길 절반을 함께한 사람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며 우연히 함께 걷게 된 동행이 생겼다. 함께 걸으며 서로의 공간을 채우니 더 많이 웃는 길의 연속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같은 길 위에 만났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일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우리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와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간단히 만든 저녁 식탁 위로 저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었다. 푸짐한 저녁 시간은 함께였기에 더없이 따뜻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가 분명 다른 날에 출발했다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좋은 길을 걸었겠지만, 나는 우리가 이 날에 출발해 만나게 되어, 함께 추억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해."


소중한 인연이 되어 서로의 순례길을 풍부하게 채워가던 중, 순례길 6일 차가 되는 저녁에 빠에야를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빠에야'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말했다.


"빠에야라니! 내가 스페인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거였어!"


그날도 우린 평소처럼 마트에서 재료를 샀다. 누군가는 야채를 손질하고, 누군가는 밥을 볶았다. 물 양 조절을 잘못해 밥이 퍼지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완벽한 빠에야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드는 빠에야가 중요했다.


"너무 맛있어 보여!!! 스페인에서의 빠에야라니! 나의 꿈이었어!"


완성된 식탁 앞에서 첫 숟가락을 들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빠에야는 유명 셰프가 만든 것도, 정통 레시피를 따라 만든 것도 아니었다. 있는 소스를 넣어 만들고 불어나서 진득해진 밥알은 빠에야와 사뭇 다른 생김새였다. 그러나 함께 장 보고 웃으며 만들어낸 빠에야는 어떤 요리보다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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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든 빠에야 / 저녁 먹은 뒤 한바탕 마사지 시간


빠에야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우리는 서로 어깨 마사지를 하며 저녁 시간을 마무리했다. 장난스러운 농담을 오가며 포근한 온기로 공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빠에야를 먹은 순간을 기록하고자 일기장을 꺼냈다.


빠에야를 먹었다. 스페인에서 빠에야를 먹는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지만, 순례길에서 마트 장으로 본 빠에야를 먹을 줄이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어서 더욱 맛있었다. 순례길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더욱이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라니. 순례길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 먹은 빠에야도!




(2) 차갑고 식은 빠에야라도



스페인 기차역에서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와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뒤, 친오빠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시작했다. 그동안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해 온 내 방식에 오빠도 익숙해져 갈 즈음이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해 미리 연락해 둔 호스트 집에 찾아갔다. 호스트가 알려준 주소지에 도착해 연락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오빠와 여행을 시작하고 챙겨야 할 것이 두 배가 늘었다는 생각에 나는 신경이 꽤나 예민해있었다.


'일단 30분 정도만 기다려보자'


근처 벤치에 앉아 호스트의 답장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 단위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오빠가 말했다.




"새로운 카우치서핑 경험을 하게 돼서 좋다. 오히려 여러 경우를 겪을 수 있는 시간이야. 고마워."


예상하지 못한 위로였다. 오빠의 다독임에 불안이 녹는 듯했다. 내 마음을 신경 써준 오빠에게 고마웠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호스텔을 알아보자는 말이 나오려는 찰나에 전화가 울렸다. 호스트는 잠에서 막 일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데이지, 잠시 낮잠을 잤어."


낮잠(시에스타)이 일상에 스며있는 스페인이라지만, 연락 없이 30분 넘게 기다리게 하고 사과 하나 없는 그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집에 들어서자 어눌한 발음으로 태연하게 말하는 그를 보니, '30분이 사실 별거 아닐 수 있는데, 내가 예민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방을 소개하며 커다란 냉장고를 보여줬다. 냉장고에서 커다란 하몽(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스페인 전통 햄)을 꺼냈다. 분홍빛의 연한 살로 윤기 나는 하몽을 손질해 건네며 그가 말했다.


"뭐든지 먹고 싶은 거는 편하게 먹어!"


낮잠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는 요리를 좋아한다며 말했다


"내일은 빠에야를 만들 생각인데.."


나는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바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빠에야라니!! 내가 스페인에서 가장 하고 싶던 것 중 하나가 빠에야 먹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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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라로조는 부엌 한쪽에 놓은 대야 같이 큰 냄비 뚜껑을 열었다. 뚜껑 아래는 전날 만들어 둔 빠에야가 가득 담겨있었다. 노란빛의 밥알은 붉은 기름에 절어 있었고, 연두색 콩이 군데군데 심어있었다. 그 위로 해산물과 레몬이 얹혀 있었다.


"우와!! 엄청 맛있어 보여!!!!"


"원래 진짜 맛있는 빠에야는 이렇게 식은 채로 먹는 거야."


그는 차가운 빠에야를 좋아한다며 빠에야를 일부로 어제 만들었다고 했다. 먹을 만큼 담아가라고 말하며 그는 본인 빠에야를 가득 담았다. 접시에 옮기니 모락모락 연기 하나 없는 채 기름진 윤기만 반짝였다. 갓 만든 상태로 따뜻하게 먹는 빠에야만을 알고 있었는데,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한 숟갈 떠먹으니 차갑고 기름진 밥알이 입 안에 가득했다. 묵직한 기름 맛은 이내 쫀득하고 단단한 밥알에 씹였다. 식은 해산물은 질기면서도 색다른 식감이었다. 예상과 전혀 다른 빠에야 맛에 신기해하는 나에게 라로조는 말했다.


"거봐, 식은 빠에야가 더 맛있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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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빠에야의 두가지 순간


이후 여행을 이어가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정식으로 빠에야를 먹기도 했다. 노릇하게 익은 밥과 해산물은 풍미 있는 맛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빠에야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먹은 빠에야의 순간들이 깊이 기억이 남았다.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었다. 빠에야를 만들기 전부터 먹은 후까지의 모든 시간이 빠에야의 맛을 이뤘기 때문이다. 장난치며 장을 보고 와서 만들고, 미소를 나누며 빠에야를 숟가락에 올리고, 차갑게 식은 빠에야로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모든 순간이 빠에야를 만들었다. 스페인에서 빠에야를 먹는 상상을 수없이 했지만, 하루 종일 걷다가 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퍼지고 눅눅한 빠에야일 줄 몰랐다. 현지 친구 집의 대야 같은 냄비 속 식은 빠에야와 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오히려 예상 밖의 빠에야 모습은 내게 더 따뜻하게 남아있었다.






#2. 안토니 건물 보고 곡선과 곡선의 미학에 대해 생각하기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가우디의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등 어린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이 눈앞에 실제 건축물로 펼쳐졌다. 단순한 외관적 아름다움 너머로 자연 흐름을 닮은 유기적 곡선과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조화를 느꼈다. 그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에 들어간 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잔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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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안에서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 성당에 들어서니, 성당 내부에 스며드는 오묘한 빛의 향연에 압도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빛이 붉게 산란해 붉은 계열의 프리즘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폰 너머로 해설사의 한 문장마다 오래도록 여운을 느꼈다. 그는 설명했다.


"이곳의 주인공은 공간입니다. 가우디는 본인을 진정한 스승이라 여기며 성당을 숲으로 표현했습니다..."


거대한 기둥이 나무 줄기처럼 하늘로 뻗은 공간에 서 있으니, 마치 내가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변한 기분이었다. 창가로 스며드는 빛은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놀랍도록 포근하고 편안했다. 자연의 본질을 꿰뚫어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낸 건축물은 그 자체로 황홀했다. 흘려 나오는 오르간 선율에 눈물이 흘렀다.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신념과 희망이 나를 다독이는 듯했다. 가우디의 신성한 작품은 그 속에 있으니 나에게 나약함을 마주하는 힘을 줬다. 그 속에서 간절한 소망이 자라났다.


'우린 참 나약한 존재구나. 그러나, 그 속에서 사그리아 파밀리아 같은 위대한 일을 해내는구나.'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한가운데에서 문득 간절함이 깊이 일어났다. 공기 중에 퍼진 빛의 향연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와 속삭였다.


'순간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꿈을 꾸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힘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성당을 나와서도 공간을 이뤘는 빛과 그 순간의 여운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IMG_20231127_212727_023.jpg 스페인 여행의 순간들



지난 스페인 여행을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에 꿈꿨던 순간들이 상상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때론 상상보다 압도적이고 황홀했다. 그러나 모든 순간은 마음속에 품어온 꿈을 이루어낸 찬란한 결실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한층 더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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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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