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③-④ : 이탈리아 찐피자/피사의 사탑
화창하고 청명한 하늘아래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늦여름, 나는 불가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대륙에 발을 디뎠다. 얇은 반팔 셔츠로 충분하던 여름 끝자락에서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볼을 스쳤다. 유럽 대륙을 한바퀴 돌고나니 계절이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어느새 두꺼워진 후드티를 걸치며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셨다. 유럽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이탈리아를 앞두고 있었다.
공항 바닥에 누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눈꺼풀은 무거워져 기내 좌석에 앉자마자 잠에 빠졌다. 비행기의 고요한 동체 소리에 눈을 뜨니 차창 너머로 일출이 드러났다. 햇살은 오렌지색으로 번져 구름에 물들고 있었다. 아침에 받은 하늘의 고요한 선물 같았다. 수평선 끝으로 붉게 번진 태양을 보고있으니 눈물이 흘렀다. 지난 3개월의 유럽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프라하 밤을 채운 주홍빛 가로등, 포르토의 강가에 들려오던 아코디언 선율, 파리 거리의 야외 테라스에서 풍기던 커피 냄새까지.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눈물을 닦으며 유럽의 마지막 국가, 이탈리아에서의 버킷리스트를 꺼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③ : 이탈리아에서 찐피자먹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④ : 이탈리아 휘어지는 건물(피사의 사탑) 다시 일으켜 세우기
이탈리아는 가본 적 없어도 낯설지 않은 국가였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보아온 미디어 속 풍경에 이탈리아가 이미 친숙했다. 장화처럼 길게 뻗은 영토, 손가락을 오므려 감정을 드러내는 이탈리아인의 몸짓, 피자와 스파게티의 본 고장이라는 이미지 등으로 이탈리아를 가득채웠다. 그 중에서도 피사의 사탑과 이탈리아 피자는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탑을 세우고자 허공에 손을 뻗은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한 사람과 붉은 토마토 소스와 초록빛의 바질, 길게 늘어나는 치즈를 베어무는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탑 앞에서 우스꽝스레 사진 찍고, 갓 구운 피자 치즈 앞에서 입을 벌린 순간을 내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창밖을 보며 나직히 말했다.
'남은 이탈리아까지 마음껏 사랑해보자.'
“연호오빠!"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대학 선배를 만났다. 제대하고 곧장 유럽 여행을 떠난 선배는 오랜만에 본 얼굴에도 어제 본듯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방방 뛰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 보따리를 한참 풀던 중, 선배는 이탈리아에서 하고 싶은게 뭐냐고 물었다.
“이탈리아에서 찐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어!"
진정한 피자와 파스타는 이탈리아에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온 나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선배는 이유를 묻지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자와 파스타! 너무 좋지."
로마는 오랜 유적은 품은 도시답게 거리를 걷기만해도 고대의 한 장면을 걷는 느낌이었다. 나만이 현재에 있으며 주변 모든 요소는 수백 년 전 시간에 머물러있는 듯했다. 회색빛 석재 건물과 덩그러니 자리한 폐허는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히 전달했다. 바닥은 불규칙한 모양의 돌로 이루어져있었다. 그 위를 또각또각 소리내며 마차가 지나갔다. 붉고 노란 색감을 띠는 현대 건물은 일부 바랜 외벽으로 고풍스럽고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선배와 나는 로마를 함께 여행하며 여러 차례 피자와 스파게티를 맛봤다. 모든 피자가 맛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처음 피자와 파스타를 마주한 순간은 선명히 남아있다.
"카르보나라가 석탄에서 나온 말인거 알아?”
"엥 진짜?"
선배는 머릿속의 잡학사전이 있는 듯 박학다식한 지식으로 여행 내내 흥미로운 상식을 공유했다. 우린 배고픔에 굶주린 채 아무 식당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메뉴판에서 맛있어 보이는 사진으로 고른 뒤,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이제 오픈한 주방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탈리아어인 Carbonara는 석탄을 뜻하는 carbon에서 유래한 거야. 원래 통후추를 빻고 볶아서 넣은 건데, 그게 석탄 같다고 해서 붙여진 거래. 광부들이 자주 먹던 음식이라고도 하더라."
선배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식탁을 채웠다. 나는 배고픔과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였다. 선배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기대감을 잠재우던 중 피자가 나왔다. 피자는 얇은 도우에 겉은 바삭하고 둥근 모양을 따라 토마토가 치즈에 녹아 붉게 번져있었다.
"나폴리 치즈는 이탈리아 국기 색이랑 관련이 있어. 바질이 초록색, 모차렐라 치즈가 흰색, 토마토가 빨간색을 담당하는 거야. 피자 마르게리타는 이탈리아 국기를 형상화한 거지."
선배 말처럼 피자는 이탈리아 국기를 형상화해있었다. 그 위로 갓 구운 냄새와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치즈에 녹아든 토마토는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했다.
"나 카르보나라랑 마르게리타 피자를 유럽에서 처음 먹는 거 같아!!!"
3개월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마르게리타 피자와 카르보나라를 단 한 반 마주치지 못했다. 여행 마지막 국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두 음식을 보니 기대감은 절정으로 올랐다. 마지막 아드레날린을 위해 아껴둔 보물을 꺼내는 느낌이었다. 입꼬리를 내릴 새도 없이, 이탈리아 피자를 한 입 물었다. 바삭하고 얇은 도우와 함께 치즈가 늘어나면서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곧이어 나온 카르보나라가 나왔다. 카르보나라는 후추향이 퍼진 채 꾸덕한 식감이었다. 파스타를 돌돌말아 입에 넣는 순간 선배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이건 말이 안 되지."
마르가리다 피자는 얇고 바삭한 크러스트를 가진채 토마토 소스 끝으로 가장자리까지 섬세하게 구워져있었다. 각각의 피자마다 특징과 고유의 맛이 있지만, 피자를 한입 베어물자마자 나는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혁명이야"
진정한 카르보나라가 무엇인지, 피자가 무엇인지를 미각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선배는 황홀한 자리에 안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탈리아 음식 자체에서 오는 풍미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맛을 공유하는 상대가 있어 풍미가 더 깊게 느껴졌다. 우린 서로가 주는 미각적 선물을 음미하며 치즈의 향연으로 빨려갔다.
선배와 로마 여행을 마치고, 피렌체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 발레리아와 만났다.
피렌체에서 만난 발레이아 이야기 다시보기 ▶ 남자는 고양이인데, 드래곤으로 변해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향기와 수백 년 역사를 담은 예술 숨결이 녹아 있었다. 예술이 고스란히 녹아든 피렌체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피사의 사탑을 보기위해 피사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고요한 붉은 빛이 버스 창틈으로 흘러왔고, 피사에 도착할 즈음 하늘은 검정빛으로 가득해졌다. 늦은 시간에 짐 보관소는 굳게 닫힌 채 어둠만이 나를 반겼다. 버스의 낮은 엔진소리가 멀어지고나니 정류장에 남은건 나 혼자였다. 피사의 사탑은 15분 거리이기에 고민끝에 배낭을 멘채로 일어났다. 20kg가 넘는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지만, 발걸음은 산뜻한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내가 피사의 사탑을 본다는 기대감은 밤의 서늘함을 따뜻하게 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이어지는 길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 부터 꿈꿨던 피사의 사탑을 오늘 보다니!'
울퉁불퉁한 커다란 네모 모양 조약돌을 따라 걷다 맥도날드를 지나쳐 벽을 통과하고 나니 피사의 사탑과 대성당이 보였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 사탑은 기울어진 채로 고요히 존재했다. 사탑을 보자마자 장난감을 보는 듯했다. 걸음을 옮기며 조금씩 가까워오면서도 눈 앞의 건축물이 하나의 조형물 혹은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사탑의 모습이 기울어진게 현실적이지 않게 보여서일까, 사진에서 수없이 봐온 모습을 두눈으로 확인산게 믿기지 않아서 일까. 피사의 사탑을 몇 분 가량 물끄러미 응시해도 여전히 장난감같았다. 스스로 피사의 사탑에 왔다고, 내 눈앞에 있는게 장난감이 아니라 피사의 사탑이라는 말을 여러번 상기했다.
문득 피사의 사탑이 유명한 이유를 돌이켰다. 그 이유는, 기울어져있기 때문이다. 실제 피사의 사탑은 건축계에서 기울어진 건물은 이단아 취급을 받는다. 피사는 본래 목적으로 불구이지만, 그가 가진 '불구'는 특별함으로 여겨졌다. 실제 피사의 사탑은 한때 붕괴를 우려해 보수되었지만, 이에 사탑의 매력이 사라져 관광 수요가 줄어 다시 기울기를 되돌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상이 아닌 존재를 이단아 취급을 하면서도 '기울어짐'에서 독특한 매력을 느끼는 게 아이러니했다. 우리의 모순적 욕망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다른 이유도 떠올랐다. 피사는 기울어졌음에도 꿋꿋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피사가 가진 특별함은 별 볼거리없는 작은 마을 '피사'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무엇이든,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는걸 피사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다른 국가에 관심도 없는 사람도 피사의 사탑을 알고있으며. 나 역시 어릴 적부터 사탑을 보길 간절히 꿈꾼 곳이구나. 누군가의 꿈이 되고, 누군가에게 추억의 장소가 되며,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피사가 참으로 귀엽게 느껴졌다.
조명 없이 껌껌한 피사를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붉은빛 조명이 켜졌다. 적색의 사탑은 어둠속에서 고독을 머금은듯 우아한 자태를 뿜었다. 물끄러미 사탑을 바라보다 문득 그 곁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가족과 산책하는 이들,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찍는 이들, 옹기종기 함께 사탑을 구경나온 사람들. 이들의 소소한 순간은 고독한 피사의 사탑을 따뜻한 온기로 채웠다.
'이 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채, 피사의 사탑은 말없이 고요히 서있었다. 무언가 쓸쓸함도 느껴졌다. 붉은 조명은 그 고독함을 짙게 드리웠다. 사탑과 고독을 나누니, 마음 속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햇살 아래에서 붐비는 관광객을 뚫고 사탑을 일으켜세우는 사진을 상상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20kg 배낭을 맨 채로 피사의 사탑을 볼 줄은 몰랐다. 방방 뛰며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내 모습이 아닌, 차분하게 사탑을 바라보며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는 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 고요한 감정이 마음을 붙잡았다. 어떠한 자극없이 꿈을 이루는 고독의 순간, 내 안에 선명히 떠오른 얼굴들은 순간을 더욱 값지게 만들었다. 타인이 주는 감정이 외로움이라면 스스로 결정한 삶의 태도로 고독이 되는 걸까, 난 고독을 받아들이며 꿈을 이룬 순간을 즐겼다. 멍하니 사탑을 바라보며 훗날 가족들과 피사의 사탑을 찾는 상상을 했다.
피사의 사탑은 뒤로한 채, 근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1.8유로와 1.5유로 사이에서 몇 분가량 고민했다. 문득 벽에 있는 거울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앞 뒤로 배낭을 맨채, 절약하고자 0.3유로를 망설이는 내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0.3유로도 아끼는 내 모습이, 어릴 적 품은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내 모습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내게 이런 삶을 알려줘서, 그리고 훗날 이 삶을 돌아보고 이런삶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줘서 감사합니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daisyshin:유튜브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