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① : 우유니 사막에서 사진 찍기
본 글은 저번주에 발행된 1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화 다시 보기 ▶ 볼리비아 I 우유니 사막에서 사진 찍기 (1)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괴로웠다. 미치도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있으면 고통과 우울의 심연으로 빠졌다. 무언갈 할 힘도 없으며 무언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언갈 안 하면 무언갈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고통이라는 불구덩이에 갇힌 느낌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무언가를 할 힘도 없었다. 눈을 떠도 괴롭고, 눈을 감아도 괴로웠다. 눈물을 흘려도 슬프고, 눈물을 참아도 슬펐다. 황량함과 비참함의 소용돌이에서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결국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슴이 사무치게 아려왔다. 뾰족한 바늘로 심장을 무너질 때까지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자신에 대한 분함과 원망을 안고 보는 우유니는 어떤 모습인지,
너 자신에게 보여줘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이것 또한 지나가리.
원망과 분노를 가지고 악을 쓰고 가서
네게 우유니를 선물해 줘.
그것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은사님의 말을 들으니 약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거세게 뺨을 타고 흘렀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우유니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추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팠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스텔라와 나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스텔라는 버스 직원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직원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본인 일도 아닌데, 나를 위해 슬퍼하는 그가 고마웠다. 그의 눈물을 보니 나도 멈출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너 바로 앞에 있던 남자가 마지막 승객이었어. 늦더라도 그럼 9시 버스를 타고 가."
스텔라와 내가 눈물을 흘려도 직원은 차갑게 말했다. 그는 아랑곳없이 가장 마지막 시간대의 우유니행 티켓을 줬다.
"우리, 공원까지 산책하자."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오며 스텔라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그는 말했다.
"데이지, 울고 싶으면 울어. 슬플 때는 우는 거야. 눈물이 너를 위로해 줄 거야."
그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멈출 새 없이 쏟아졌다. 눌러왔던 감정이 쏟아지는 홍수처럼 범람했다. 공원에 누가 있던지, 누가 나를 쳐다보든, 개의치 않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 울었다. 스텔라는 진하게 나를 포옹하며 함께 울어주었다. 우리는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목청껏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가져가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다음날, 출발보다 이른 시간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길게 늘어진 대기석 의자에 앉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생은 총량의 법칙이야.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거야. 좋든 좋지 않든, 내게 닥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자.'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불안하게 이어지는 이 다짐이 이어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찾지 못하는 사실을 마주할 힘을 주세요. 이 순간을 받아들일 용기를 주세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감정을 따뜻하게 포옹할 용기를 주세요.'
스텔라가 준 따뜻한 위로에 힘입어 스스로를 위로하다 보니 버스 출발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버스 안내가 없었다. 10분 정도 시간이 더 흘러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같은 버스인 줄 알았던 옆 승객에게 물으니 다른 버스행 승객이었다.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매표소에 갔다.
"네가 타려던 버스는 취소됐어."
매표소 직원은 출발시간이 훌쩍 지나고 직접 찾아가니 취소 사실을 알렸다. 그는 뻔뻔한 얼굴로 버스 정책으로 환불도 안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어로 빠르게 무어라 말하는 직원에게 영어로 항의하니 소통이 될 리 없었다. 나는 깔라마에 1분 1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이 마을이 지긋지긋했다. 급하게 우유니행 버스를 알아보지만, 다른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원망할 대상이 없어 깔라마를 원망했다. 내가 깔라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이곳에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분하고 속상했다. 마음을 다잡고 우유니 사막에 가려는데, 내 용기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다시 나아가려는 나에게 이 마을은 무슨 이유로 나를 붙잡아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깔라마를 떠나는 다른 버스를 알아보고자 버스 회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동하면서 내 억울함을 들어달라는 듯이 소리쳤다.
"정말 속상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함이 누구를 향하지도 않았다. 내게 벌어진 이 상황 앞에서 탓할 누군가도 없었다. 그저 소리 내 엉엉 울 뿐이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깔라마 거리 위에서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의 속상함과, 분함과, 억울함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내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 괜찮다며 위로해 주길 바랐다. 스스로 방법을 있을 거라고, 툭툭 털고 나아가자고 말해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을 위로하지 못했다. 머리로 알고 있어도 마음이 응할 수 없었다. 분통함을 못 이긴 나는 거리 끝까지 소리가 닿도록 울 뿐이었다. 나는 숨쉬기 벅찰 정도로 소리치며 울었다.
버스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갈 곳 없이 거리를 방황했다.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다 도착한 곳은 도난 사건을 신고한 경찰서였다. 마땅히 머물 곳 없던 나는 경찰서 의자에 앉았다.
그저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누군가 지나가기만 해도 온몸이 움찔했다.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소매치기가 떠올랐다. 아무 관심 없는 행인들조차 내 가방을 빼앗는 상상이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스쳤다. 과도한 상상에 휘말리는 내 모습이 슬펐다. 속수무책으로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 밖에 없었다. 너무 속상하고 분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숨 쉬고 싶지도 않았다. 사무치게 우리 가족이 그리웠다.
그날 저녁, 스텔라는 경찰서에서 텅 빈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하루를 흘려보낸 나를 데리러 왔다.
"스텔라, 이렇게 자꾸 신세를 져서 미안해. 내 안에 있는 억울함과 분통함을 주체할 수가 없어.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왔어. 그렇지만, 도대체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한 이유를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신이 있다면, 도대체 나를 깔라마에 계속 붙잡아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토록 열심히 찍고 모아둔 내 모든 영상을 가져간 이유가 무엇인지,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볼리비아 우유니에 가고 싶지 않게 하는 이 상황의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탓할 대상도 없이 원망스럽고, 분하고, 억울해."
나는 투정 부리며 우는 아이처럼 스텔라에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데이지, 우리 맛있는 거 먹자. 먹고 싶은 거 있어?"
스텔라가 저녁밥을 요리하며 부엌에서 식기조리 소리를 들려왔다. 문득 매일 요리를 해주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나를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춰주는 등대'라고 표현하곤 했다. 스텔라도 누군가의 엄마라는 사실이 스쳤다. 그는 15살에 엄마가 되어 10살의 아들 딸을 두었다. 그가 엄마가 된 뒤, 남편은 그를 떠났다. 그가 이방인인 나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건 엄마라는 길을 스스로 걸으며 쌓아왔기 때문일까.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춰주는 등대 같은 존재인 엄마. 스텔라. 그가 만든 저녁 식탁에 앉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그가 만든 음식을 받아 들었다.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저녁을 먹고 있을 무렵, 스텔라가 말했다.
"데이지, 네가 타려고 했던 버스가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대."
스텔라는 빨간 헤드라인의 뉴스를 보여줬다. 신호음을 내는 앰뷸런스 뒤로 사고를 보도하는 기자 뒤로 버스 유리창은 사고로 인해 부서져있었다. 쓰러진 버스 옆에는 부상자들이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다. 화면 속 사고 현장을 보자마자 몸 안에 있는 모든 물이 빠져나갈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어제 매표소에서 바로 앞 남자가 마지막으로 사간 버스야. 그래서 다음 차였던 네 버스가 취소가 된 거야. 승객들은 다 응급실에 갔나 봐."
스텔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소리 내어 통곡했다. 나는 내 앞에 닥친 현실과 감정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건들기도 어려운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어떻게 형용할 수도 없었다. 하염없이 엉엉 울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가치 앞에서 내가 느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걸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는 나를 끊임없이 덮쳐왔고, 소용돌이를 막을 유일한 수단은 눈물뿐이었다.
다음날, 봄처럼 비가 내리지 않던 사막 도시 깔라마에 비가 내렸다. 스텔라는 창밖에 붙은 빗방울을 보며 말했다.
"이곳에 이렇게나 비가 온 거는 기적이야."
나는 말했다.
"이건 우리 둘의 눈물인가 봐."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와이퍼를 켰다. 차창 와이퍼로 비가 닦였다. 나는 와이퍼의 반복적 소리를 배경으로 말했다.
"스텔라, 나를 위해 같이 눈물을 흘려줘서 고마워. 너의 따뜻한 위로 덕분에 내가 깔라마에서 버틸 수 있었어."
그는 괜찮다고 말하며 와이퍼를 껐다. 나는 이어 말했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어."
내 오랜 꿈이자,
나의 희망이었던 우유니 사막.
나는 우유니에 머물면서 우유니 사막에 세 번 찾아갔다. 그토록 원하던 우유니 사막을 마주한 첫 번째 순간은 처절하게도 비참했다. 나는 하얗게 펼쳐진 우유니 사막 앞에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우유니 사막을 마주한 두 번째 순간은 죽고 싶을 정도로 비참했다. 나는 거대한 거울처럼 투명한 우유니 사막 앞에서 가슴이 저려왔다. 우유니를 찾은 다른 여행자와 아무렇지 않은 척한 것은 내 감정을 부정한 시간이었다. 전혀 보듬어지지 않은 상처를 무시한 채 하하 호호 웃으며 사막을 즐기는 척했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척을 하니 괴로웠다. 나는 지금 뭘 하는 거지. 내가 지금 행복한 척하려고 이곳에 온 걸까.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숨 쉬는 게 고통스러웠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신이 있다면 제가 고통받는 이유를 알게 해 주세요. 신이 있다면, 이 고통으로부터 배울 수 있게 해 주세요.'
밤이 되자 별빛은 수면 위로 차올랐다. 하늘과 땅은 경계가 허물어져 사방이 전부 별들로 빼곡해졌다. 나란히 떠 있는 별 세 개를 보니, 가족과 함께 별을 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철썩이는 고향 바다 위에 별 세 개가 나란히 떠있는 순간이었다. 우유니 사막은 땅에도 하늘에도 별들이 수없이 나란히 떠있었다. 나는 황홀한 풍경 앞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가족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마을로 돌아와 밤새 울었다. 선글라스를 없이 우유니 사막의 햇빛 아래를 걸었던 탓인지, 눈이 욱신 욱신 아파왔다. 고통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한 시간마다 깼다. 마를 새 없이 흐르는 눈물에 눈이 퉁퉁 부었다. 마음도 버틸 수 없는 밤에, 눈이 실명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유난히 길고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매 시간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기까지 기도했다.
'제발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신이 있다면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이 시간이 지나간다는 사실로 저를 위로해 주세요.'
버틸 수 없을 것만 같던 지옥 같은 밤이었다. 다행히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우유니 사막을 보러 갔다. 어떤 감정을 느껴도 아무렇지 않은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무감각한 마음으로 우유니 사막과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아무 감정 없이 선 채 바라본 마지막 우유니 앞에서, 뜻밖에도 사정없이 눈물이 나왔다. 멈출 새 없는 눈물 속에서 봄 마지막 우유니는 더없이 찬란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얕을 물이 사막을 덮고 있었다. 수면은 하늘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가 연출한 거대한 거울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고요하게 떠오르는 태양은 사막에 자리한 소금을 반사시켰다. 그 빛은 우유니 표면을 파랗게 물들였다. 푸르지 못해 하얀 소금 평야는 녹아내릴 듯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대자연이 주는 숭고함에 압도되었고, 눌러왔던 지난 상처가 씻겨가는 걸 느꼈다. 찬란하게 빛나는 우유니 사막은 내게 용기를 주는 듯했다. 나는 땅과 하늘의 경계를 보며 속삭였다.
"예진아, 네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유니 사막이야."
어릴 적부터 갈망했던 우유니 사막. 사막으로 향하는 길 위부터 흐른 눈물은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사막도시 깔라마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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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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