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① : 우유니 사막에서 사진 찍기
하늘과 맞닿을 듯한 수평선.
하얗게 펼쳐진 광활한 대지.
책 너머로 본 우유니 소금 사막은
어린 시절의 내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① : 우유니 사막에서 사진 찍기
그 소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우유니 사막행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몇 시간 뒤면 닿을 꿈만 같던 길 위에서 나는 나의 꿈과 지난 모든 추억을 잃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우유니 사막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얀색의 소금으로 뒤덮인 우유니 사막을 책에서 봤던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을 잊지 못했다. 한 소녀의 두근거림은 어엿한 21살 배낭여행자의 마음을 여전히 울렸다.
우유니 사막에 가기 위해 볼리비아 국경 인근 마을인 칠레 깔라마(calama)에 잠시 머물렀다. 깔라마 근처 아타카마 사막을 구경한 뒤, 우유니행 버스를 예매했다. 새벽 3시 버스를 위해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려는데, 아타카마 투어에서 만난 한국 분이 본인 호스텔 공간을 제공했다. 덕분에 호스텔 라운지에서 편히 쉬면서 우유니 사막 여정을 준비했다. '내일 아침이면 그토록 꿈꾸던 우유니 사막에 가는구나!' 아타카마의 아름다운 밤하늘처럼, 무언가 운명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이 물결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시계 초침이 새벽 3시를 가리킬 무렵, 아타카마 정류소에 도착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듯, 엔진소리와 짐을 싣는 소리만 공간을 채웠다. 예상보다 쉽게 버스를 발견했고, 안내원에게 표를 보여주니 순조롭게 좌석에 앉았다. 어둠에 잠긴 창 밖을 바라보니, 차창 너머로 내 모습이 비쳤다. 새벽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볼리비아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우유니 사막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심장이 뛴다. 버스는 기이하게도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한다. 버스에 오르니, 삐걱거리는 소리마저도 사랑스럽다. 볼리비아, 비자받기는 까다롭지만, 나는 벌써 볼리비아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짧게 일기를 쓰고 나니, 쌓였던 피로가 밀려왔다. 짐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를 끝으로 나는 잠에 빠졌다.
눈을 붙인 지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 버스 안내원이 뒷 좌석에 앉으라며 나를 깨웠다. 버스는 깔라마에서 잠시 정차 중이었다. 잠결에 눈을 뜨며 뒤로 좌석을 이동하는데, 서양인 승객이 큰소리로 말했다.
"내 가방이 사라졌어."
그는 좌석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며 다급하게 말했지만, 안내원은 시큰둥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동이 트기 전, 버스 안은 자고 있는 승객과 분주히 버스에 오르는 승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틈에서 홀로 가방을 찾는 그을 보며 내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설마, 내 것도?’
곧바로 가방 안을 살폈다.
‘어라’
가방 안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가 사라졌다.
‘어라’
내가 정말 도난을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몇 번이고 가방을 다시 들춰봤다.
‘그럴 리가 없어’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이, 누군가 내 가방을 열어 모든 전자기기를 다 가져간 것이었다. 노트북, 헤드셋, 하드디스크, 각종 충전기, 카메라까지. 큰 배낭에 들어가지 못한 샴푸만이 작은 배낭 안에 홀로 남아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조금씩 현실을 직시하는 마음과,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어느새 승객들을 다 태웠는지 안내원은 출발 신호를 보냈다.
'자, 우선 침착하게 이 사실을 알리자.'
도난당했다는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급히 버스 기사에게 달려가 말했다.
“잠시만요, 제가 가방 안에 둔 소지품을 도난당했어요. 노트북이랑 하드디스크, 카메라부터 제게 귀중한 물건이 전부 사라졌어요.”
버스 기사는 이전 승객에게 대한 것처럼 심드렁한 표정을 보였다.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하며 좌석을 가리키는 걸로 보아, 곧 출발하니 빨리 앉으라는 의미 같았다.
"제 소중한 물건이 사라졌어요."
영어가 도통 통하지 않는 남미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이방인의 호소가 통할리는 만무했다.
정신이 멍해있는 나를 보며 짧은 머리의 승객이 다가와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그 승객에게 내 사정을 다 토로했고, 그는 이야기를 버스안내원에게 전달했다.
“깔라마는 도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야. 자기 물건은 자기가 잘 관수해야지.
전적으로 네 책임인 거야.”
짧은 머리 승객은 안내원의 말을 해석했다. 그의 말이 매정하게 들렸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찾으려는 시도조차 없는 그의 반응이 무심하게만 느껴졌다.
도난당한 서양인 승객은 가방에 소중한 건 없으니 우유니에 가겠다며 버스에 올랐다. 나도 별거 아니라 여기며 툴툴 털어버리고 싶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노트북과 헤드셋, 카메라는 다시 사면됐지만, 하드디스크에는 내 모든 추억이 들어있었다. 용량이 커 백업도 못한 채 전부 하드디스크에 담아두었다. 그 하드디스크를 잃어버리는 건, 지난 내 11개월의 모든 여행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난 11개월간의 세계여행을 담은 모든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었다. 한 순간에 사라진 하드디스크 안의 추억은 내가 나고 자란 조그만 시골 아이들에게 '너도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는 응원이자, 가족들에게는 뿌듯함, 내게는 내가 바라본 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꿈이었다. 하드디스크 안의 영상과 사진들은, 지난 1년 간 세계를 여행하며 나를 혼자가 아니게 해 준,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하드디스크만은 무조건 찾아야 했다.
버스에 황급히 올라 잠든 승객사이를 지나쳐 유일하게 나를 도와준 짧은 머리 승객을 붙잡고 간청했다.
“제가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지난 모든 영상과 자료가 그 디스크에 있어요. 다른 전자기기는 몰라도, 제 추억만큼은 찾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 추억은 돈으로도 살 수 없어요. 제게 꼭 필요한 추억이에요.”
“죄송해요. 저도 방금 일어나서 상황이 갑작스럽네요. 용의자도 없고, 버스에 카메라도 없으니까요. 저도 우유니에 가려는 여행자일 뿐인걸요.”
버스기사와 안내원은 어제도 이런 피해자를 봤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안쓰러운 눈빛을 뚫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나마 알고 있는 스페인어로 간절히 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무심한 그들의 표정에 나의 애원은 깔라마의 밤거리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지난 근 1년간의 모든 여행을 이렇게 갑작스레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우유니로 향하는 버스에 그대로 오르면, 나는 하드디스크를 찾지 못할 것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4시였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조금씩 날이 밝아왔다. 안내원은 출발해야 한다며 내게 탈지 말지 결정하라고 재촉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칠레에서, 나를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는 도로 위에서, 내 모든 것과도 같은, 지난 모든 추억이 순식간에 사라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지난 추억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깔라마 경찰서에 가기로 결정했다.
'경찰서에는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범인을 잡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을 거야. 적어도 범인 카르텔 조직망을 알고 있거나, 나와 같은 피해를 받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도와주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뿐이었다. 갑자기 모든 게 낯설고, 무섭고, 두려웠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적으로 보였다. 하물며, 나를 도와준 짧은 머리 승객조차도 내 하드디스크를 가져가고 모른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조차도 무서웠다. 지금 서 있는 정류장에서 10분 떨어진 경찰서에 가는 길조차 두려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버스가 떠나고 거리에 홀로 서 있게 되는 순간부터 누군가 내 남은 물건도 다 가져가 버릴 것만 같았다. 우유니 사막을 향한 설렘으로 벅찼던 깔라마는 두려움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동네가 되었다. 나는 온갖 두려움에 휩싸이면서, 그저 누군가가 내 옆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겨질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짧은 머리 승객에게 경찰서에 같이 갈 수 있냐고 무리해 물어봤지만, 그는 미안하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게 쏠리던 승객들의 안타까운 시선은 매몰차게 닫히는 버스 문틈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버스 뒷모습을 처량하게 바라봤다. 홀로 남겨진 거리 위의 내가 가엽게 느껴졌다. 지난날의 모든 순간이 내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없던 일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다. 소중한 순간을 공유하고, 기록하고, 추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내 자신이 미치도록 가여웠다. 그런 내게 남겨진 위로는 경찰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뿐이었다. 조그만 희망을 불빛으로 의지해 경찰서로 향했다. 모든 전자제품이 사라진 가방은 이전보다 가벼워졌지만, 내 마음은 몇 배로 더 무거워졌다. 나는 경찰서로 향하는 10분의 시간 동안 두려움과 허망함에 휩싸였다. 그 마음은 경찰서에서도 이어졌다.
"미안, 우리가 도와줄 게 없어."
경찰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모든 게 사라진 상황이었다. 용의자의 인상착의도 모르며, 버스 안에 감시카메라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떠난 버스를 두고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찾으려는 시늉은 할 수 있지 않나요?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없어도 좋아요. 그렇지만, 제 추억들, 제 모든 영상만큼은 제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이에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나는 대화를 끝내려는 경찰을 붙잡고 말했다. 간청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을. 나의 지난 모든 추억을 다시 되찾을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울리지 않는 메아리를 찾으려고 허공을 보아도 깨닫는 건 메아리는 울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게 방금 일어난 사건이 내 일이 아닌듯한 느낌을 가졌다. 경찰이 도와줄 게 없다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을 때에도,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누구보다 차분하게 경찰서를 나왔다.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운 이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1초라도 깔라마에 더 있다가는 마음의 상처가 아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파여 마음이 아예 절단될 것만 같았다. 다른 버스를 알아봤지만, 이미 우유니행 버스가 모두 떠났다. 지옥 같은 깔라마에 남아있는 방법 뿐 이었다.
지난 세계여행 순간을 공유해 온 모든 친구를 한 순간에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누군가와 이별한 듯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더욱 처절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미어지도록 뻥 뚫린 가슴을 붙잡고 있는데,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까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여성이었다. 그에게 짧게 대답하고 경찰서를 나서는 순간, 내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향을 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게 무슨일 인지 물어본 이름도 모르는 여성에게 말했다.
“괜찮다면, 오늘 하룻밤만 당신 집에서 묵어도 될까요? 저는 지금 어딜 가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손님을 맞이할 줄 몰라서, 제대로 정리를 못했어요. 잠시 기다리면 방을 청소하고 올게요."
흔쾌히 집 문을 열어준 여성은 말했다. 그가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허공을 바라봤다. 한 시간도 안되어 발생한 일을 곱씹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우유니 소금사막을 볼 생각으로 가슴뛰던 어젯밤, 우유니행 버스에서 지난 날의 추억을 다 잃어버린 지금. 하루만에 발생한 상반된 감정이 믿기지 않았다. 책 너머로 우유니 소금사막 사진을 보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어린 시절이 스쳤다. 어릴 적 그 소녀는 우유니를 바로 앞둔 상황에서 모든 걸 잃었다.
소파 너머 거울에 텅 빈 눈을 한 내 모습이 보였다. 버스와 경찰서에서 놀랍도록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처량하기 짝없는 거울 속 내 모습에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방 정리를 마치고 나온 여성은 나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었다. 불과 몇 분 전에 처음 본 사람에게 포옹을 받자마자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며 울었다. 그도 함께 울었다. 그의 눈물을 보자마자 난 멈출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결국 나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소리 내 울었다. 몇 분 동안 방안 가득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집과 따뜻한 포옹을 나눠준 이는 스텔라라며 본인을 소개했다. 그는 내가 탔던 우유니행 버스에 남자친구를 배웅하러 왔었다. 버스안내원과 통하지 않는 말로 이야기하는 상황을 얼핏 설핏 보고 있다가, 떠나는 버스 뒤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따라온 것이었다.
우린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었다. 스텔라는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일처럼 속상해했다. 그는 내가 물건을 찾도록 버스 회사에 연락하고, 남자친구에게 부탁해 버스 상황을 물었다. 그러나, 스텔라가 도와주려고 함께 머리를 맞댈수록,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나에게 방에서 쉬라고 말했다.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괴로웠다. 미치도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있으면 고통과 우울의 심연으로 빠졌다. 무언갈 할 힘도 없으며 무언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무언갈 안 하면 무언갈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고통이라는 불구덩이에 갇힌 느낌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무언가를 할 힘도 없었다. 눈을 떠도 괴롭고, 눈을 감아도 괴로웠다. 눈물을 흘려도 슬프고, 눈물을 참아도 슬펐다. 황량함과 비참함의 소용돌이에서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 쳤다.
결국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 들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슴이 사무치게 아려왔다. 뾰족한 바늘로 심장을 무너질 때까지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어릴 적 가슴을 그토록 뛰게 만들었던 우유니 소금 사막을 눈앞에 두었지만, 나는 우유니 사막을 가슴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내 마음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설렐 힘도 남아나지 않았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고통스러운 이 현실에서 나를 꺼내주기만을 바랐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래 속에서 발버둥 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으로 남은 계획을 억지로 강행하고 싶지 않았다. 영혼 없이 질질 끌려간 채로 여행을 할 바엔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결국, 귀국을 하기로 했다. 나는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여행할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게 부질없고, 의미 없어 보였다. 그토록 원했던 우유니 사막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행 비행기편을 알아보던 중에 부모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부모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응원해주는 존재였다.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모습에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해할지 자연스레 떠올랐다. 지옥같은 마음에서 꺼내달라고 부모님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토로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가까운 은사님에게 사실을 전했다.
"은사님, 제가 세계일주 중에서도 가장 바랐던 우유니 사막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앞으로 우유니 사막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은사님이 생각났어요."
나는 훌쩍이느라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은사님은 잠시 나를 기다린 뒤 차분히 말했다.
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제자야. 슬픔조차도 네게 찬란하구나.
지나간다. 지나가. 그건 너에게 있지 않아. 지나간다. 지나가. 이미 지나가고 있어. 오늘의 슬픔이야. 내일의 슬픔은 될 수 없어.
너는 아직 길 위에 있잖아.
여정이 언제 끝날지 결정하는 것은 너지만
그동안의 여정이 기쁘고 즐거운 수많은 순간들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여정의 끝에 뒤돌아 보았을 때
너의 여정 중 찬란하지 않았던 순간들은 지금 없을 거야.
이것 또한 마찬가지야.
자신에 대한 분함과 원망을 안고 보는 우유니는 어떤 모습인지,
너 자신에게 보여줘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이것 또한 지나가리.
원망과 분노를 가지고 악을 쓰고 가서
네게 우유니를 선물해 줘.
그것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은사님의 말을 들으니 약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거세게 뺨을 타고 흘렀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우유니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추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팠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기로 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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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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