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⑦ : 서아시아에서 종교체험하기
이전에 여행한 다른 서아시아 국가처럼 중동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뿜었다. 살곁을 스치는 바람, 여유를 품은 사람들, 우뚝 선 나무, 설탕 가루가 묻은 빵 결의 촉감, 거리 위 울리는 종소리까지. 이스라엘 거리는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올드시티 투어를 들으며 예루살렘 거리를 자세히 관찰했다. 거리 곳곳에 있는 벽화와 전시품은 거리를 한층 예술적으로 만들었다.
"현대 미술에서 나아가 예루살렘은 수천 년의 종교, 문화, 정치, 전쟁 역사가 쌓인 유산입니다."
가이드 설명을 따라 도시를 둘러보니, 상업 공간이 얽혀 형성된 골목 사이로 좁은 돌길이 나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시장에서 상인들은 각종 향신료와 전통 음식을 팔고 있었다. 붉은 보랏빛부터 연한 노란색까지 다채로운 향신료는 은은한 냄새로 시장에 퍼졌다. 시장 벽은 현대 예술 색채로 수 놓이고, 거리는 버스커들의 선율이 평화롭게 퍼져나갔다. 현대의 미와 함께 역사를 품은 예루살렘 거리는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이전 시대 사람들을 상상했다. 거리가 품은 매력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과거로 이어진다는 감각, 지난 이들의 삶을 되짚는 사색이 걷는 행위만으로도 자연히 이루어졌다. 역사를 품은 도시는 삶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었다.
투어가 끝난 뒤에도 거리를 음미했다. 봄과 여름 사이의 경계를 걷는 기분이었다. 한참 산책을 즐기다 예루살렘 호스트, 다니엘과 저녁을 먹었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땅을 얻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이스라엘인인 다니엘은 본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녀 모두에게 징병제를 운영하는 이스라엘 아래에서 시민들은 만 18세가 되면 군 복무를 한다. 다니엘도 군대를 다녀왔다. 그의 군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분단 아래 징병제를 실시하는 한국 모습이 스쳤다.
"한국도 여전히 북한과 전쟁 중이야. 엄밀히 말하면 휴전 상태이지만, 여전히 갈등 중이지."
다니엘은 한국도 여전히 전쟁 중인지 몰랐다며 놀란 눈으로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예루살렘은 위험하지 않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야."
우린 자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국 상황에 본인 삶에 끼친 영향을 나눴다. 이스라엘의 평화 위에서 거리는 흥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난 예루살렘이 주는 힘을 느끼며 거리 모든 요소와 사랑에 빠졌다.
'와,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을까?'
이 거리, 이 낭만, 이 분위기, 이 온도, 이 날씨, 이 냄새까지. 예루살렘 거리를 이루는 모든 요소는 내 동체를 가볍게 해 주어 내가 하늘 위를 날게 해 줄 것만 같았다.
"다니엘! 나 이스라엘에서 살고 싶어!"
흥분한 내 말에 다니엘은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침 햇살에 눈뜨니 온기는 푹신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햇살은 창문틀 사이로 살포시 내려앉아있었다. 영화 작은 아씨들에 나올 듯한 다락방은 안락하고 따뜻했다. 아침에 눈을 뜬다는 사실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공기였다.
"다니엘, 좋은 아침!"
다니엘은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를 따라 테라스 의자에 앉으니 그는 식탁 위 화분의 잎사귀를 뜯어 차를 우려냈다.
"우와! 차를 생산하고 있었네!"
다니엘은 능청스레 웃으며 수제초콜릿을 건넸다.
"직접 만든 거야. 아침 여유를 즐기자."
햇살이 드는 조그만 테라스, 화분에서 갓 나온 차의 온기, 수제초콜릿의 달달함까지 어우러졌다. 예루살렘의 아침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들었다.
아담하며 작은 행복은 그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이 풍족했다.
이스라엘에서의 시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화창한 날씨, 유쾌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까지. 길 위에는 조그만 기타 연주자가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며 보인 그의 여유를 내 삶에 녹여내고 싶었다.
'이곳에서 머물고 싶다.'
세계일주 중 처음으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싼 물가를 제외하면 살고 싶게 하는 모든 요인을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 공기에 행복 원소가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물론, 길거리에 핀 꽃마저도 유럽과 닮은 이스라엘. 모든 거리에 사랑이 넘쳐 보였다. 나는 이스라엘이 가진 공기를 흠뻑 음미했다.
'이스라엘을 즐겼으니, 본격적으로 버킷리스트를 해볼까.'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⑦ : 중동(서아시아)에서 여러 가지 종교문화 체험해 보기
예루살렘을 찾은 이유는 종교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공존한 독특한 도시이다.
이스라엘을 떠올릴 때 흔히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많이 떠올린다.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수백만명의 기독교인이 찾아 성지 순례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공간이 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땅으로 솔로몬 성전이 있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이다. 동시에 무슬림에게도 뜻깊은 장소이다. 메카, 메디나 다음으로 이슬람에서 거룩한 장소는 알 아크사 사원은 예루살렘에 있다.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 아크사에서 승천을 경험했다. 루마니아 정교회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루마니아 정교회 신자들에게 이스라엘은 중요한 성지 순례지이며 예루살렘 정교회와도 밀접한 연결이 있다.
같은 공간에서 종교가 저마다 뚜렷하게 공존하고 있는 예루살렘. 다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이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여러 종교를 체험하며 '공존'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스라엘에 오기 전, 나는 이스라엘인 모두가 뼛속까지 유대교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는 초정통파 유대교 모습으로 머릿속에 가득 채워있었다. 나는 모두가 열렬히 유대교를 믿고, 종교에 진심인 국가라고 생각했다.
"부분적 유대인도 있어. 쉽게 생각하면, 기도하러 갔다가 옷 갈아입고 종교인한테 허락 안된 바다에 가는 사람을 생각하면 돼."
여행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는 말했다. 그는 유대교로 이스라엘 국적을 얻어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 여행하며 초정통파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가 벗겨졌다. 유대교에서도 종류가 있었다. 완전 종교인, 세미 종교인, 무종교인, 전통인. 신실하지 않은 유대인 모습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여행하며 만난 무슬림 친구들이 클럽에서 술을 마실 때 느낀 충격과 같았다. 종교가 감추지 못한 인간의 본능, 종교적 교리를 해석하는 인간의 모순, 삶을 이루는 고통과 탐욕, 쾌락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에서의 종교적 체험은 이 외에도 다양한 물음과 감정을 남겼다.
유대인들이 기도하며 모이는 가장 신성한 장소인 통곡의 벽. 이곳은 성전이 무너진 것을 슬퍼하며 유대인이 오랫동안 벽 앞에서 눈물로 기도했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오늘날에도 유대인은 메시아가 와서 성전이 다시 세워진 날을 기다리며 기도를 올린다.
구역은 정통 유대교 관습으로 남녀가 구분되었다. 유대인들은 기도문을 웅얼거리고, 통곡하듯 기도하고 있었다. 말씀을 얼굴에 박은채 기도해 심취해 있었다. 통곡의 벽 귀퉁이에 자리 잡아 사람들을 관찰했다. 거의 눈물 흘릴 듯이 온전히 기도에 심취한 이들을 보며 문득 인도에서 본 힌두교인이 떠올랐다. 북을 치고 방울을 울리며 열성적으로 기도하던 힌두인모습이 선명했다. 힌두교인을 보며 느낀 감정은 통곡의 벽 앞의 기도하는 유대인 모습에서 느낀 것과 확연히 달랐다. 힌두교인에게는 조금의 거리감을 있었지만, 유대인을 보고는 익숙한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확실히 기독교에 노출되어 왔구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자연스레 노출된 종교 문화가 나의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환경이 익숙함과 낯섦을 만들어 나의 선호도를 형성해 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실제 교회에 가서 예배를 지켜보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왔다.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종의 마음이 씻겨내리는 감정이 들었다. 오르간 선율과 감미로운 찬양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른 눈물의 의미를 곱씹었다. 동시에 종교 경계를 뛰어넘는 인간 본성을 생각했다.
인도 힌두교 자이나교, 티베트 불교, 기독교 유대교... 인간이 얼마나 갈구하고 소망하는지, 무언가를 바라고 찬양하는 존재인지.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꼈다.
종교 체험을 하며 모순적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알 아크사 사원에 갔을 때였다. 무슬림 3대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바위 돔)의 황금색 돔은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초록과 파란색의 타일 무늬는 정교함으로 현란하게 빛났다. 화려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는 성지의 신성함을 더했다. 종교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도 이들을 둘러싼 갈등이 느껴졌다. 바위 돔을 지나는 행인을 이스라엘 군인이 에워싸고 있으며 검은 양복의 초정통파 유대인도 사원 앞을 조심스레 지나갔다. 평화를 외치는 종교, 그중에서도 종교적 성지에는 갈색 군복의 군인들이 행인을 둘러싸 이동하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분쟁의 위험이, 여전히 갈등의 요소가 남아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자파게이트(Jaffa Gate)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어디인지 아시나요?"
갈등을 느끼며 바위 돔을 나오던 중 행인에게 물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같이 갈래?"
한 남자는 본인을 이합이라 소개했다. 그는 기독교 성지순례 가이드라며 미국에서 온 기독교 단체에게 예수의 길 가이드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예수의 길을 함께 걸으며 이합과 이야기 나눴다. 그는 말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을 말해줄게."
이합은 휴대폰의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폭탄과 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잿빛으로 가득한 길 위에서 포탄 연기가 피어올랐다. 서로 죽고 죽이는 영상을 보며 나는 멍한 시선으로 충격에 빠졌다. 이합은 말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1시간도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서는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
예루살렘에서 불과 1시간 떨어진 곳에서 팔레스타인(당시 하마스 중심 전환 전)과 이스라엘이 싸우고 있었다.
"이건 불과 어제 발생한 일이야"
아름답고 날씨가 좋기만 한 이스라엘에서,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분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니.
아름다운 이곳에서 불과 몇 km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다니. 나는 충격에 휩싸인 채 말했다.
"이스라엘 친구네 집에서 머물고 있는데, 친구들은 싸움에 대해 일절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너에게 절대로 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거야.”
이합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누구나 진실을 알고 있지만, 모른척하기 바쁘니까."
이합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리를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날아가고 싶을 정도로 행복한 거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서는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니.
"진실은 침묵되고 있고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으니까."
붉은 피로 범벅된 영상을 보면서 문득 이스라엘 호스트 다니엘의 말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은 강한 나라이니까."
"우린 이곳을 지켜야 하니까."
"우린 그냥 중동국가랑 완전히 다른 곳이야."
다니엘이 무심코 흘린 말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비로소 나는 이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합에게 물었다.
"이합,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야?"
"나는 이스라엘인이 아니야.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땅이라는 뜻이야. 나는 여기서 태어났기에 여기서 사는 것뿐이야. 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곳에 태어난 기독교인이야."
그는 이어서 대답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이스라엘 건국 전에 이 땅에 태어났어. 그럼 우리 할아버지를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이스라엘인이 아니라는 걸까?"
국적을 언제나 '국가'라는 틀에서만 바라본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두 번째 충격에 빠졌다. 어떠한 국가 소속도 아닌 '기독교인'으로 본인을 소개한다는 그의 말은 내게 낯설고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한 문장은 나의 시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동시에 물음표를 던졌다.
인간의 범위는 무엇일까, 국가는 어디까지 인간을 대표할 수 있을까, 영토, 종교, 소유란 무엇일까,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 본질적인 걸까...
수많은 물음들에 혼란스러워하며 예수의 길을 나왔다. 연한 갈색의 담벼락 모퉁이를 돌던 중에 두 명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내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 너는?"
"우린 팔레스타인에서 왔어요."
이스라엘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만난 순간이었다.
"우리 집은 팔레스타인에 있어요. 여기서 5분도 안 걸려요."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담벼락 뒤편을 가리켰다. 나는 분명히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서 있었지만, 아이들은 저편이 팔레스타인이라 말했다. 우리는 같은 땅 위에 있지만, 다른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땅을 부르는 이름에서 오랜 기간의 상처가 느껴졌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예루살렘 거리를 다시 걸었다. 이합이 보여준 동영상의 잔재가 남아있어서일까 아름답게만 보였던 예루살렘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감춰진 세상의 아름다움 속에서 숨길 수 없는 갈등이 조금씩 엿보였다.
거리는 생기 넘치고, 하늘은 화창하며, 도시는 여전히 오래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예루살렘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스워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이 땅 위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의 이름으로 영토를 얻고자 싸우고 있었고, 여전히 전쟁의 위험이 거리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걸었다. 유대인 구역, 기독교인 구역, 무슬림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네 구역이 나뉜 곳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구역이 구분된다는 게 단순히 공간을 의미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공기와 정서, 말투와 눈빛, 진열된 기념품 종류까지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서로를 구분 짓는 경계로 작용했다.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기억의 경계였다. 불과 몇 걸음을 걸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 온 기분이었다. 액체 속에 잉크가 확산되는 게 아니라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다른 성질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불과 몇 걸음 걸으면 서로를 적대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종교의 차이로, 문화의 차이가, 삶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가 생기고 차이가 차별로 변하며 서로 분쟁과 전쟁을 만들었다. 긴장을 놓지 않는 삶을 만들어왔다. 대부분의 종교는 평화를 추구하지만 종교로 인해 평화를 잃게 되는 아이러니였다. 얽히고설켜 단순히 규정할 수 없는 아이러니 앞에서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공존
1.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함.
2.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
난 이스라엘이 말하는 '공존'의 의미가 결코 두 번째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위태롭게 함께 존재했다. 그들은 조만간 공존할 수 없듯이 공존했다. 마치 결코 합쳐질 수 없는 물과 기름 위에 곧 점화된 기름과 같았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
몇 분 걸음마다 각기 다른 종교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종교가 가까이 맞닿은 사실이 묘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스라엘 아침은 늘 그렇듯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출근한 다니엘 뒤로, 나는 테라스에 앉아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작고 둥근 카파를 쓴 유대교 아이들은 정통 유대교 복장인 검은 양복을 입은 어른들 지도 아래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평생 무슬림 아이들과 만날 수 있을까?'
같은 땅에 있으면서도 아이들은 다른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종교적 믿음으로 굳건히 살아갔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들은 아슬아슬한 줄타리 기하듯 '공존'해 살아갔다.
하루는 사해를 찾았다. 사해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과 요르단 국경에 있다. 염분 농도가 높아 생물이 거의 살 수 없기에 죽은 바다로 알려져 사해라 불린다. 높은 염분으로 사해에서는 몸이 물에 둥둥 뜰 수 있다.
사해에 가기 전, 카우치서핑을 통해 동행을 구했다. 우연일까, 팔레스타인에서 왔다는 모타와 무함마드에게 연락이 왔고, 우린 입구에서 만나 사해를 즐겼다. 헤어지는 길에 모타와 무함마드는 말했다.
"예루살렘까지 데려다줄게"
모타 차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사해로 올 때 탔던 버스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는 단 한번 정차 없이 곧장 달려왔지만, 모타의 차는 중간중간 점검을 위해 정차해야 했다. 차가 멈출 때마다 이스라엘 군인이 차창 너머로 안을 잠시 들여다봤다. 창을 올리며 모타가 말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차를 타고 있어서 그래."
팔레스타인 차량으로는 예루살렘에 관광객처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 검문소에서 통과 절차를 받아야 했다. 나 역시 팔레스타인과 함께 있기에 외국인 신분으로 여권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모타는 말했다.
"아까 베들레헴에 갔다 에일랏에 가고 싶다고 했지?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땅이야.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바로 에일랏(이스라엘)으로 갈 수 없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해. 팔레스타인인이라면 예루살렘에서 에일랏 가려면 사해 쪽으로 크게 돌아가야 하지."
나는 비효율적인 교통 체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잔인하며 비상식적인 실상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타는 말했다.
"우린 공항도 없어. 텔아비브로 가기 위해 요르단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해."
불과 한 시간 거리를 팔레스타인인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유로 요르단을 거쳐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게 팔레스타인인들의 현실이야. 이 제도가 얼마나 엿같은지 너도 알겠지?"
복잡한 정치관계가 얽혀 있는 이 상황에서 효율 비효율을 비롯해 팔레스타인인은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모타는 성을 내며 현재 제도가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팔레스타인인의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이스라엘 군인이 곳곳에 무장을 하고 있었다. 두꺼운 잿빛 벽은 무겁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나누고 있었다. 회색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보니 멍한 기분이 들었다. 모타와 무함마드가 지내온 삶을 들으며 팔레스타인인으로 그들이 겪어온 차별을 생생히 느꼈다. 정치는 종교적 차이를 이용해 차이를 차별로 만들었고 차별은 우리의 삶을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이게 만들었다. 모타의 말을 한참 듣던 중에 갑작스레 총소리가 울렸다. 나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머리가 하얘졌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팔레스타인 어린아이가 반항의 의미로 돌을 던졌는데, 이스라엘 군인이 위협하려고 총을 쐈어."
이내 이스라엘 군인이 우리 차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나를 향해 겨누어진 총구에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모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번호판이어서 그래."
무하마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고, 모타는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소리쳤다. 나는 팔레스타인 구역에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분단과 분쟁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실감으로부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타는 이어서 말했다.
"북한과 남한 사이랑 비슷하지?"
생각해 보니 우리도 말도 안 되는 순간을 살고 있었다. 북한으로 갈 수 없기에 육로로 중국에 닿을 수 없고 비행기로 떠나야 하며 바로 옆 동네에 있지만,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구역(DMZ)이 있다. 한국도 남자에게 징병제가 의무로 시간을 바쳐야 했다. 분단국가에 살면서 여러 번 통일, 평화를 말했지만, 실제로 분단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오니, 분단지역이 어떤 갈등을 마주하는지 깊이 이해했다.
우리는 총격사건을 뒤로한 채 예루살렘으로 넘어갔다. 담벼락 하나를 지나기 위해 도로를 멀리 돌아가야 했고, 총기 위협을 받고, 신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씁쓸히 웃는 것뿐이었다. 모타와 무함마드를 따라 무슬림 사원(바위돔)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종교를 이유로 영토를 얻고자 싸우고, 여전히 전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제 예루살렘에서 한 시간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10명이 죽었어."
예루살렘 거리는 추모 분위기로 가라앉아 있었다. 팔레스타인 구역에서 발생한 참사를 애도하기 위해 올드시티의 모든 무슬림 상점이 문을 닫았다. 히잡을 쓴 무슬림은 코란을 외우며 허망한 듯 문턱에 앉아 있었다. 그 옆을 검고 긴 외투인 베케셔를 입은 유대인이 지나갔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신의 이름으로 땅을 차지하려는 갈등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고 누구를 위한 평화를 말하고 있을까.
종교는 삶의 정체성과 방향을 제시하며 역사적 정체성을 발견해 단단한 귀속감을 주지만, 동시에 나와 타자를 구분해 차별을 만들었다. 종교적, 문화적 차이가 빚어낸 모순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우린 공존 속에서 불공존했다. 예루살렘에서 본 것은 단지 종교나 정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속엔 인간이 가진 끝없는 욕망과 두려움이 있었다. 종교를 이유로 일어난 갈등은 종교가 아닌, 종교를 해석한 이용한 이들의 문제였다. 예루살렘을 떠나면서까지 나는 물과 기름 속 기름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흑과 백으로 갈라진 도시 모습 앞에서 생각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편한 물음은 계속 마주하는 것이다.
종교, 정체성, 권력, 경계, 공존, 평화에 관한 깊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우린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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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