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③⑧-④ⓞ: 파리 밤거리/에펠탑/루브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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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불빛이 노랗게 번지는 한밤 중. 추적추적 얇은 비가 내린다. 얇은 빗방울을 비추는 아늑한 가로등 아래, 두 남녀가 걸어간다. 에펠탑을 시야로 골목을 지나 센 강이 흐르는 다리 위를 건넌다. 연인은 낭만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사랑예 빠진 눈빛은 이내 파리 거리로 전환되어 영화 엔딩을 장식한다. 엔딩 막이 내린 뒤, 검정 화면 너머 내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운 센 강의 모습을 보며 내 눈동자는 동경으로 반짝였다. 반짝임은 이내 파리의 모든 낭만을 흡수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글거렸다. 그 순간 내 전부는 오로지 파리가 품은 낭만이었다. 영화, 음반, 문학 ···. 모든 곳에서 낭만을 찾을 수 있는 프랑스 파리. 파리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은 나의 오랜 꿈이 되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⑧ : 파리 밤거리 걷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⑨ : 에펠탑에서 사진찍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 : 루브루 박물관에서 작품들 즐기기
벨기에에서 정신없이 파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놓칠세라 급하게 올라서인지, 몇 시간 뒤면 파리에 도착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미디어를 통해 본 파리는 수없는 낭만이미지로 수놓였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어느덧 날은 어둑해졌다. 검정색 하늘 아래 파리 풍경이 창가 너머 펼쳐졌다. 파리의 아늑한 가로등을 보자마자 가슴이 다시 뛰었다. 동시에 긴장감이 들었다.
'파리 소매치기', '파리 절도범'
파리 여행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다. 특히 관광객이 지하철에서 사기 당하는 영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파리 호스트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했다. 잔뜩 긴장한 채 버스에서 내리는데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나도 일이 방금 끝나서 마침 주변이야. 자전거로 데리러 갈게."
파리 호스트는 버스정류장 밖에서 나를 맞았다.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는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나는 장기간 버스를 타며 씻지도 못한 채 무거운 배낭을 앞뒤로 매고 있었다. 허름한 차림은 말끔한 그의 모습과 대비됐지만 파리에 왔다는 사실에 온 신경이 쏠렸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맨 채로 자전거에 탔다. 묵직한 무게가 덜컹거리며 자전거에서 중심을 잡으니 호스트는 페달을 밟았다. 거리 사이로 노란색 불빛이 길을 감싸고 있었다. 균형잡힌 창문 너머로 비치는 실루엣,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밤공기를 음미하는 사람들. 파리 거리를 채운 불빛은 마치 오랜 유럽 영화 속 장면을 연출했다. 무거운 배낭과 무게 중심을 맞추기 위해 호스트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가 자전거 페달이 밟는 움직임에 맞춰 밤공기가 내 얼굴을 스쳤다. 공기와 어우러진 내 숨결은 달콤한 냄새가 났다.
'내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파리에 왔구나!'
석조 건물은 고풍스럽게 도로를 감싸고, 우아한 외관은 세월의 결을 선명히 드러냈다. 자전거가 방향을 바꾸자 샹젤리제 거리가 나왔다. 고급 부티크와 대형 매장은 거리를 빼곡히 채운 채, 화려한 쇼윈도 너머로 내게 인사했다.
"샹젤리제!"
나는 거리마다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호스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짐 놓고 거리 구경갈래?"
호스트는 본인이 일하는 기차역으로 나를 데려갔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사람은 없었다. 우린 스파이처럼 잠입하듯이 은밀하게 사무실로 들어갔다. 호스트를 따라 계단에 올라가니 기차역 옥상이 나왔다. 시계는 부식된 철제 프레임으로 반원 모양이었다. 오랜 시간의 파리를 품은 듯 시곗바늘을 움직였다. 시곗바늘 앞에 서니 파리 야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석조 건물을 따라 은은하게 번진 노란 가로등, 포도주처럼 우아하게 퍼져있는 붉은 조명, 은은하게 퍼진 초록빛이 도시 전역을 채웠다. 거리를 누비는 차량 불빛은 별무리처럼 바닥 위에 수놓였다. 불빛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은은하게 내뿜었다.
파리 야경을 바라보니, 심장이 미치도록 뛰었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잡으며 에펠탑을 바라봤다. 에펠탑은 밤의 수놓은 불빛 향연 사이로 우뚝 서있었다. 검푸른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존재했다. 붉은 지붕을 가진 고전적 건물 사이로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였다. 조명은 고요하게 성당을 감싸 앉았다. 눈앞에 펼쳐진 전경은 '파리'라는 두 글자로 모든 게 설명됐다. 한 폭의 그림같은 야경을 보며 나는 말했다.
"내 버킷리스트이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에펠탑이 내 눈앞에 있어! 세계가 원하는 도시, 파리에 지금 내가 있고, 이 아름다운 파리 야경을 음미하며 있어."
거리에서 경적 소리와 낮게 웃음 짓는 목소리와 들렸다. 도시를 이루는 소리가 얽히며 부드럽게 들렸다. 모든 소리가 내게 부드럽게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파리의 첫날 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을.
다음날, 호스트 제안으로 파리 곳곳을 구경했다. 첫 날 파리에 왔을 때의 설렘처럼, 호스트 자전거에 올라탔다. 바퀴가 돌아가며 파리 거리에 가득한 햇살을 음미했다. 화창함 그 이상으로 빛나는 햇살은 파리 아침을 채웠다. 맑고 투명한 하늘 위로 흰색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호스트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의 콧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음미했다. 도로 양옆으로 간격이 넓게 벌어진 채, 커다란 가로수가 늘어섰다. 나무의 짙은 녹음과 함께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어우러져 있었다. 철제 발코니로 서로 어깨를 맞댄 건물 아래는 세련된 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파리지앵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한껏 여유를 품은 대화로 웃음 짓고 있었다. 거리 자체가 예술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여유가 좋다. 한껏 여유를 머금은 파리의 아침이 좋다.'
파리의 모든 거리는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센 강변을 따라 유람선의 엔진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다리 위를 지나던 경보음은 점점 커지다 멀어지며 물살 소리로 사라졌다. 햇살은 강물 위에 빛나는 윤슬을 만들어 반짝였다. 강변에 늘어선 가로수 잎사귀는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호스트와 나는 센 강변에 자리를 잡았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나는 호스트에게 물었다.
"나에게 삶에 대해 조언해줄래?"
"네가 스스로 무엇을 준비할지 결정하고, 너의 스킬과 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긍정적으로 준비해. 너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해. 너 주위의 사람들, 너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선택해."
호스트는 프랑스 특유의 섹시하면서도 엉성한 발음으로 말했다.
"데이지 너는 어떤 조언을 해줄래?"
나는 고민하다 이집트에서 겪었던 카메라 도난 사건을 말했다. 그는 문장 끝마다 깊이 공감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나는 말했다.
"도난 사건으로 나는 다시 기억했어.삶은 총량의 법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쁜 일 뒤엔 좋은 일이 분명히 생길 거란 걸. 그렇기에 황홀할 정도로 행복한 순간에도 지나가고 비참할 정도로 슬픈 순간도 지나간다는 걸 명심해."
대화는 강물 소리와 섞여 부드럽게 퍼졌다. 멀리서 샹젤리에의 낭만적 선율이 들렸다. 모든 풍경과 소리를 한껏 음미하며, 파리 낭만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대화가 무르익어갈 즈음, 호스트는 말했다.
"그럼 우리, 에펠탑 보러갈까?"
호스트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철로 된 에펠탑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냈다. 이내 에펠탑이 눈 앞에 가까워지니 심장이 미치도록 뛰었다.
'내가 기어코 에펠탑에 왔구나.'
거대한 철제 기둥 아래에 서니,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느낌이 밀려왔다. 동시에 파리의 모든 섬세함을 흡수한 듯 부드럽고 우아한 자태를 뿜었다. 우아함의 일부를 잡고 싶은 관광객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에펠탑 앞에서 펼쳐지는 사기극, 여행객은 지겹다는 듯 무표정으로 지나가는 파리지앵들까지 에펠탑을 이루었다.
나 또한 파리의 우아함을 사진에 담았다. 셔터 소리가 파리 공기에 녹아드는 순간, 그 순간은 파리의 온 공기가 내 몸을 감싸 안은 듯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간을 이루는 모든 숨결을 음미했다.
"내가 에펠탑에 왔다니! 여기가 에펠탑이야!"
에펠탑의 여운도 잠시, 파리 명소를 따라 걸으며 수많은 걸작을 감상했다. 루브루 박물관, 판테온, 피카소 뮤지엄 등을 구경하며 작품이 품은 우아함에 매료됐다. 각 작품은 연극 무대의 한 장면처럼 생생히 펼쳐졌다. 작품을 감상하며 자연이 예술의 영감이 되고, 예술이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든다는 진리를 새삼 느꼈다. 나는 표현주의의 강렬한 붓터치를 보며 마음 속 감정이 일어났고 어린 남자아이가 장난치는 듯한 그림에 미소지었다. 야수주의적인 그림, 봄을 그린 산뜻함과 젊은이의 관능적 모습을 나타낸 그림까지 다양한 작품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나는 온전하게 꽉 채워지지못한 작품을 보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고, 수없이 덧칠된 인상주의 작품의 조심스러운 붓놀림에 울컥함을 느꼈다. 불완전함을 미워하지 않고 세부 요소를 진실되게 그린 작품은 오래도록 내게 울림을 남겼다. 섬세한 순간을 포착한 작가들의 숨결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졌다.
예술을 통해 참된 진리를 찾는 인간. 참된 순수를 갈망하는 인간.
예술가들은 폭력적이고 과감한 표현을 통해 '당신을 아름답다고 말할 용기를 주었어요.'라고 속삭였다, 그들 작품 앞에서 나는 홀로 상상력을 펼쳤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느꼈다. 그림 속 상상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나는 깊은 행복을 느꼈다.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었다.
하늘은 서서히 붉게 번졌다. 해가 지면서 파리의 하늘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도시 실루엣은 한층 낭만을 더했다. 낮과 밤의 경계에 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느꼈다.
온화하리만큼 선선한 저녁 바람이 살곁을 스쳤다. 은은하게 퍼지는 이 공기가 감사했다. 공원을 가득채운 물 냄새가,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간직하는 모습이, 순간을 이룬 모든 요소가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어릴 적 꿈꿨던 순간의 한가운데에서 있는 순간. 두팔벌려 순간을 사랑하는 지금이 좋다. 나는 흐려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메모장을 켰다. 파리의 순간을 흐르는 생각과 감정을 담아 글을 적었다.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의 감사함을 알려준다. 이 순간의 바람 내음새를 맞는 법을, 이 순간의 공기와 뽀뽀하는 법을, 이 순간의 가로등 불이 켜지는 걸 만끽하는 법을, 순간의 감사함에 눈물 흘리는 법을, 잠시 멈추어 쉬는 법을, 그리고 다시 나아가게 하는 법을.
그동안 꿈꿔왔던 순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가 지금 내 한가운데에 있고 나는 세계를 향해 사랑을 외치고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 피부에 닿는 햇살의 온도, 귓가를 감싸는 거리의 소음, 코에 스며드는 냄새까지.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모든걸 사랑했다.
파리의 꿈. (Paris Dream)
파리에서 성공과 꿈을 위해 찾아온 이들로 생긴 단어이다.
예술과 문화, 패션의 심장부로 전 세계 많은 이에게 꿈의 도시로 자리 잡은 파리. 그 이면에는 악취와 테러, 폭력이 공존한다.
많은 이들은 파리 드림을 꿈꾸며 파리에 오지만,
그만큼 실망과 상처를 안고 돌아가기도 한다.
파리에 가기 전,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을 따라
나는 기대 한 줌 없이 파리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파리는 내게 한치의 양보도 없이 낭만을 가져다줬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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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