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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I 와플먹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② : 벨기에에서 완전 맛있는 와플먹기

by 여행가 데이지



Screenshot 2025-09-02 at 8.26.19 AM.png 벨기에 방송인 줄리안


어린 시절에 즐겨 봤던 티비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벨기에 방송인인 줄리안의 집을 찾아간 에피소드를 보며 벨기에라는 국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방송을 통해 각인된 벨기에 이미지는 줄리안이라는 사람의 인상에서 만들어졌다. 출연진들은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와플을 먹었다. 어두컴컴한 밤거리 위의 와플이 어찌나 낭만적이게 보이던지. 벨기에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떤 국가인지도 몰랐지만, 그 밤거리 온도는 선명히 각인됐다. 그 뒤로 막연히 벨기에 와플을 먹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④②  : 벨기에에서 완전 맛있는 와플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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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거리


버스에 내려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거리에 발을 디디니 막연히 상상에만 존재하던 벨기에에 있다는 게 실감났다. 브뤼셀 거리의 흰색 건물은 화이트 초콜릿처럼 매끈하고 눈부셨다. 거리는 앳되고 장난스러운 젊은이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낯설면서 유쾌한 공기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서니, 중국풍의 장식과 구조물이 보였다. 이내 유럽식 디자인의 노란 지하철이 소란스레 노래와 함께 들어왔다. 기묘한 조화와 낯선 소란이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벨기에만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데이지 어서와!"


벨기에 호스트는 말괄량이 같은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그의 활발한 에너지 덕분일까, 벨기에 거리로 나서는 발걸음이 들떴다. 장난기 가득한 소년이 손에 꼭 쥘 법한 초콜릿처럼, 브뤼셀 거리는 통통튀는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의 골목마다 흰색 가게들이 리듬을 타듯 뒤섞였다. 호스트는 거리 곳곳에 있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인 빅토르 오르따가 설계한 건물을 소개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축물들은 철과 유리를 활용해 지어졌다. 호스트는 건축물의 곡선미를 자랑스레 소개하며 물었다.


"데이지, 벨기에에 온 이유가 뭐야? 하고 싶은거 있어?"


"사실 벨기에 와플이 먹고 싶어서 왔어. 벨기에 와플로 벨기에를 알게됐거든."


호스트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오로지 벨기에 와플을 위해서 이곳에 오다니! 내가 브뤼셀에서 가장 맛있는 와플집을 알고있어. 조금 있다 같이 가자!"






20230930_090803.jpg 브뤼셀 호스트와 함께한 아침



다음날 아침, 부엌 문틈 사이로 달달한 와플과 옅은 커피향이 났다. 고소하게 퍼지는 버터 향과 함께 호스트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


호스트는 식탁 위에 갓 해동한 와플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아침 공기는 포근하게 식탁을 감싸며, 와플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부드럽게 스쳤다.


"우와 와플이네! 벨기에 와플!"


호스트는 고작 슈퍼에서 사 온 와플을 해동한거라며 별거 아닌듯 웃었다. 갑작스레 만난 호스트 친구로 어제 와플집에 가지 못했는데 마음 한켠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호스트 마음이 와플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듯 햇다. 커피 향과 어우러진 와플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우린 달콤한 와플을 음미하며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와플을 한입 베어물며 호스트에게 물었다.


"너에게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뭐야?"


"호기심이야. 나는 사람이나 세계, 전통, 그리고 다른 시간 속 각자의 삶이 너무 궁금해!"


호스트는 올해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어린 소녀의 미소로 순수하고 반짝였다. 커다란 입으로 치아를 드러내는 장난스러운 웃음은 나이를 불문해 호기심과 생기 넘치는 마음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문득 호스트 나이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별로 궁금한게 없어.", "나이가 들었으니, 딱히 알고 싶은건 없네"


그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호기심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말했다. 마치 호기심을 젊음의 전유물로 여겼다. 하지만 호스트의 밝고 환한 미소는 끝없는 호기심을 보여줬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변명 삼아 호기심의 몰락을 정당화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삶과 사람,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했다. 그의 꼬불꼬불하고 붉은 머리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장난기 어린 말투와 표정은 마치 빨간 머리 앤을 연상시켰다. 그의 웃음 하나하나가 생기넘쳐 이 마음도 따뜻하게 했다.


"데이지, 너에게 이 조언을 해주고 싶어. 데이지 네가 하고 있는 일들이지만, 언급할게"


아침 식사가 끝나갈 무렵, 마냥 새파랗게 미소짓던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가져. 수많은 사람들은 낯선 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그렇지만, 그들은 위험하지 않아. 새로운 사람 만나는 기회를 놓치는 거야."


그의 조언을 곱씹으며 마지막 남은 와플 조각을 들어올렸다. 와플은 가장자리가 식었지만, 여전히 달콤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와플의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자, 그의 말이 마음 속에 함께 녹는 듯 했다. 나는 감사를 전하며 말했다.


"내가 먹은 와플 중 가장 맛있는거 같아. 아마도, 우리가 나눈 소중한 아침이 와플을 더 달콤하게 만드나 봐."


벨기에 와플은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었다. 동경으로 감싸진 와플을 먹는 순간에서, 내 앞의 와플은 유명한 가게에서 정성껏 구워진 것도, 소셜미디어에 나올 법한 앙증맞게 꾸며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슈퍼에서 사온 와플을 데워낸 와플이어도 내 혀를 달달하게 녹였다. 단순히 맛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나눈 식탁, 벨기에 아침 공기, 함께 나누며 웃는 순간이 있기에 어떤 와플보다 풍성하고 달콤했다. 호스트는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오늘 벨기에 떠나기 전에 내가 추천한 와플집에 꼭 가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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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브뤼셀 이곳 저곳을 구경하며







정신없이 브뤼셀를 구경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프랑스 파리행 버스에 올랐다.


"파리행 버스가 맞나요?"


대충 맨 가방에 행여 버스를 놓칠세라 뛰느라 어깨가 무거워졌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으니, 문득 호스트 추천 와플집에 가지 못한 사실이 떠올라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벨기에를 떠나기 전, 정식으로 판매하는 와플을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버킷리스트에 대한 최소한 노력의 약속이었다. 버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근처 빵집에서 와플을 집어들고 버스로 달려갔다. 포장지 한장에 겨우 싸인 와플은 장식하나 없이 식어있었다. 와플을 한입 베어무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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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벨기에 와플인데...'


벨기에 거리에서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와플 먹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혀닐은 허겁지겁 오른 버스에서 땀범벅된 얼굴로 먹는 종이 봉투에 구겨진 와플을 먹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이 행복했다. 호스트와 함께 나눈 아침 식탁의 와플도, 지금 먹는 식은 와플도,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벨기에 와플이 아니었지만, 돌발적인 순간들 은 더 생생하고 특별하게 남았다.


와플은 식은지 오래 됐는지 눅눅했다. 기대하던 바삭하고 부드러운 촉감은 커녕 축축하고 텁텁한 밀가루 맛이었다. 하지만 씹을수록 안도감을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순간이 인생과 닮았구나.

간절히 바라던 와플이지만 허겁지겁 먹는 순간처럼

계획해도 결국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들,

그렇기에 인생이 참 달고, 신난다.


차창 너머로 브뤼셀이 조금씩 멀어졌다. 어찌저찌 오른 파리행 버스, 창문 너머 햇살을 오후 어스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느덧, 세계일주 217일이었다. 돈도 빠듯해지고, 예측불가능한 고비도 뒤따랐지만, 여전히 행복했다. 내가 느끼고, 사랑하고, 숨쉬는 이 순간들이 나의 아픈 부분을 품고도 흘러 넘쳤다. 벨기에에서 먹은 와플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였다. 나는 식어 차가워진 와플을 먹으며 일기장을 펼쳤다.


호스트와 먹은 벨기에 와플은 따뜻했지만, 떠나면서 먹은 벨기에 와플은 차가웠다.
두 와플 모두 내가 상상한 장면이 아니었지만, 두 순간 모두 행복했다.

앞으로 버킷리스트도 잘 마무리해야지.
아프리카가 무지 감이 안잡힌다.. 돈도 떨어져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치만, 나는 잘 해낼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는 누구보다도 대단한 사람이니까!

후에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계를 보여줘야지. 꿈꾸게 해야지.
그리고, 무사히 돌아와 우리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해야지.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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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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