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 독일에서 소시지와 맥주 맛있게 먹기
나는 어김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리모컨을 돌렸다.
"또 봐?"
"재밌잖아(웃음)"
화면은 여러 국가 외국인이 나와 세계, 사회, 문화를 토론하고 있었다.
나는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적었기에 비정상회담을 보며 세계를 탐험했다. 비정상회담이 방영된 2014년부터 2017년 동안 어김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오늘도 봐?"
"당연하지"
지겨워하는 엄마를 뒤로한 채 텔레비전이 닳도록 봤다. 출연진들의 대사, 제스처는 내게 작지만 강렬한 영향을 줬다.
출연진이 갔던 독일 옥토버 페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독일 소시지를 포크로 찍으니 탐스럽게 육즙이 나왔다. 움켜쥔 1,000cc 잔에서 황금빛 맥주는 거품이 피어올랐다. 맥주 거품에 달아오른 축제 현장은 환호 소리와 흥겨운 음악 소리로 가득했다. 한껏 오른 분위기는 잔향처럼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데이지 세계일주 : 독일에서 소시지와 맥주 맛있게 먹기
독일 옥토버 축제는 원래 뮌헨 왕세자 루이 1세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열렸다.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축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매년 9월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은 바에른주 전통 의상을 입은 채 뮌헨을 찾는다. 사람들은 대형 놀이공원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맥주잔을 부딪힌다. 공식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는 황금빛을 띠고 있다. 놀이기구는 축제 내내 쉴 틈 없이 돌아가고, 공원 곳곳은 전통 복장 퍼레이드와 공연으로 활기가 가득 찬다. 나 역시 유럽 여행 계획부터 옥토버 페스트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조사 결과, 첫날 열리는 퍼레이드가 축제의 꽃을 담당한다 하여 개막일에 맞춰 뮌헨을 찾았다.
옥토버페스트 개막날의 아침, 무릎까지 오는 가죽바지와 멜빵을 입은 남성들, 앞치마 달린 치맛자락과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트램을 타고 놀이공원으로 이동하는 길목부터 들뜬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마치 형제자매가 같은 옷을 맞춰 입은 것처럼, 뮌헨 사람들은 모두 한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은 듯했다. 그들의 설렘은 새 옷을 나란히 입은 가족의 모습처럼 따뜻했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축제장에 도착하니, 입장 시작을 앞두고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저마다 앙증 발랄한 전통 복장을 입은 채 얼굴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누군가는 친구를 발견해 환하게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커다란 입으로 환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대화는 끊임없이 나누며 축제 시작 전 설렘이 가득 채웠다. 축제 거리의 아스팔트 마저 신바람에 들썩이며 춤을 추는 듯했다.
나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옥토버페스트 동행을 구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하나둘씩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장을 기다리며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했다.
"뮌헨엔 처음 왔어?"
"옥토버 페스트는 처음이야?"
한 달 휴가를 받은 멕시코 의사, 스웨덴에서 일하는 콜롬비아 기술자, 독일에서 공부하는 튀르키예 학생까지, 전 세계에서 모인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의 나라와 이름, 각자의 여정을 물었다. 축제의 열기가 우리 사이를 한층 더 가깝게 했다.
"우리는 중국에서 카우치서핑으로 만나서 지금 유럽에서도 계속 만나고 있어."
인도와 콜롬비아 친구는 중국에서 공부할 당시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인연은 유럽에서 일할 때도 이어졌다. 저마다 운명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여행하며 인연을 맺는 건 참 소중한 일이구나.', '여행 속 행복한 순간을 나누고, 서로에 관심을 갖는 건 참 좋은 일이구나.'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 순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사랑의 다른 정의가 아닐까 생각할 찰나였다. 사람들은 개장 1분 전,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미소가 번진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이 모여 숫자를 외쳤다. 점점 줄어드는 숫자에 축제의 기대감이 고조에 달했다.
끼익 끼익. 개장 문이 철장 소리를 내며 열리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축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맥주 텐트의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와아!"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독일 전통옷을 입고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 신난 어린아이의 행진 같았다. 어른이라는 무게에서 벗어나 순수한 아이 시절로 돌아간 그들의 얼굴에 설렘이 어렸다. 말괄량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성인 남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퍼졌다.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이 내게 슬로모션으로 느껴졌다. 그 찰나의 순간, 어른들의 얼굴에 아이 같은 들뜬 마음이 묻어났다. 어른도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이 순간이, 내게 오래도록 남을 장면이라 확신했다.
"셋, 둘, 하나!"
맥주 텐트의 고위 관계자가 망치를 들고 첫 번째 맥주통을 내리쳤다. 마찰음과 함께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외쳤다.
"‘O’zapft is!’ (오자프트 이스!; 맥주가 열렸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동시에 맥주 통이 열리며 축제 시작을 알리는 공식 선언을 축하했다.
"건배!(Prost!)"
건배잔을 부딪힌 소리에 맞추어 독일 전통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노래에 맞추어 발을 구르고, 탁자 위에 올라 노래래를 불렀다. 아직 햇살이 가득한 오전부터 맥주에 취한 이들은 헤벌레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시작부터 최고조에 달한 분위기는 노란색의 맥주를 붉게 물들일 것만 같았다.
"시원하다!"
개막 선언과 동시에 나도 맥주를 한입 들이켰다. 맥주가 혀 위로 흘러들어오면 입안 가득 시원함이 퍼졌다. 혀끝으로 탄산이 터지는 순간, 내가 먹은 맥주 중 최고의 한 모금이었다.
"소시지도 주세요!"
잊지 않고 소시지를 주문하니 곧바로 따뜻한 열기와 함께 나왔다. 쌉싸름한 맥주와 짭짤한 소시지 맛이 어우러졌다. 육즙 가득한 소시지는 독일 맥주 특유 향과 더해졌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도, 축제 내내 옥토버 페스트의 맥주와 사랑에 빠졌다.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에너지, 흥겨운 노랫소리와 푸른 하늘, 기분 좋게 취하는 느낌까지, 축제를 이룬 모든 요소가 맥주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축제 현장의 에너지 자체가 환상의 소스였다.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자리가 바뀌었고, 새로운 얼굴이 매번 나타났다.
"어디서 왔어요?"
"맥주 좋아해요?"
"독일은 어때요?"
"건배! (Prost!)"
시끌벅적한 텐트에서 목소리는 높아졌다. 한껏 목소리를 높이니 분위기에 더 취한 듯했다. 텐트마다 다른 분위기를 체험하며 곳곳을 돌아다녔고, 야외 테이블에 합석해 처음 본 사람들과 건배를 외쳤다. 순간의 인연에 취한 채, 맥주를 마시고 춤추며 이야기 나누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도 가득 찼다.
한창 맥주 축제를 즐기던 중에, 멕시코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데이지, 축제 언제까지 있을 거야?"
이미 놀이공원 안의 맥주 텐트를 한 바퀴 돌았고, 맥주도 충분히 마셨고, 춤과 노래로 흥을 불태운 뒤였다. 하늘은 어느새 고개를 기웃거린 채, 차가운 저녁 공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멕시코 커뮤니티에서 멕시코 독립기념일을 기념해 행사가 있어. 같이 가지 않을래?"
함께했던 카우치서핑 친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맥주 축제에 더 머물고 싶은 이들과 새로운 행사에 흥미를 느낀 이들이었다. 함께 놀면 좋겠지만,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한 명씩 선택을 말하면서,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고민했다. 옥토버 페스트의 흥을 밤까지 누리고 싶지만, 동시에 라틴 축제의 매력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멕시코 축제 가보고 싶어!"
나는 하루 종일 잡고 있던 맥주잔을 내려놓고, 놀이공원을 나왔다. 축제 현장을 나와서도 옥토버 축제의 잔상이 내 귀에 울렸다. 거리에 울려 퍼지던 나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잔을 부딪히는 유리 소리, 건배를 외치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뒤섞였다. 수많은 얼굴과 장면들로 채워진 옥토버 축제의 하루였다.
친구가 제안한 축제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 유학생, 외교관, 문화 단체가 모여 주관하는 독립기념일 행사였다. 강당에 들어서니 소소하게 나들이 온 가족이 대부분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뜨거운 라틴의 열정적 축제를 기대한 나는, 소풍 같은 행사에 실망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옥토버 페스트에서 한껏 흥이 피며 보낸 순간과 대비됐다. 나는 표정을 숨기며 친구에게 물었다.
"멕시코 '축제'라고 하지 않았어?"
"응. 이것도 축제이지."
강당 무대에서는 불룩한 몸통의 멕시코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라틴 음악과 전통 의상, 멕시코 음식이 있는 '축제'를 보며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나는 라틴 문화의 정열로 옥토버 페스트에 버금가는 에너지와 열기를 기대한 축제를 의미했다. 경쾌한 리듬에 맞춰 가수가 양팔을 펼치며 노래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 실망한 채로 강당 바닥에 앉았다.
넓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가수는 콧수염을 실룩이며 노래를 불렀다. 무대를 보며 박수를 치다 보니 실망을 감추던 표정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둥근 단추가 박힌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연주자들이 일정한 박에 맞춰 현을 튕겼다. 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깊숙한 곳에서부터 감정을 묘사했다.
무대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팔과 트럼펫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강당 플리마켓의 수제 타코를 먹던 아이도 벌떡 일어났다. 연주자의 트럼펫 박자에 맞춰 다른 연주 나는 멕시코 전통 악기 비후엘라를 연주했다. 떨리는 관악기는 애절하게 무대를 울렸다. 이내 빨라지는 리듬에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마카레나 노래가 흘러왔다. 경쾌한 라틴 리듬에 맞춰 사람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지친 표정의 엄마도, 진지하게 신문을 읽던 아빠도 일제히 일어났다. 통통 튀는 타틴팝이 맞추어 사람들은 당당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마카레나'라는 구호가 나오자 모두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며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노래 절정부에서 모두는 다 같이 외쳤다. '마카레나!' 강당 안에 있던 모든 이가 한 몸이 되었다.
나도 온 힘을 다해 몸을 흔드느라 관자에 땀이 흘렀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리듬에 맞춰 마카레나를 불렀다. 땀방울이 흐르는 얼굴마다 행복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도 올라간 입꼬리에 눈을 반짝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실망한 기색은 온 데 간 데 없이,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독일 옥토버 페스트 축제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강당 안에 있는,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과 온전히 한 몸이 된 기분이었다. 세계일주 하며 경험한 축제 중, 단연컨대 제일 재밌었던 축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역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축제 여운에 취해서였을까, 결국 나는 역을 잘못 내렸다. 200일 넘는 세계일주에서 역에 잘못 내린 기억이 드물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나 독일 맥주와 소시지, 멕시코 축제에 흠뻑 빠져 있었구나'
어두워진 트램 창가에 내 얼굴이 비쳤다. 축제 흥에 잔뜩 물든 모습이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텔레비전 앞에 앉아 비정상회담을 보는 내 모습이 중첩됐다.
'그 소녀는 훗날 하루 종일 맥주잔 들고 다니며 춤추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웃음이 다시 한번 새어 나왔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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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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