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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다면
친구를 죽여야 했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만난 밀란

by 여행가 데이지


옛 소련은 발트 공화국(프로테스탄트 및 가톨릭), 정교 공화국, 이슬람 공화국으로 갈라졌다.
유고슬라비아는 가톨릭을 믿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이슬람교도가 부분적 세력을 잡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교 인구가 다수를 점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로 갈라졌다.

[문명의 충돌]


Screenshot_2024-12-29_at_3.29.59%E2%80%AFAM.png?type=w773 출처: 브런치, 박필우입니다




한 집단의 인구 팽창은 다른 집단에 의한 민족 청소로 이어졌다.
"우리는 왜 아이들을 죽이는가?"

한 세르비아 전투원은 1992년 이런 질문을 던진 뒤 바로 답변하였다.
"언젠가는 그 아이들이 자랄 것이고
그때 가서도 우리는 어차피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덜 잔인하게,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 당국은
자신들의 거주지가 이슬람교도에 의해
'인구학적으로 점령' 당하는 것을 막고자 나섰다고 주장한다.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중


갈라진 민족과 종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을 만들었다.

복잡하게 얽힌 민족과 종교적 갈등은 수많은 사상자와 아픔을 남겼다.


세르비아에 도착한 순간

불가리아 국경을 넘어 세르비아로 향하는 길.

창문 너머 도로 공사가 한창인 노동자를 바라본다.


조금은 회색 도시같이 느껴지는 세르비아의 첫인상.

지난 보스니아 내전과

공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듯,

곳곳에는 공산주의식

무채색의 동상과 건물이 보인다.

오래된 건물과 잿빛의 건물이

세르비아의 분위기를 더한다.


세르비아 사람을 처음 만나기에 들뜬 마음과 함께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Bata"라는 이와 만난다.


"Bata는 '형님'이라는 닉네임이야.

나는 밀란(Milan)이야."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나무로 된 숲길 깊숙한 곳의 바로 이끈다.

세르비아 야경을 품고 있다.



세르비아 사람을 향한 수많은 호기심은

바에서 머무는 내내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 낸다.


IMG_8148.jpg?type=w773 밀란과 함께 세르비아 맥주를 마시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헝가리에 갔었어.

헝가리가 가솔린이 더 싸거든.

거기서 수입해 온 가솔린을 파는 건 불법이었는데,

나는 트럭 안에 몰래 숨어서 함께 이동하곤 했었지 ···."


"독일에서 살고 싶었기에

가짜 독일인을 찾았어.

그 사람과 서류상으로 결혼을 한 뒤

2년 정도 동거했었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국경에서 경찰이 짐칸을 자세히 볼 때

침을 꼴깍 삼키던 순간을 전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고슬라비아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인 티토의 경호원이었다.

정부 경호원으로 나름 상류층에 속한 그는

2년 동안 가짜 여권으로 유럽을 다녔던 이야기,

독일 생활을 마치고 세르비아로 돌아온 이야기, 등

생생한 역사적 현장의 이야기를 더한다.



발칸반도 국가에 대해

세르비아에 대해

하나도 몰라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밀란은 동유럽 몰락의 순간을 살아온 인물이기에

그가 겪은 유고슬라비아 내의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과 민족 갈등 이야기는

동유럽 몰락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밀란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탐방을 시작한다.

그는 기차를 비유하며 자신의 삶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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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거리의 모습



"나의 삶은 열차와 같아.

기관차가 가지. 한 역에서 몇몇 사람들은 오를 거고, 이후 다른 역에서 내릴 거야.

이후 다른 사람들이 기관차에 오르겠지.

이후 열차는 움직이고, 한 역에서 사람들은 오고 내리지.


삶도 이와 같아.

어떤 순간에서 나는 어떤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는 내 삶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기차에 내리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의 역을 함께하지.

나는 2-3명의 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사람들이 있어."



"'내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은 뭐야?"


"솔직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거지.

내가 무언가 잘못되면 내게 조언해 주고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나는 잘못된 걸 따지지 않아, 어떤 사람이 그걸 했냐를 보지."



"너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 때 슬프지는 않았어?"


"슬펐지.

그렇지만, 그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거야."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거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

네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너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야."



그는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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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밤



바에서 나와 이동하는 차 안.

세르비아의 강하고 공격적인 비트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쿵쿵쿵 울리는 음악은 시끌시끌한 남자아이들이 벌이는 밴드 느낌이 난다.

낯설고도 오묘한 세르비아의 첫날밤을 비트에 간직한다.

세르비아의 노래가 쿵쿵 울리며 우리의 대화를 채운다.





다음날,

밀란의 차에 다시 오르니

스포츠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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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밀란!! 이게 뭐야!! 정말 신기해!!"


어두울 때는 몰라던 차의 새로운 모습에

신기해하는 나를 위해 그는 차 지붕을 연다.



"우와!!! 기분 최고다!!!!"


시끄러운 세르비아 노래를 들으며

열린 지붕 사이로 흘러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시원함이 뺨을 스치며 여운을 잔뜩 느끼며 바라본 거리.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전쟁으로 인해 부서진 건물이 즐비하다.


"보스니아 내전은 불과 30년 전의 일이야.

거리 곳곳은 여전히 폭탄의 흔적이 있고

여전히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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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권 시절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카페


밀란은 발칸 국가 카페로 나를 데려간다.

여전히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카페는

밀란이 전해준 이야기를 더욱 생생한 역사 속으로 이끈다.



"보스니아 사람들과 갈등을 겪은 거라면

지금 보스니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


"일부 보스니아 친구가 있지.

하지만, 친구를 맺는 데 중요한 건 국가가 아니야.

그 사람 자체인지.

그의 종교가 뭐든 나는 신경 쓰지 않아."



"함부로 유고슬라비아 관련 이야기 하는 게 금지됐어?"


"말할 수 있어. 그렇지만 이건 도덕적 문제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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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전경과 카페로 가는 길



"모두가 잃었어. 모두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


너는 세르비아를 위한다면,

너는 상대방을 죽여야 해.


우리 아빠는 군인이기 이전, 보즈니아 친구가 있었어.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한 전쟁은 한순간에 친구를 적으로 만들었지.

많은 이들이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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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미워하고 있구나."


"생각해 봐.

우리 아빠에게 총을 쏜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겠니?

나는 국가주의를 싫어해

그렇지만, 가족에게 총을 쐈다는 건 다르잖아.

일부 사람들 보즈니아인들도 여전히 세르비아인을 싫어하지."



한국 역시도 한국전쟁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교과서로만 전쟁을 맞은 나에게

한 전쟁 이야기는 오래된 역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30년 전의 전쟁에서

거리 곳곳이 전쟁 상흔으로 남아있다.


밀란 자신도 전쟁의 아픔과

과거 공산주의의 삶을 지내왔다는 사실은

세르비아의 어둡고 낡은 거리를 더욱 이해시켜 주었다.



그 속에서 과거의 아픔을 갖고 오늘날을 지내오는 밀란.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아이를 언젠가 갖는 거야.
이 가족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거야.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 싶어.



지난 전쟁으로 인해

친구였던 아우가 다음날 바로 적이 되어버리더라도,


국경 선 너머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는 과거를 겪었을지라도,


그 속에서 밀란은

국경의 의미를 뛰어넘어 '가족'을 희망하고 있다.


인간인 우리는 모두

국경, 국적, 정치, 경제를 떠나

가족을 꾸리고, 관계를 맺고, 함께 소통하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이는 세르비아의 폭탄 흔적도 가릴 수 없는

우리가 가진 위대한 힘이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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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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