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①⑥ 쥬드프라이데이 작가와 이야기 나누기
인도에 처음 도착한 순간 함께하기 ▶ 인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끊이지 않는 경적,
경적이 없는 적이 없다.
구걸하는 어린아이들,
심지어 나의 다리를 붙잡고 돈을 달라고 한다.
계속해서 말 거는 미친 사람,
힌디어도 아닌 모르는 언어로 졸졸 따라온다.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 냄새,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도 난다.
고약한 더운 날씨까지.
인도 도착 다음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 간만의 여유를 부린다.
눈뜨자마자 천장을 바라보며 든 생각.
‘내가 인도에 있구나.
와, 나 인도에 있구나.
와.’
인도에 도착한 지금,
어떤 여행을 해나갈지 정해진 계획 하나 없지만
무언가 조금씩 인도에 녹아들고 있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내가 인도를 찾은 첫 번째 이유를 떠올린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①⑥ : 쥬드프라이데이 작가와 이야기 나누기
그 이유는, 쥬드프라이데이,
웹툰 <진눈깨비 소년>을 만든 작가이다.
<진눈깨비 소년>을 처음 본건 중학교 때이다.
같은 부분을 반복해 보기를 죽어도 싫어하던 나는
진눈깨비 소년의 장면은 수백 번이고 다시 보았다.
그만큼 진눈깨비 소년을 사랑했고,
쥬드프라이데이 작가에게서 나온
대사 한 문장을 토씨하나 빼지 않고 사랑했다.
작가 문장에 위로받고,
만화 속 캐릭터에 나를 투영하며,
인물 입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말에 감동 먹었다.
<진눈깨비 소년>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난 작가의 세계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나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잔잔한 울림은
수없는 밤을 함께 눈물로 보내게 했으며
그림에서 나오는 서정적인 맛은
수없는 낮을 우수에 젖게 만들었다.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한 작가,
나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작가,
수없이 외로운 밤을 위로해 준 작가,
수없이 행복한 날을 상기시킨 작가.
젊은 시절 실패의 시간으로 얻은
섬세한 감정을 그림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힘을 가진 작가.
무수히 많은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쥬드프라이데이 작가는
만나고 싶은 나의 꿈이자,
희망이 되어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도에 살고 있다는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을 이용해
앞뒤 가리지 않고 대뜸 연락을 했다.
"너와 만나고 싶으니
인도 가면 만나줄 수 있는가?"
결과는 뻔했다.
단칼에 거절하는 쥬드프라이데이 작가는
"작품을 아껴주어 고맙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애쓰겠다.
멋지도 안전한 여행 되기 실 마음 깊이 기대하겠다."라며 말을 덧붙였다.
문득 대화를 다시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비해 나의 제안은 성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당신은 나의 꿈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당신의 세계는 내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어릴 적부터 당신을 보고자 인도에 가고 싶었어요.
그에게 닿기 위한 수많은 문장들을
인도의 여유로운 아침을 빌려 다듬고 다듬어 용기 내어 다시 메일을 보냈다.
저는 현재 인도에 있습니다.
제가 인도에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작가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이끌렸다고나 할까요.
며칠간 인도 델리에 머무를 예정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고 좋아해 오던 작가님이기에 꼭 함께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다소 부담스럽고, 내키지 않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요청이라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용기 내 연락을 드립니다.
저는 델리에서 아무 일정도 없으니, 편하게 답변 부탁드립니다.
작가님의 소중한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5.20 델리에서,
작가님을 사랑하는 독자.
그에게 메일을 보내고 잠시 장을 보고자 거리로 나온다.
45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와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한 델리 거리에서 나는 악취,
우중충하기 그지없는 델리 날씨 속에서 문득 생각이 든다.
'쥬드프라이데이 작가는 왜 인도에 사는 걸까?
류시화 작가는 왜 인도에 오래 머무는 걸까?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도를 사랑하는 거지?
나는 왜, 인도에 오래 머무려고 하는 거지?'
모순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머리를 비집도 나오는 순간,
그에게 만나자는 답장을 받는다.
사랑해 마지않는 쥬드프라이데이 작가를 만난다는 사실은
거짓말처럼 오늘 하루의 불편한 감정을 말끔히 씻긴다.
저녁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그와의 만남을 준비하며 천천히 <진눈깨비 소년>을 다시 읽는 이 순간.
중학교 시절,
그의 작품을 보면서 눈물 흘리고 가슴 설레하던 순간이 스쳐간다.
그와 만나는 미래를 꿈꾸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 소녀가 인도 델리에서
바로 내일 꿈을 실현한다.
그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쥬드프라이데이 작가 질문 목록
0. 철학이 무엇인가요?
1.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2. 영화 분야에 발을 들였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영화 분야에서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4. 자신이 굳게 믿는 신념은 무엇인가요?
5.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 힘은 무엇인가요?
6. 사회의 부조리함을 담은 웹툰(회사에서)은 본인의 경험인가요?
7. 웹툰을 그리며 주로 삶의 메시지를 많이 담는데, 웹툰을 통해 어떤 변화를 바라셨던 거 가요?
8. 어떤 시간대가 가장 영감을 얻기에, 느낌을 받기에 좋은가요?
9. 웹툰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10.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11.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2. 많은 국가들 중 인도에 살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3. 좋아하는, 추천하는 책/음악/영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14. 왜 글을 쓰는지? 왜 그림을 그리는지?
15. 삶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나요? 쥬드는 어떤 아이, 어떤 청년이었나요?
16. 영화 현장에 관심을 두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
17. 어떤 영화, 각본을 만들고 싶었나요?
18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을 당신은 좋아하나요?
19.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았나요?
20.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21. 청년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22. 본인이 느끼는 감정 중 흔히들 부정적이라 생각하는 감정들 (두려움, 부러움 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23.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에게 던질 질문을 한 아름 안고 잠에 든 다음날,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먼저 앉아있는 그가 보인다.
어린 왕자의 사막 여우처럼,
그와 만나기 이전부터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은 떨리기 시작한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카페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쥬드프라이데이 작가와
그를 열렬히 사랑한 독자 단 둘만이 있는 공간.
어린 소녀의 세계이자
어린 소녀의 꿈이었던
그 순간이 인도 델리에서 시작된다.
그에게 느낀 첫인상은 하나였다.
'쥬드프라이데이도 인간이구나.'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젊은 시절에서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삶을 담백하고 솔직히 전달했다.
자기만의 그릇을 인정하고
작은 그릇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
그에게서 나의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사업에 실패하고 본인을 실패자라고 여기던 나의 아버지.
명왕성을 목표로 했지만, 중간지점인 화성에 머물러 이곳을 만족하고 있다는 그.
쥬드프라이데이 작가는 나의 생각보다 너그럽고 느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품어온 꿈과 노래를 작지만 계속해서 품어오면서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저는 나른한 사람이고,
위기가 없는 남자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처음 영화를 할 때는 내 마음에 뜨거움이 있었죠.
그 당시에 소리도 지르고,
멱살 잡기도 했었고,
포기할 것은 금방 포기하지만,
그렇지만 두 달 해보고 계속할 수 있겠다 싶으면 꾸준히 했었어요."
그가 자신의 삶을 평범하다고,
그는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은퇴 이후의 삶도,
웹툰을 그리는 삶도,
영화에 미쳐있던 그 순간이 거름이 되고 있다.
"영화로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영화감독이 될 줄 알았던 완전히 믿고 있었지만,
시나리오가 그저 종이 쪼가리가 되기만 했었죠.
차라리 만화를 그리라는 말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사람들이 반응이 좋으니, 저도 좋았나보와요.
그동안 외로웠던 거죠."
만화를 그리는 과정에서도 그는 수천번 '때려치우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해온 것들이 아쉬워 다시 그림을 그리는 삶을 반복한다며 그는 덧붙인다.
"앞으로의 시간은 생각 못하고 지나간 시간만 아깝다고 생각하는 거죠."
나의 꿈이자
내 세계의 일부였던 그.
가슴속 불타는 열정으로 세계를 다니는 나에게
젊은 시절 사라진 열정으로
하루하루 지내는 그의 모습은
내게 잔잔한 충격을 준다.
우상처럼 여기던 인물이,
동경해 마지않던 인물이,
인생의 실패를 맛보고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순간에 절망하기도,
변화에 수용하기도,
나 자신을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이란 사실.
이 사실은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를 주었다.
평범보다 더 낮다고 정의하는 그 순간들은 내게 새로운 메시지를 주었다.
평범한 삶으로 그가 지내왔기에
수없이 많은 실패에 부딪히고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속 꿈을 놓아야 하던 순간에
자신이 가진 답답함을 풀어내고자 그린 작품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범한 삶으로 지내왔기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눈물을 품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요?"
"'쫄지 마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에게서 묻어나는 평범함과
고갈된 열정으로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그이지만,
그런 그의 모습마저도 나는 사랑할 수 있었다.
쥬드프라이데이를 만난 저녁,
한국에 지내는 친구에게 편지를 작성했다.
어제는 쥬드프라이데이라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웹툰작가를 만났어!
중학교 때부터 즐거 봤던 웹툰이었는데
작가가 인도 델리에 살거든!
학창 시절에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준 작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만화를 만든 사람을
눈앞에 보다니!!!
그리고 내가 느낀 건
그도 그저 사람이란 거였어.
그 사실이 처음에는 놀라웠어.
내 기억에서 그는 영웅이었으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 사실이 좋더라.
그도 그저 사람이라니!
그도, 그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하나의 삶이구나!
그러니, 우리 쫄지말자!
데이지 (신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