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⑮ 이집트 다합에서 스킨스쿠버 배우기
은은하게 풍겨오는 바다 냄새와 잔잔한 햇살.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골목을 통과해 온 햇살과 인사한다.
이집트 다합으로 향하는 버스 종착지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난 확신했다.
'다합과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아.'
골목을 통과해 본격 바닷가 거리를 바라본 순간,
난 이미 다합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
식당가는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여전히 아침잠에 들고 있다.
유리하나 없는 큼직한 창문 너머로 홍해 바다가 빛나고 있다.
내가 보아왔던 어느 바다보다 빛나는 홍해는
수많은 윤슬 사이도 파도 냄새를 내뿜는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⑮ :이집트 다합에서 스킨스쿠버 배우기
두근두근
첫 스킨스쿠버를 앞두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교육장소로 이동한다.
4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안내원이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아, 중년 성인이 어린아이 같은 웃음으로
눈이 마주친 나그네에서 인사를 건네는 곳이라니.
꿈을 앞두고 쿵쾅거리는 설렘과
어른에게서 보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이곳이 사랑스럽다는 말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홍해는 파란색만 있지 않다.
하늘색, 짙은 파란색, 남색, 파란색, 옅은 파란색, 하얀색, 초록색, 옅은 초록색...
다양한 색깔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바다.
매번 동해바다만 보고 자라온 내게 짙은 남색의 이미지가 바다의 표본이었다면,
바다는 남색만 있지 않음을 여행하며 몸소 느끼고 깨닫는다
버킷리스트의 순간을 함께할 스킨스쿠버 강사에게 묻는다.
"후세인, 왜 스킨스쿠버 강사를 하는 거야?"
"바다가 좋으니까."
나 역시 그의 대답에 깊이 공감한다.
어릴 적, 집 앞바다에서 단순히 헤엄치는 것에서 나아가
유람선, 스노클링 등을 하며 바다의 무궁무진한 모습과 놀고 나니
바다가 얼마나 많은 매력이 있는 곳인지를 깨달았기에.
바다가 가진 수많은 모습 중
또 다른 모습을 볼 마음은
후세인의 대답에 힘입어
더욱 뜨겁게 타오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마음속으로 목청껏
바다를 향해 소리친다.
부푼 가슴을 가득 안고
조금씩 바닷속으로 이동한다.
바닷속 세계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전혀 느껴보지 못한 장소.
온통 하늘색으로 가득 찬 시야에서
한 두 줄기의 빛만이 침투하고,
오로지 가스통과 내 폐를 연결하여 움직이는
나의 숨소리 뿐만을 듣는다.
가스에 긁혀 나는 쇳소리와 함께 바닷속 세계를 바라본다.
바닷속에 있으면서도 바닷속에 있지 않는 느낌.
그저 바닷속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산소통은 내가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속삭인다.
레귤레이터*를 놓칠세라 꽉 깨물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마치, 공기 중에서 숨 쉬는 법을 몰라 숨쉬기 연습을 하듯이,
대류권에서 어떻게 숨을 쉬는지 까먹은 것처럼,
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바닷속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다.
바다 표면에서 보아온 물고기는
바닷속의 물고기와 같지만 다르다.
자신의 포근한 마을과 집에 도착한 듯
바닷속 물고기는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유유자적 지느러미를 흔들며 편안한 물방울을 만든다.
*레귤레이터: 공기를 조절하여 수압에 맞게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장비
"엄청나다!"
바다 위로 올라와 나는 연속해서 외친다.
"엄청나!! (Amazing!!)"
'Amazing'이란 단어 외에
나의 감정을 수식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스킨스쿠버는,
내가 마주한 첫 번째 바닷속 세상은
정말, 어메이징 한 그 자체였다.
내가 방금 바닷속에 있었다니!!!!
바닷속 세상을 처음 경험한 그 감정은
엄청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엄청나다!"
첫 다이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아침에 마주친 40대 중년 남성의 미소를 떠올린다.
눈이 마주쳐 웃어 주는 사람을 얼마 만에 본 걸까.
나이 든 이에게서 아이 같은 웃음을 얼마 만에 본 걸까.
다합 바다가 주는 여유,
단단한 바람과 노을,
잊지 못할 바닷속 세계까지.
솔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다합 거리에 한층 젖는다.
물속에서의 훈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안정을 갖고 물과 친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차분히.
고요하게.
가스통에 공기가 긁히는 소리까지 사랑하면서.
딥다이빙을 위해 수심 26m까지 내려간다.
그곳에는 바닷속 박물관이 있다.
영화 속에서 보던 그 느낌 그대로
실제 바닷속의 여러 장신구를 바라본다.
물방울은 꼬르륵 거리며 일정한 속도로 올라가지만
바닷속 박물관에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공감각의 세계는 완벽히 다르게 흐른다.
바닷속 세계를 어떤 형용사로 수식하면 좋을까.
몸이 저절로 둥둥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
몸이 천천히 움직이는 공간,
거북이는 자유롭게 시공감각을 헤엄친다.
동물원 유리창에 갇혀 영혼 없는 눈으로 뻐금 뻐금 거리는 거북이가 아닌,
집과 같은 편안함 속에서 모래를 흩날리며 수영을 하는 살아있는 거북이.
진정 살아있는 거북이가 눈앞에 나타난다.
거북이뿐만이 아니라 모든 해양 생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날개를 퍼덕이며 지나가는 가오리,
물살에 몸을 맡겨 춤추는 산호초,
물고기, 불가사리 ···.
바닷속 생물들의 모습은 해양수족관에서 본 생물과 전혀 다르다.
바닷속 생물들은 자신의 집에 있다.
그들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바닷속 물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
온통 물로 가득 찬 공간, 숨을 내실 때마다 나타나는 거품 방울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색다르며, 처음 보는 세계이다.
그 새로운 세계는 굉장했다.
조심스럽고,
천천히 이루어지는 세계.
낯설면서도 편안한 세계.
그 세계는 낯선 편안함을 품고 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어느덧 어둑해진다.
바닷가에 앉은 두 연인은 사랑을 속삭인다.
행복은 그저 함께 바다를 보러 가는 것.
어떠한 것도 필요 없이 그저 함께 가는 것.
밤거리를 그냥 걸어도 안전한이 다합이 좋다.
조용한 바다 위로 자그마한 불빛들이 있는 게 좋다.
그 거리를 갖고 있는 지금이 순간을 사랑한다.
지금이 걷고 있는 시간도 너무 아깝다.
시간이 가버리고 있는 게,
바다를 보며 걷는 행운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아깝고 그래서 행복하다.
하루는 야간 다이빙을 하는 날이다.
껌껌한 밤, 사람들이 다 빠진 바닷가 물가로 들어가는데 살짝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후세인은 말한다.
"야간 다이빙은 낮과는 또 다른 세상이야."
두근두근
설렘과 두려움의 떨림이 공존하며
내게 용기라는 형태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후세인이 있었기에 마음이 편안하다.
다이빙 준비의 마무리, 레귤레이션을 입에 넣고 물 안으로 들어간다.
밤바다의 속은 온통 껌껌한 공간이다.
어둑한 물 사이로 전등불빛에 의지해 헤엄친다.
우주에 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모든 중력을 거부당한 채 둥둥 떠있는 찰나의 순간,
후세인 전조등 불빛에 얼핏 보이는 물 속 식구들이 보인다. 플랑크톤,
불빛으로부터 시작된 물고기 그림자극,
움츠러들다 펴지는 산호초,
야간도주하듯 조용히 이동하는 플랑크톤,
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물고기까지.
그 속에서 내 손을 자세하게 바라본다.
내가 지금, 바닷속에 있구나.
밤바닷속에서 나는 모든 생각을 멈춘다.
밤바다는 또 다른 우주였다.
아기 불가사리, 아기 문어, 뱀장어, 니모···.
수많은 해양생물은 움직이지 않은 채 잠을 잔다.
그 모습은 마치 시공간이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동안 알던 세계와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본 느낌이다.
전조등을 다 끈 뒤 껌껌한 바닷속에 잠시 멈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
후세인 손으로 몸짓을 크게 하자, 야광색 불빛이 생긴다.
나도 후세인을 따라 팔을 흔들며 불빛을 만든다.
껌껌한 바닷속에서 우리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혹은 영화 그 이상의 새로운 세계를 연출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물은
내게 느릿하게 반가움을 표하고,
나도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인사한다.
가스통에 의지해 거친 숨을 내쉬며
내 몸을,
내 시선을,
바닷속 이야기들을
깊이 껴안는다.
밤바닷속과의 포옹은
지상에서 껴안는 바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곳에는 바람도, 공기도 없다.
바닷속에서 위를 바라보는 것은 또다른 영화 장면을 연출한다.
식당에서 나오는 불빛이
바닷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울렁이는 물에 굴곡져 들어온 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마치, 어두운 동굴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할 때처럼,
물의 움직임으로 인해 더욱 신비로움을 더한다.
울렁이는 물의 리듬에 맞추어
굴곡진채로 빛은 시야에 들어오고
어둡고 깊은 물속에 있는 나는
수면 위를 바라보며 신비로움을 느낀다.
이곳은 새로운 세계였다.
이외에 달리 내 감정을 표현할 수단이 없다.
마지막 다이빙으로 그랜드 캐년 속으로 들어간다.
바닷속 깊은 동굴로 들어오니 오로지 나만 존재한다고 느껴진다.
인어공주가 나올 것만 같은 신비로움.
그 곳엔 오로지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존재한다.
바닷속 암석, 암석 동굴,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주황색의 물고기들까지.
물고기가 옹기종기 모이다 퍼지는 모습은 마치 별의 이동과 같다.
바다라는 우주에 물고기는 별.
반짝반짝 빛나는 별같다.
은박지 같은 물고기의 무리는
대륙을 횡단하는 실크로드처럼 반짝이며 길을 만든다.
수며 너머로 보이는 공기가 있는 세상과 그 아래 바닷속 세상,
그 사이를 가로지어 이동하는 물고기 떼는
공기 위에 뿌려지는 은박지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처럼 빛을 내며 움직인다.
바닷속의 작은 별,
물고기는 별이다.
아름다운 별이다.
그 세상을 봤을 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처음 본 세상이기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분명히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인어공부를 만든 사람은
이 엄청난 바닷속을 보고 애니메이션을 구상했을까?
애니메이션에서만 보았던 순간을
현실로 직접 느끼는 감정은,
종잡을수없이 커진 신비로움으로
나의 세계를 뒤흔든다,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바닷속 세상.
그곳은 온통 푸르고,
느리게 움직이는 새로운 우주이다.
물로 둘러싸인 내 몸은 천천히 움직이고,
나의 호흡을 따라 물의 흐름은 움직인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모여있는 산호초에 머물며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어느덧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그들은 평온하고,
바닷속은 편안하며,
평화롭고,
모든 중력이 거부된 느낌이다.
산호초의 영향으로 바다는 초록색을 띄고 있다.
모래로 인해 갈색을 드러내기도,
빛으로 인해 투명과 하얀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늘색, 남색, 초록색까지···.
바다는 다양한 색과 매력을 가진다.
난 그런 바다를 사랑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광경 앞에서
감동으로 범벅된 마음을 억누른다.
46분의 다이빙은 내게 10분처럼 느껴진다.
물 밖으로 나오며 연신 'Amazing'을 외친다.
"정말 굉장해! 바닷 속은 놀라운 곳이야!"
그리고, 어릴적 내 자신,
스킨스쿠버를 꿈꾸던 꼬마 신예진에게 말한다.
"또 다른 세계를 알려줘서 고마워."
데이지 (신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