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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Oct 06. 2024

베트남 I 움직이지 않고 널 기다렸어

데이지 버킷리스트 ⑭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길쭉하게 사진 찍기


"이번 방학 동안에 뭐 했어?"


강원도 고성군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교실.

개학을 맞이한 아이들은 저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와 함께 베트남 여행을 갔다 왔어!"


한 친구는 베트남 하롱베이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고,

푸르게 펼쳐진 바다 위로 수없이 많은 석회암 카르스트가 펼쳐져있다.

서울도 가보지 못한 내게 사진 속 하롱베이는

지구가 품은 온갖 아름다움을 다 흡수한 것처럼 느껴졌다.


울긋불긋 솟아오른 석회암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하롱베이가 베트남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사진을 본 순간부터 나는

찬란한 바다 사이를 지나며 기암괴석과 인사하는 내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했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⑭ :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길쭉하게 사진 찍기





초등학교 교실에서 하롱베이 사진을 본 순간부터

내게 베트남은 곧 하롱베이와도 같았다.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베트남 여행 중, 하롱베이만큼은 무조건 가리라 생각했다.


베트남으로 넘어오는 버스에서 만난 이고와 함께

하롱베이 투어를 예약해 관광버스에서 다시 만났다.


일본인 여행가 이고와 함께


이고와 만난 이야기 : 내가 라오스에서 가장 좋아한 시간은



"이고! 잘 지냈어?"


하노이에 오기 전

각자 사파에서 어떤 여행을 했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눈다.

전 날, 한숨도 못 자서 버스에서 잘 계획이었지만

이고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피곤함도 잊어버린 채

하롱베이로 향하는 내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사진: Unsplash의 Lewis J Goetz


이야기 꽃이 개화시기를 훌쩍 넘기고 나니

조금씩 창문 너머로 푸르른 하롱베이가 펼쳐진다.

바다 위로 드러나는 수천 개의 섬들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불러일으킨다.


"이고! 우리가 하롱베이에 왔어!"



창문너머 힐끔힐끔 하롱베이의 찬란함을 보며

유람선에 올라 가까이 갈 생각에 잔뜩 부푼다.

부푼 마음은 부푼 반죽처럼 구워져 유람선 위로 나를 이끈다.  



하롱베이의 모습을 실제로 본 순간/ 한층 신이 난 채로 버킷리스트 '길쭉하게 사진 찍기'를 하며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하롱베이야!

어릴 적에 우연히 봤던 찰나의 사진인데,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남아있더라고."


그런 내게 하롱베이는 반갑게 인사하듯

바람을 빌려 선서한 공기물결을 준다.


"아, 시원하다."


바람이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아.


'예진아, 네가 어릴 적 품어온 그곳에 있어.

몇 년이 넘도록 품어온 그 꿈을 위해

나는 움직이지 않고 널 기다렸어.'



짙은 청록색의 바다 위로 물떼새가 날아간다.

나를 기다려준 수많은 기암괴석 앞에서

바람을 흠뻑 들이마시며 순간을 더없이 사랑한다.


이고는 지나치게 풍부한 내 감정에

함께 미소 지으면서 하롱베이의 풍경을 음미한다.




하롱베이에서 잔뜩 신이 난 채로


유람선에서 한껏 하롱베이와 인사한 뒤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카약에 오른다.


카약 노를 휘저으며 가이드를 따라 하롱베이가 품은

동굴 곳곳을 누빈다.

하롱베이 물은 생각보다 맑지 않지만,

청록빛으로 내게 인사하는 그를

손을 담그며 반갑게 맞이한다.






"이고, 우리 게임하나 하는 거 어때?"


"무슨 게임?"


"정적 만들기 게임!"


관광객들이 다른 동굴로 이동한 사이

어느새 둘만 남은 보트 위에서

나는 잠시동안 아무 말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

하나 둘 셋!"




게임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적막을 뚫고

암석 속에 숨어있던 새소리가 울린다.


사진 찍느라 바쁜 관광객 소리도 없이

잔뜩 신이올라 호들갑을 부리지 않고

하롱베이가 감싸는 공간만을 느낀다.


인간이 내는 어떠한 소리도 없이

오로지 하롱베이가 내는 숨소리를 음미하는 순간.

그 순간은 온전히 자연이 된 기분이다.

부드럽게 울리는 하롱베이 소리는

바쁘게 노를 젓고,

바쁘게 사진을 찍기보다

머무르며 현재를 음미하라고 속삭인다.



노란색 카약에 등을 기대어

하롱베이가 주는 속삭임을 고요히 듣는다.


1분 동안의 게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롱베이 투어에서 갔던 동굴/ 카약 타기 전에 함께한 싱가포르 친구들과/일본여행가 이고와 함께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 하롱베이는

초등학교 신예진이 품은

동경의 장면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 나의 꿈을 실현했다는 사실이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혼자 왔다면 순간의 설렘일 뿐이었을 하롱베이.


일본 여행자 이고와 함께

나의 설렘을 나누고

자연의 속삭임을 공유했기에

나의 하롱베이는 잊지 못할 순간이 된다.



하롱베이와 작별인사를 하며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이고, 하롱베이 어땠어?"


돌아가는 버스 안, 이고는 대답한다.


"좋았어.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했던

정적 만들기 게임은 잊지 못할 거 같아."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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