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⑫ 동남아시아에서 트레킹 하기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오는 이야기 ▶ 내가 라오스에서 가장 좋아한 시간은
새벽 4시.
어둠이 내려앉은 베트남 사파에 도착해 호스트 Xjooy(아래 빠오)에게 연락한다.
사파에서 20분 거리인 라오까이에 사는 빠오는 새벽을 뚫고 나를 데리러 온다.
사파에 도착했으니 아침에 찾아가겠다는 의미로 한 연락에도
흰색의 오토바이를 끌고 온 그가
매우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맙다.
어두운 밤의 반딧불이와 마을 어귀에 입성한 오토바이.
조금의 설렘과 약간의 무서움을 갖고 그의 허리를 꽉 잡는다.
구불구불 흐르는 물소리 사이를 운전하며 그는 말한다.
"데이지, 나는 아침에 바로 판시판 등산에 가야 해."
판시판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고도 3,147m로 베트남 라오까이성과 라이쩌우성에 걸쳐있다.
트레킹 가이드로 일하는 빠오는 예약이 있을 때마다 1박 2일 등반을 간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⑫ 동남아시아에서 트레킹 하기
문득 버킷리스트 중 '동남아시아 트레킹'이 떠오른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익히 들려온 트레킹 이야기는
무작위로 '동남아시아 트레킹'이라는 꿈을 만들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굽이굽이 마을에 들어서니 4시 30분.
빠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깨어있다.
빠오와 가족은 블랙흐몽 족(Black H'mong) 족이다.
블랙흐몽 족은 중국 남부,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지에 분포하는 민족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큰 소수 민족 중 하나이다.
빠오 가족과 이른 새벽 인사를 나눈 뒤
12시간 버스에 있는 동안 씻지 못한 얼굴도 씻고 짐을 정리한다.
빠오 가족들과 수줍게 인사 나누고 밥상을 시작해 아침을 먹는다.
밥을 먹으며 우린 대화를 일절 하지 않지만,
무언의 무작용 속 그들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밥을 다 먹고 분주히 움직이는 빠오에게 묻는다.
"빠오, 지금 바로 판시판에 가는 거야?"
"응. 밥 먹고 움직여야 해."
등산이라면 빠질 수 없는 신예진.
마침 동남아시아 트레킹도 꿈꾸었던 터라,
밤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한다.
"나도 너와 함께 판시판에 갈래!"
트레킹 준비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빠오대신
빠오 아버지는 나를 사파 중심지로 내려준다.
빠오가 돌아오기 전까지 중심지 곳곳을 둘러본다.
함께 등반하게 된 칠레 등산객 곤살라와도 이야기 나눈다.
곤살라는 칠레에서 취업 준비를 하다 풀리지 않아
호주에서 4년 동안 워홀을 한다.
워홀을 통해 번 돈으로 6개월간 동남아 여행을 하는 중
베트남 판시판 등반을 하며 나를 만난 것이다.
21살임에도 세계여행을 하고
걱정 없이 판시판 등반을 하는 나를 보며 곤살라는 놀란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지붕을 느끼게 되다니!
너무 설레!"
그 놀라움 앞에서 잔뜩 설레하던 중
수속을 마치고 돌아온 빠오와 함께 사진 찍는다.
찰칵 소리와 함께 어릴 적 막연히 품은
'동남아시아 트레킹'의 꿈을 이루러 발을 떼기 시작한다.
사파는 이미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시설관리 및 예매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판시판 역시 케이블카가 2016년 설립되어 하루 만에 판시판 정상을 관광객에게 보여준다.
케이블카로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지만,
나는 인도차이나반도 지붕을 직접 느끼는 욕망이 가득하다.
환경오염과 산불로 인해 소실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푸르르고 울창하게 판시판은 인사한다.
"이렇게 땀 흘려 일하지만,
나는 내 직업이 좋아.
판시판을 매번 오르다 보면 운동도 저절로 되고 말이야."
빠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른 과정에서
우린 중간중간 휴식을 갖고,
빠오가 싸 온 점심을 먹고,
물도 마시며 함께 판시판 길의 추억을 채운다.
샤오즈는 등산객 짐 일부와
우리 식량을 모두 짊어지고 오르며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어릴 적에는 나만의 사업으로 식당을 열고 싶었어."
음식점을 열고 싶다는 꿈 때문인가,
산행 후 먹는 그의 요리는 근사했다.
초록색으로 무성한 나무와 인사하느라 바쁜 산행을 마치니
오후 3시 즈음 야영장에 도달한다.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다른 가이드 이야기를 엿듣고, 대화도 나누며 첫날 산행의 설렘을 잠재운다.
한 트레킹 가이드는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하는데,
투어가이드로만 배운 것이기에 깊은 대화나 글로 쓸 수는 없단다.
스스로 영어를 깨우치며 살아가는 그가 대단하다.
28살인 그는
결혼 후 자신이 일을 하면 가족이 더 좋은 생활을 하기에 트레킹 가이드와 마을 가이드가 되었다.
이미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아 스스로 혼자 가이드로 일하고
가이드 일이 없는 날에는 사파 도심가에서 팔찌를 판다.
자신이 짊어질 책임감으로 생존 정신을 가진 그가 대단하다.
동시에 같은 28살이면서도 한국에 지내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자신이 태어난 배경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삶이란 무엇일까란 문장을 품는다.
야영지에서 지내는 크몽족 분을 따라가기도 한다.
귀에 큰 구멍을 뚫고
크몽족 전통 장신구를 치장한 그는
본인의 회사, 즉 대나무 숲으로 나를 이끈다.
구멍과 함께 귓불이 덜렁거리며
능숙하게 대나무를 자르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며 나아가 존경심이 든다.
가이드가 합심해 만든 저녁 식사는 판시판의 밤을 풍부하게 해 준다.
휴가기간 동안 베트남에 여행온 영국 직장인,
1년 간 세계여행을 곧 마치는 미국 여행가,
라오까이에서 지내며
각자의 삶을 공유하고, 우주를 나누며
판시판의 밤을 채운다.
식사가 주는 매력에 세 그릇을 후루룩 해치우고
다음날 산행을 위해 자러 간다.
숙박 시설로 이동하는 중
판시판 산 위로 떠오른 밤하늘을 바라본다.
물끄러미 별들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있던 순간을 돌아본다.
판시판의 울창한 모습과 더불어
트레킹 가이드, 야영장 주인, 칠레 등산객 등
이제껏 보지 못한
삶의 형태는 내게 새로운 삶의 모양들을.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하고
지구엔 다양한 형태의 산이 존재하고
우주엔 다양한 형태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각자 별에서 빛을 내며
하늘을 수놓은 별을 이루는 이 순간.
어릴 적 품은 동남아시아 트레킹의 순간에서
나만이 내뿜는 별을 만들어
각자의 별이 포근히 밤을 이루도록 기도한다.
다음날, 판시판 정상에서 일출과 인사하기 위해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빠오가 해준 인스턴트 라면과 커피로 배를 잠재운다,
동남아 초콜릿이나 커피나 그만의 장난꾸러기 같은 맛이 난다.
어릴 적 꿈꾼 트레킹의 마무리를 곧 짓기 때문일까
판시판이 가진 아름다운 일출을 곧 보기 때문일까
장난꾸러기 같은 커피 맛이 참 좋다.
껌껌한 앞을 헤치고
경사 높은 돌멩이를 능숙하게 오르는 빠오.
험난한 길을 뚫고 숨을 고르며 빠오를 따라간다.
정상 근처에서 깜박이는 붉은 불빛은
점차 시야에 커지며 정상에 다 와 간다는 신호를 보인다.
곧 해가 뜨지는 않을까
일출이 보고 싶던 마음은
정상을 향해 꾸준히 발을 뗀다.
"데이지, 잘하고 있어."
빠오의 격려를 끝으로 조금씩 밝아오는 판시판의 여명을 느낀다.
어느새 구름 위로 올라온 나는 정상에 올라 판시판이 품은 풍경을 바라본다.
언제나 위에서 바라본 구름은 자욱하게 판시판 정상 아래에 깔려있다.
정상에 당당히 서있는 사원과 석탑은 높은 고도 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한다.
대형 불상은 판시판의 웅장함에 일조한다.
뿌옇게 펼쳐진 구름을 뚫고 조금씩 떠오르는 태양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글거리며 판시판 일대를 붉게 물들이는 순간.
자연의 우람함과 종교를 향한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진다.
베트남 쩐 왕조 시절인 800여 년 전,
건축양식의 사원과 석탑은 정상에 건재해 판시판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생각보다 구름이 많이 껴서 생각한 경치는 아니었지만,
음산한 분위기는 판시판 정상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인류의 경외감을 더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는 샤오미가 흘린 땀방울에서 느낀 것처럼.
그 땀방울은, 오늘도 판시판을 향해 뜨겁게 흐른다.
정상의 기쁨을 만끽하며 쉼터로 내려오니,
빠오는 웃으며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빠오! 어릴 적 나의 꿈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판시판 등반은 어릴 적 꿈을 실현시켜 주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울린 것은
판시판 등반을 하며 만난 다양한 이들의 삶이었다.
판시판은 내게 이제껏 보지 못한
삶의 형태는 내게 새로운 삶의 모양을 알려주었다.
나와 다른 우주를 만나는 일,
다른 삶의 형태, 철학, 태도,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내게 깨달음을 준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하고
지구엔 다양한 형태의 산이 존재하고
우주엔 다양한 형태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각자 별에서 빛을 내며
하늘을 수놓은 별을 바라봤던 순간
어릴적 품은 동남아시아 트레킹의 순간에서
나만이 내뿜는 별을 바라보며
또 다른 세계일주 꿈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한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