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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으로 가득했던 파리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니콜라

by 여행가 데이지

추적추적 내리는 얇은 비를 뚫고

아늑한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는 두 남녀.

그들은 에펠탑을 시야에 두고

한밤중 골목을 지나

센 강이 흐르는 다리 위를 건넌다.



낭만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두 남녀의 웃음.

이내 파리 거리를 보여주던 화면은

영화의 엔딩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바뀐 검정 화면 너머로 내 모습이 보인다.

열렬히 파리 거리를 걷고 싶어 하는 내 모습.

파리의 모든 낭만을 흡수하며

파리를 가득 채운 온 공기를 내 몸속에 담고 싶어 하는 내 모습.



영화, 음반, 문학 ···.

모든 곳에서 낭만을 찾을 수 있는 프랑스 파리.


파리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나의 꿈이었다.


수많은 낭만으로 점철된 이미지.

그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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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처음 도착한 순간


벨기에에서 정신없이 파리행 버스에 오른다.

미디어에 수없이 비친 파리를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도시에

몇 시간 뒤에 내가 도착한다는 사실에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렇게 도착한 파리.

어느덧 날은 어둑해진다.



'파리 소매치기'

'파리 절도범'


파리 여행을 앞두고

파리 지하철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듣는다.


연락이 닿은 호스트 집까지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에 잔뜩 긴장한다.

그런 나에게 호스트는 문자를 보낸다.



"네가 도착하는 곳에 데리러 갈게."



무거운 배낭과 함께

사기가 넘쳐난다는 지하철을 피하게 해 준 호스트.

그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온다.



"안녕!"



말끔한 양복 차림의 그는 푸른 눈동자를 갖고 있다.

제대로 인사할 새도 없이

짐을 싣고 그의 자전거에 오른다.


"음 음 음 ~"


인터스텔라 노래를 흥얼거리는 호스트 등을 바라보며

파리 시내를 뚫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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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건물은 클래식한 파리 거리를 알린다.

고급 부티크와 대형 매장은 거리를 가득 채운 채 내게 인사한다.



"샹젤리제!"



일직선으로 뻗어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과

커다란 나무들은 파리의 낭만적 분위기를 더한다.



씻지 않은 채 장기간 버스를 타고

꼬질꼬질한 상태로 무거운 배낭을 앞뒤로 맨 채

자전거에 올라탄 순간.

우아하고 낭만적인 거리의 공기를 음미한다.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호스트 허리를 꼭 껴안는다.


동시에,

꽤나 낭만적인 순간의 숨결을 느낀다.


호스트가 준비한 깜짝 환영선물

'Welcome Daisy'

호스트 니콜라는 귀여운 메모를 붙여놓았다.

메모 덕분에 갖고 있던 시름을 놓는다.


'무사히 도착했구나'


이전에 한국 여행을 두 번 다녀온 호스트는

방 곳곳에 한국 기념품이 놓여있다.


"데이지, 편하게 쉬어도 돼.

혹은 원한다면 파리 시내를 보여줄게"


파리에 방금 도착한 나는

주저하는 시간도 없이 대답한다.



"지금 당장 가자!

난 파리를 즐길 준비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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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가 데리고 간 파리의 기차역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니콜라 집에 나오니

낭만으로 가득 찬 건물이 펼쳐진다.

니콜라는 본인이 아침마다 어디서 조깅을 하는지

어디로 출근하는지, 종종 어디서 아침을 먹는지 이야기한다.

이후 본인이 일하는 기차역으로 나를 데려간다.



"우와. 기차역이 정말 크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기차 장난감이었어.

줄곧 기차와 연관되어 일을 하고 싶었지.

어릴 적에는 고향 집 근처 기차역에서

하이스피드 기차가 지나가는 걸 구경하곤 했어."



어린 시절부터 기차를 사랑한 니콜라.

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나를 이끈다.

우린 순식간에 기차 비밀 탐사대로 변한다.



"니콜라! 저기는 뭐야?"



"기차역 사무실인데,

올라가면 깜짝 놀라는 풍경이 펼쳐질 거야.

가볼래?"




"당근이지!"




마치 잠입한 스파이 것처럼

다른 직원 눈을 피해

은밀하게 사무실로 들어선다.

니콜라의 지휘를 따라

계단에 올라가니

기차역 옥상에 도착한다.



기차역의 커다란 시곗바늘 앞에 선다.

파리의 야경이 펼쳐진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 각양각색의 색이 파리 도시 전역을 채워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다.



"니콜라! 여기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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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야경을 볼 수 있는 기차역 옥상에서


파리 야경 앞에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여

몇 분을 방방 뛰고 난 뒤에

난간 없는 옥상 턱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 나눈다.

"니콜라, 나 심장이 마구마구 뛰어."

파리 거리를 메꾸는 불빛 사이로 우뚝 서있는 에펠탑을 본다.

등대처럼 도시를 비추는 에펠탑을 보며 설레하는 나에게

니콜라는 웃으면서 이유를 묻는다.

"저기를 봐!

내 버킷리스트이자, 그토록 실제로 보고 싶었던 에펠탑이 내 눈앞에 있잖아!

세계가 원하는 도시, 파리에 지금 내가 있고,

이 아름다운 파리 야경을 음미하며 있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은 '파리'라는 두 글자로 모든 게 설명이 됐다.

고전적 아파트와 붉은 지붕,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사이에 우뚝 솟는다.

거리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와 경적소리마저도

내게 부드럽게 속삭이는 느낌이다.

그 속삭임에 나는 답한다.

"잊지 못할 파리의 첫날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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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날씨를 가진 파리의 순간들


"나는 오늘 휴무야.

네가 원한다면 파리 곳곳을 소개해 줄게."

화창함 그 이상으로 화창한 날씨는 파리의 아침을 반긴다.

니콜라는 본인이 좋아한다는 짜파게티로 아침을 준비하며 말한다.

"나는 너무 좋지!"


파리 센강에서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그의 자전거에 올라 파리 일대를 구경한다.


화창한 날씨에 흰색 구름은 뭉게뭉게 하늘을 채운다.

간격이 넓게 벌어진 채로 커다란 나무가 들어서 있다.


현대적 건물과 고풍스러운 건물이 어우러져

거리 양옆에는 세련된 카페가 늘어서 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파리지앵들.

거리 자체가 예술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니콜라의 콧노래를 들으며

한껏 여유가 느껴지는 거리를 음미한다.

자전거를 타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모습이 좋다.

한껏 여유를 머금은 파리의 아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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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가 담아둔 파리의 순간들



파리 곳곳을 걸어 때면

니콜라는 나에게 말한다.

"데이지, 저기 가서 서봐."

찍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먼저 사진을 찍어주고,

추억을 만들어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하나 둘 셋!"

한국 여행에서 배운 조그만 한국어로

서툴게 말하며 사진을 찍는 그.

우린 근처 아시아 식당에서 음식을 산 뒤

센 강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기차에서 일하는 게 행복해.

기차로 이동하는 동안 승객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잖아."

니콜라는 기차에서 일하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릴 적부터 동경하며 바라본 기차.

사랑해 마지않던 공간에서 일하는 그는

매 순간 만족으로 가득 찬다.

"가끔 무단으로 기차에 오르는 승객도 있어.

그들을 잡아내는 것도 중요하지.

어쩔 때는 평범하게 기차 안내방송을 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재치 있게 안내방송을 하기도 해.

가령 크리스마스 때에는 징글벨 노래로 안내를 시작하지(웃음)"


20231001_225640.jpg?type=w773 니콜라가 좋아한다는 파리의 한 식당



어릴 적부터 꿈꿔온 기차라는 선물.

동경해 온 그곳에서 일해오며

누구보다 만족해하는 니콜라.

기차에서 매번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어렴풋이 하찮은 거라고 여겨온 것이 아닐까.

내가 꿈꾸는 직업이,

내가 꾼 꿈만이 가치 있다고 어슴푸레 여겨온 것이 아닐까.

기차 역무원이란 직업과

설렘이란 단어를 동일 선상이라 여긴 적 없기에

만족과 보람으로 무장한 그의 표정을 보며 깨닫는다.

삶이란 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거지.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게 맞는구나.

반짝이는 센 강을 바라보며

물끄러미 깨달음을 곱씹는데

니콜라는 말한다.


파리 개선문 앞에서



"나도 데이지 너처럼 세계여행을 갈 거야."

그는 1년간 받을 수 있는 휴가로

내년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1년 휴가가 마냥 좋은 건 아니지,

나의 승진은 1년 미뤄지기도 하고,

내 삶에서 챙겨야 할 것을 포기하기도 하잖아.

그렇지만 그 1년이 결코 내게 낭비된 시간이 아닌 란 걸 알고 있으니까."







삶은 짧아.
나는 우울과 슬픔에 내 감정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살아있다는 행운에 감사하고 살고 싶어.

매일 감사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지.

- 니콜라 삶의 이유



샹젤리제 노래를 들으며,

프랑스 특유의 섹시하고 엉성한 발음을 내며 자전거를 탄다.

저 멀리 조금씩 철로 된 검은색 에펠탑이 자태를 드러낸다.

에펠탑.

내가 기어코 왔구나.

가슴이 미치도록 뛴다.

샹젤리제 노래를 부르는 니콜라.

프랑스를 노래하는 그의 넓은 등판을 보며

에펠탑이 주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한다.

"내가 에펠탑에 왔다니!

여기가 에펠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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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이후에도 우린 파리 곳곳을 누비며

낭만 섞인 대화와 함께

파리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긴다.

"니콜라, 나에게 삶에 대해 조언해 줄래?"

"네가 스스로 무엇을 준비할지 결정하고,

너의 스킬과 인성을 향상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준비해.

너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해.

너 주위의 사람들,

너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선택해."

니콜라의 말을 듣고는 이내 학창 시절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대학 때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거야.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과 어울리면서 얻게 될

다른 시각이 있는데 말이야."

나는 이내 선생님의 말을 따라 니콜라에게 답한다.

"조언 고마워.

때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과도 어울리는 게 필요한 거 같아.

내가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

만약 영향을 주기 힘들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더 보내기만 하면 돼."



몽마르뜨 언덕을 올라가며

니콜라는 나의 대답을 듣더니

회사에서 있었던 파업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틈만 나면 파업을 하는데, 나는 그게 달갑지는 않았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파업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지.

나는 내 위치에서 올라가고 싶고,

지금 환경과 조건에 만족하지만,

하루는 나도 파업에 참여했었어.

일하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불만을 표현하는 거지.

우린 함께 경찰서에 불을 지르기도 했어.

우리만의 저항을 한 거야.

여전히 파업을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고 있어."

그는 만난 좋은 동료에서 나아가

일을 하며 느끼는 만족감을 말한다.

"기차 운행의 좋은 서비스를 통해

승객들이 만족하기 위해 노력해"

센 강변을 지나는 유람선 소리가 들린다.

다리 위를 지나는 사이렌 소리도

커지게 들리다가 점점 멀어져 간다.

"데이지 너는 어떤 조언을 해줄래?"

나는 고민하다

이집트에서 겪었던 카메라 도난 사건을 말한다.

"그렇지만, 이걸 기억했어.

삶은 총량의 법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쁜 일 뒤엔 좋은 일이 분명히 생길 거란 걸.

그렇기에 황홀할 정도로 행복한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가고

비참할 정도로 슬픈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걸 명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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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는 나중에 내게 기차 표를 무료로 주었다.


한 편의 영화 같던 파리에서의 시간이 끝난 뒤,

우린 기차역에서 작별 인사를 한다.

니콜라는 직장 동료에게 부탁해 내게 기차 티켓을 쥐여준다.

"니콜라, 꿈을 잃지 마.

여행해.

전 세계를, 1년 동안 말이야."

"응 그럴게."

니콜라는 나에게 말했다.

"너 스스로를 잘 챙겨야 해.

너는 똑똑하고 강하니까 앞으로도 잘할 거야."

"응 그럴게."

첫 만남과 끝을 함께한 기차역.

승강장에서 지난 파리 여행을 돌아보며 마무리한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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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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