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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난 이레나

by 여행가 데이지

브뤼셀 거리의 하얀색 건물은 화이트 초콜릿 같다.

거리는 앳되고 장난스러운 젊은이의 느낌이 풍겨진다.

호스트 이레나의 말괄량이 같은 표정과 말투 덕분일까,

왜인지 모르게 내 발걸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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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거리


커다란 입으로 치아를 드러내며 크게 웃는 호스트 이레나.

그는 쾌활하고 명랑한 소녀같이 보인다.


귀여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나를 반기는 그의 미소는

밝은 가족에게서 사랑받고 자라온 아이 같다.

그의 웃음은 사랑스러움이 넘친다.



벨기에 호스트 이레나와 함께

세계 각지에서 브뤼셀을 찾지만,

이탈리아인을 특히나 많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인 이레나는

다른 이탈리아인처럼 벨기에 브뤼셀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브뤼셀의 다양성이 좋잖아!"


호기심 많은 그도 남아메리카 곳곳을 여행했다.

우린 서로 라틴 아메리카가 주는 분위기를 공감한다.


방에 놓인 커다란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모습은 내게 생기를 가져다준다.



"데이지, 오늘 저녁을 펍에서 보내지 않을래?"


이레나 친구와 만나 브뤼셀의 중심가로 향한다.

이레나는 거리를 걸으며 벨기에 건축가 빅토르 오르따(victor horta)를 이야기한다.



"빅토르 오르따가 설계한 건물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

오드리 헵번이 살았던 곳이기도 해!"



이레나는 빅토르 오르따의 건축 양식을 사랑한다.

브뤼셀 거리를 걸을 때마다 이레나가 들뜨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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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나 친구와 함께


"이레나 너에게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뭐야?"



"호기심이야.

나는 사람이나 세계, 전통,

그리고 다른 시간 속 각자의 삶이 너무 궁금해!"


올해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이레나는 여전히 어린 소녀와 같다.


이레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이제 별로 궁금한 게 없어."

"나이가 들었으니, 딱히 알고 싶은 건 없네"


그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호기심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곤 했다.


이레나도 시간을 변명 삼아

호기심 몰락을 정당화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전히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회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진다.

호기심은 그의 밝은 미소에서 드러난다.


그의 장난기스러운 말투와 미소는

붉고 꼬불꼬불한 머리카락과 어우러져

마치 빨간 머리 앤이 연상된다.


20230929_221516.jpg?type=w773 다 함께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며 보내는 삶의 여유



이레나는 벨기에로 넘어와 이탈리아어 선생님 준비를 했었다.

공부가 쉽사리 진행되지 않으면서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다.

지금은 지역 센터에서 프로그램 운영을 맡고 있다.



"때로 선생님 준비를 그만둔 걸 후회하기도 해.


그렇지만, 많이 후회하지는 않아.


나는 현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10년 전과 비교해 난 매우 다른 사람이니까.


내가 했던 경험, 만난 사람들로 인해 성장해 왔으니까.

그리고 난 지금 내 직업이 있고,

내 삶이 있잖아!"



자신에게 많은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이레나.



그는 내게 알려준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친구들과 만나

조그만 동네 펍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시시콜콜 농담을 던지며

태양 어스름을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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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브리쉔의 거리


펍에서 나와 이레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하이얀 초콜릿 같은 벨기에 건축양식을 지나가며 우린 방긋이 웃는다.

그런 밤거리를 비추듯 보름달이 밝게 뜬다.



말괄량이 같은 이레나를 보며 한국을 떠올린다.

한국에서도 지금 푸르른 저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으려나.

다른 공간에서 같은 하늘 아래,

달과 해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환상적이게만 느껴진다.




언제나 젊은 에너지로

환상적인 하루하루를 사는 이레나의 밝은 에너지 덕분이 아닐까.


자기만의 방법으로 여유를 만끽하며 하루를 보내는 이레나.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이레나의 웃음이 좋다.






아침에 눈을 뜨니, 부엌문틈 사이로 와플의 달달함과 옅은 커피 향이 난다.

와플을 구우며 아침을 준비하는 이레나에게 인사한다.



"좋은 아침!"

밝게 웃는 이레나와 아침을 함께한다.

삶에 대한 이야기로 아침 식사가 흘러갈 무렵,

마냥 새파래 보인 그는 진지해진 채 말한다.



"이미 데이지 네가 하고 있는 일들이지만,

이 조언을 해주고 싶어.

네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가져."



"수많은 사람들은 낯선 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그렇지만, 그들은 위험하지 않아.

새로운 사람 만나는 기회를 놓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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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오줌싸는 동상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반려자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흐름이 흘러간다.

이레나는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머물고 말한다.


"나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우리가 결혼으로 함께 하기로 정했다는 이유로

함께 하고 싶지 않아.

이런 이유로 결혼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결혼이라는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서로 감정이 없음에도 계속 살아가고 싶지 않거든.

나는 서로에 대한 끌림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를

우리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만나는 관계를 원해."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거 되게 일리 있다."

"결혼을 존중해.

그렇지만, 단지 결혼은 내가 추구하는 방식이 아닌 거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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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 거리를 걸으며



"결혼을 계획한 친구가 있었어.

갑작스레 친구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 변화를 겪었지."

"왜?"

"예비 남편과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이야.

예비 남편은 일을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뒀고,

세상과 다른 사람을 직업과 돈으로 정의하곤 했어.

그의 남편은 자립해서 부를 이뤄낸 사람이야.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물론 좋은 일이야.

그렇지만,

그는 오로지 직업과 돈이 삶에서 중요 순위가 되어버린 거야.

그게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인 거야.

나의 친구는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했던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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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삶의 방식으로 살고 싶은데?"

"나는 단지 내 삶을 살고 싶어.

나의 삶을 즐기고, 내 삶을 위해 돈을 버는 거지.

그렇지만 돈이 삶의 1순위는 아니야.

내가 일을 얻으려고 해서 되면 좋은 거고,

되지 못하면 그것도 나름 괜찮아!

그것도 좋아!"

모든 가치에 옳고 그름은 없다고 말하는 그는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 규정하지 않는다.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단단함은

밝고 명랑한 미소로 발현된다.

그런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이레나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옛날 한 여자도 내게 물었지.
그때도 지금도 난 똑같은 답변을 할 거야.
간단해, 행복해지기 위해서지.

세상을 더 알아가고
다른 문화, 다른 사람, 다른 모두를 알아가는 거야.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삶을 마주하는지,
그 속에서의 공통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말이야.

내 삶의 이유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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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먹고 싶었던 벨기에 와플.

고작 슈퍼에서 사 온 와플이라며 별거 아니듯 웃는 이레나에게

내가 먹은 와플 중 가장 맛있고 달달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가 나눈 소중한 아침이

와플을 더 달콤하게 만드나 봐."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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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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