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에서 만난 매드
실제 경험은 신체적인 데 반해,
우리의 환상 속에서 빚어지는 자아는 아주 시각적이기 쉽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SNS나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의 실제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하라리
"예진아, 너는 어떻게 스스로를 잘 알아?"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해.
한 친구를 좋아하면,
그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 알고 함께 시간을 보내잖아
'나'를 바라보는 것도 같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파악하고,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지.
보통 일기와 같이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사색에 잠기거나 ··.
여러 방법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려고 해."
순례길에서의 삶은 매우 단순하게 돌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걷고,
도착하면 뭐 먹을지 생각한다.
먹고 나면 잠깐 산책하고,
그리고 다시 잔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 없이
하루하루 이 순간을 살아간다.
순례길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더욱이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라니.
순례길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대부분 한국인으로 구성된 순례자 모임.
그 속에 유일하게 외국인이 있다.
덴마크에서 온 매드이다.
우린 매드와 몇 번 알베르게에서 마주쳐 인사를 나눴고,
길 위에서 몇 번의 우연한 만남에서도 미소를 나눴다.
몇 번의 마주침이 반복되면서
매드는 어느새 우리의 일원이 된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매드는
우리가 한국어로만 대화하거나
한국인 정서를 담은 유머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언제나 호기심 있게 관심 갖는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매드와 대화하기 위해
언니 오빠들은 서투른 영어로
매드와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소외감을 느끼거나,
종종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매드는 언제나 포용적으로 미소 짓는다.
"나는 몇 년 전에 순례길을 했었어.
그때 사랑에 빠진 독일 남자가 있었지."
여행과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매드는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순례길을 통해 사랑에 빠진 남자와 함께 지내온 이야기,
따뜻한 스페인으로 넘어와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를 좋아해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이야기 ···.
덴마크와 한국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각자 관심사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한다.
매드는 모든 대화에서도
열린 마음과 온화한 미소로
경청의 자세를 갖는다.
언니 오빠들이 매드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우린 함께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춤도 추며 흥 있게 순례길을 걷는다.
함께 걷는 시간이 쌓이면서
우린 매드는 '덴마코리안'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함께 걸으니, 이런 재미가 있구나.
참 소중하다.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언덕에서 바람을 타고 돌아간다.
언덕 너머로 오늘의 목적지인 부르고스가 보인다.
"와! 거의 다 왔어!"
체력이 튼튼한 매드는
순례길을 걷는 내내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언제나 미소를 짓는다.
아름다운 스페인의 자연과
은은한 종소리 덕분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내가 걸어오는 길 덕분에,
옅은 불빛들 덕분에,
순간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다.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갖고 살아오다가,
삶에서 잠시 쉼을 주어 스페인까지 날아온 이 사람들.
이 사람들을 스페인 작은 산골에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함께 저녁을 먹으며 웃고,
서로의 여정을 걱정해 주는 날의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금 아니면, 우리가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귀하고,
그렇기에 더욱 이 순간에 충실해진다.
하루는 우연히 매드와 걸음 속도를 맞춘다.
명랑하게 미소 짓는 매드는 말한다.
"오늘 우리가 걸은 코스는
많은 사람들은 그 부분을 그냥 지나치는 길이야.
누군가에게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을 길이지.
그렇지만, 카미노의 모든 길이 예쁜 건 아니야.
카미노는 삶과 같아.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
만약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면,
그건 매우 지루한 삶이 될 거야."
매드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걷는다.
그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참 좋다.
도착 후
씻고 나서 일기를 쓰는데 알베르게 창가 너머로 빛이 들어온다.
빛이 그림자가 지기도 하고,
그냥 사라지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빛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오후 여유를 흠뻑 마시며 밖으로 나오니
휴식을 취하는 매드가 보인다.
매드와 한참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매드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나는 꿈이 많고, 희망이 많아.
나는 약간 불우한 가정 속에서 보내왔었기에
나는 언제나 여행하고, 무언가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희망했었어.
내 삶의 이유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나아가는 거야.
내 삶의 이유를 항상 희망해 왔어.
순례길이라는 길이 가져다주는 마법 때문일까,
매드가 가진 긍정적 에너지 덕분일까,
만나지 며칠 안된 사람들이지만
다들 친근하고 함께하면 좋다.
어디까지 걸을지 고민하고,
생각을 비우고,
혹은 생각을 갖고
걷고 나서 마을에 도착하면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함께 장 보고 와서 요리하고,
먹으면서 함께 웃고,
배부른 채로 산책하고,
돌아와서 잠들고,
다음날 아침 다시 일어나서 함께 걷고 ···.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한다.
동시에, 지루하게 여겨지는 순례길 위에서
매드가 말한 말을 곱씹는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나는 매드의 말을 메모한 뒤
그 뒤에 문장을 추가했다.
그렇기에 더욱 찬란하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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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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