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만났다는 사실이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만난 리처드

by 여행가 데이지



▶불가리아 유기견 보호소 이야기 다시보기



불가리아 봉사를 마친 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투어를 했다.

투어 중 우연히 말이 닿은 사람은

본인을 리처드라고 소개한다.


IMG_8032.jpg?type=w773 불가리아에서 만난 리차드




"우와! 알래스카에서 왔어요?"


미국인은 많이 봤지만,

알래스카에서 왔다는 미국인은 처음 봤다.

미지의 공간인 알래스카에서 살아온 그에게

나는 호기심을 갖는다.



"내가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공산주의였는데 말이야."



불가리아 거리를 걸으며

그는 공산권이었던 동부 유럽을 회상한다.

그는 30년 전의 여행을 떠올린다.


공산 국가를 경험했다는 알래스카인.

나는 교과서로만 들은 공산국가와,

오로지 차가운 빙하 이미지로 가득한 알래스카 이미지가 겹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휩싸인다.



"저도 내년 즈음에 남미에 갈 거예요!"



우연히 남아메리카 일정이 겹친 우리는

연락처를 공유하고,

서로의 상황을 알리기로 한다.



브라질로 향하며

"리처드!

저는 브라질에 왔어요!

상파울루에서 지낸 뒤에 이구아수 폭포를 볼 거예요."


"와 정말! 나는 지금 이구아수 폭포에 있어!

폭포를 본 뒤에 너를 보러 상파울루로 갈게."



우린 불가리아에서 이뤄진 잠깐의 만남을

더 오랜 인연으로 만들고자

상파울루에서 약속을 잡는다.


그러나,

상파울루에 도착해 빠르게 흐른 시간 속에서

어느덧 마지막 날이 찾아온다.


"리처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떠나는 날이네요.

저는 4시 즈음에 시간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 그때 보자!"


리처드에게 만남 약속을 말한 뒤,

그 날 하룻 일정을 소화하며

유심이 없다는 변명으로

나는 그 뒤로 연락 한통 보내지 않는다.


홀로 4시 즈음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뒤,

3시 30분이 되어서야 그에게 연락한다.


"리처드! 어디서 볼래요?"



"데이지, 네가 연락이 없어서 나는 네가 못 만나는 줄 알았어.

나는 이구아수폭포에서 만난 친구들과 다시 뭉치기로 했어.

우리 다음에 만나야 할 거 같아."



나는 오늘 저녁 버스로 아르헨티나에 가기에

앞으로 리차드와 다시 만날지 미지수이다.

나는 다른 일정을 잡은 리처드에게 불만을 억누르며 말한다.


"리처드, 저는 오늘 만나고 싶어요.

괜찮다면, 친구분과 같이 만나도 될까요?"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제안에

리차드는 대답한다.



"좋아!"




IMG-20240113-WA0019.jpg?type=w386
IMG-20240113-WA0018.jpg?type=w386
상파울루 횡단보도를 건너며 (이야기와는 무관한 사진)




우린 영상통화를 하며 어렵사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


"데이지! 건너편 횡단보도 말이야!"


우린 횡단보도를 사이로 서로를 발견한다.

도로를 지나치는 자동차들이 서로 모습을 감추어도

다시 모습이 나타날 때에도 세차게 흔드는 손을 본다.

다시 만나게 된 반가움은 이로 말할 수 없이 커진다.



"리처드!!!!!!"



"데이지!!!!!!"



우린 횡단보도 가운데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지난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한 반가움을 달랜다.

그는 오는 길에 꺾은 하얗고 노란 꽃을 선물한다.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그에게 사과한다.


"리처드 죄송해요,

제가 미리 연락하고 상황을 알리지 못했어요.

연락받고 되레 불만을 가져서 죄송해요."


리처드는 말한다.


"데이지,

다 잊어.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이야.


지금이 가장 중요해."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난 그가 더 좋아진다.



"고마워요."



KakaoTalk_Photo_2025-02-16-07-15-17_018.jpeg?type=w773 리차드 친구와 리차드, 내 모습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친구 집에서 파티가 있을 예정이기에

우린 리처드 친구와 지하철에서 만나 이동한다.


밝은 에너지의 친구들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예전부터 알고 있듯이 친근하게 대한다.


나이가 많건 적건

성적 취향이 같건 다르건

직업이 무엇이건

서로를 보자마자 누구보다 반가워한다.



각각 친구들과 인사하고,

상파울루에서 부유한 거리인 파울리 스타 대로를 걷는다.



"데이지! 노 노 노 노 노 노 !"



친구들은 거리에서 폰을 쓰려는 나를 둘러싼다.

거리의 위협으로 보호한다며 우리 다 함께 포옹한다.

요란스럽고 떠들썩한 친구들 반응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후 친구들은 뜬금없이 길거리 상인으로 보이는 이와 이야기 나누며 말한다.



"데이지, 이 친구는 데니스야."



단순히 길거리 상인으로 알았던 데니스는

부자 거리에서 큰 빌딩을 렌트해 에어비엔비로 이용하고 있었다.

우린 건물의 철통 보안을 손쉽게 푸는 데니스를 보며

한껏 호들갑을 부린다.


"데니스 부자라니!!!"


"우와!!!!!~~~"


GOPR2725.JPG?type=w773 데니스 에어비엔비 방 풍경




잔뜩 신난 채로

건물이 주는 전경을 구경한다.



"우와!!! 상파울루가 한눈에 다 보여!!!"



잔뜩 신이 난 채로,

우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과도하다고 말할 정도로

지나치게 쾌활한 친구들에

라틴 분위기를 물씬 느낀다.


표면적으로만 보이는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친절하고 활기차며

낙천적으로

지나친 반응을 하는 그들 덕분에

브라질은 매우 편하게 다가온다.



KakaoTalk_Photo_2025-02-16-07-14-51_001.jpeg?type=w773 리차드 친구들




50대가 넘어 은퇴를 하고 부업을 운영하는 데니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성소수자 타이고,

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케지아,


타이고는 50대가 훌쩍 넘은 데니스와

서슴없이 입맞춤을 하며 인사한다.


나이도 다르고,

성적 취향도 다르며,

직업도, 배경도, 소득수준도 다른 우리가,

공통점이 전혀 없는 우리가 함께 모였다니.

이 조합이 신기하고,


신기해서 좋다.


연령, 국적, 취향 상관없이

미소와 유쾌함으로 뭉친 우리는

마치 브라질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IMG-20240113-WA0061.jpg?type=w773



브라질을 떠나기 전,

브라질 음식을 먹고 싶다는 나의 바람에

친구들은 상파울루 식당을 찾아다닌다.


상파울루에서 살아온 데니스의 추천으로

우린 식당에 자리 잡은 뒤

본격 이야기를 시작한다.


KakaoTalk_Photo_2025-02-16-07-14-54_003.jpeg?type=w773




나는 옆에 앉은 리차드를 바라본다.


'알래스카인은 어떤 삶을 살까?'

'젊은 시절 한 세계여행 이후, 다시 여행을 하는 기분은 어떨까?'

'수십 년 전의 세계여행은 어땠을까?'


불가리아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리처드는 신기한 존재였다.



"나는 앵커리지에서 살았어.

집과 정원, 아름다운 산이 있는 곳이지.

매우 행운이었지.


어느덧 여행 14개월 차야.

5개월 뒤에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갈 거야."



리차드는 지난 세계여행에서 만난 이들과

다시 만나는 새 여행을 하고 있다.



"나는 각 계층의 모든 삶이 궁금했어.

중간층, 하층민, 심지어 원주민과도 어울려보고 싶었지.


나는 가정을 이루고 집을 이루기보다

그 커뮤니티에 속해보고 싶은 거야.

무언가를 공유하고, 느끼면서 충만함을 느끼거든"



KakaoTalk_Photo_2025-02-16-07-15-23_022.jpeg?type=w773


어렸을 때 언제나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던 그는

16살에 비엔나를 시작으로 유럽여행을 시작했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 재정 목표를 세웠어."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25살부터

부동산에 뛰어들어 20년 동안 일을 해왔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예술이고,

나에게 경제적 성공을 가져온 것은 비즈니스였어."



그는 30살 즈음

연극과 관련한 CD를 파는 부업과 동시에

요양원을 운영하며 기업가로 발을 디뎠다.


KakaoTalk_Photo_2025-02-16-07-03-20_001.jpeg?type=w386
KakaoTalk_Photo_2025-02-16-07-03-23_003.jpeg?type=w386
KakaoTalk_Photo_2025-02-16-07-03-21_002.jpeg?type=w386
내게 삶의 조언을 하는 리차드


그는 자신이 먹는 스테이크를

나에게 나눠주며 말을 이어간다.



"데이지,

너는 주위에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있잖아.

컴퓨터, 책, 기타 등등 모든 게 너에게 가능성이야."



그의 말을 쫑긋 듣는 내 모습에

그는 한층 진지함을 더한다.


"데이지,

너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해.(Be honest and true.)

너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돼.

너 스스로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해."



우리의 진지한 대화 너머로

다른 친구들은 환호성을 내뱉으며

저녁 파티의 장을 만든다.



KakaoTalk_Photo_2025-02-16-07-15-20_020.jpeg?type=w773 왁자지껄한 리차드 친구들



열렬하게 쏟아지는 스페인어 너머로

그는 이어 말한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

그게 만약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너는 만족할 거야.


너는 그거에 도달하고, 달성하는 게 아니야. 너는 그것을 단지

너는 무언가 새로운 것에 다가가야 해. 그것이 혁신이야.



혁신을 위한 방법은 하나야.

오로지 너는 너 자신이기만 하면 돼."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60살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파티를 좋아하고,

사진을 찍을 때면 누구보다 재기 발랄한 그는

그가 여전히 젊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아마존 정글에서 한두 달 살아보고 싶어."



그가 삶을 살아오며 가진 태도와

변함없이 새로운 꿈을 꾸고

여전히 젊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알려준다.


KakaoTalk_Photo_2025-02-16-07-15-28_025.jpeg?type=w773 리차드



경험을 기반으로 내게 조언하는 리처드.

그를 바라보며 삶의 이유를 묻는다.



"매우 보편적인 질문이지.

우리가 누구인가.

왜 우리가 여기로 왔는가."


그는 질문에 서문을 열더니

곰곰 생각에 잠긴 뒤 말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지.
그저,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행복해지냐고?
순간을 사는 거야.
너 자신에게 좋은 이가 되는 거야.
그리고, 너 자신을 찾아가는 거야."



IMG-20240113-WA0074.jpg?type=w386
IMG-20240113-WA0073.jpg?type=w386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로 친구들이 말한다.


"데이지, 중요한 스페인어를 알려줄게.


"Es la vida, nada más? 에스라비다마라따?

No! 노!"

"삶은 무언가를 달성하려는 건가?

아니!"


"우와! 엄청 좋은 말이다!"


우린 웃으면서 삶의 의미를 외쳤고,

우린 서로 미소를 보이면서 술잔을 함께 부딪혔다.


Screenshot_2025-02-16_at_6.57.56%E2%80%AFAM.png?type=w773



저마다 다른 취향과 배경, 나이대를 가져도

그날 하루 우리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나는 리처드가 보여준 삶의 태도와

나눠준 삶의 조언을 간직한 채 말한다


"삶은 무언가 달성하려는 건가?


아니!"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daisyshin:유튜브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전 01화브라질 엄마의 포옹